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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아들을 내주신 이 (롬8:32)

  https://youtu.be/9tJxsCkB1dc?si=yoecT3l2ALBPh1Wa

"주의하라" (10)

“ 주의하라 ” (10)       넷째로 , 사도 바울은 금욕주의를 주의하라고 경고했습니다 ( 골 2:20-23).   여기서 금욕주의란 육체를 벌함으로써 영혼을 정화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   골로새서 2 장 21-23 절은 엄격한 자기 태만과 자기 부인과 자기 학대를 통해 거룩함을 성취하려는 시도인 금욕주의의 무익함을 지적합니다 .   이러한 금욕주의는 일시적인 사용하면 없어질 것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죄를 억제하거나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데 무력합니다 .   바울은 이런 규정들은 제멋대로 만든 종교적 숭배나 거짓된 겸손이나 자기 몸을 괴롭히는 데는 지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육체의 정욕을 막는데는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바울은 이런 것은 사람의 계명과 가르침에 근거한 것이고 이미 그리스도 함께 죽은 성도들은 이러한 율법적 규정에 복 종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그 이유는 신자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연합하여 세상의 모든 어리 석 음에서 새 생명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   참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속에 참되이 받은 바 되어 그 생활에 변화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   그리고 변화를 받은 사람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삽니다 .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사는 참으로 변화를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에게 근 거한 것이 아닌 그저 사람들이 제멋대로 만든 계명이나 가르침을 따라 살면서 자기 몸을 학대하지 않습니다 .  

“주의하라” (골로새서 2장 8-23절)

“ 주의하라 ”         [ 골로새서 2 장 8-23 절 ]                  여러분 , “이단”으로 분류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   황대우 교수란 분이 “개혁주의 학술원”이란 웹사이트에 올린 글을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이단’ ( 이단 ( 異端 ) 이란 ‘다를 이’에 ‘끝 단’자로 구성된 단어이며 ‘끝이 다른 것’을 의미한다 .   하지만 이단을 의미하는 영어 명사 ‘헤러시’ (heresy) 의 어근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 ‘하이레시스’가 신약성경에서는 ‘사두개파’ ( 행 5:17), ‘바리새파’ ( 행 5:17), ‘파당’ ( 행 26:5; 고전 11:19; 갈 5:20) 등과 같은 ‘분파’를 의미하는 중립적 개념이다 .   1 세기의 사도들은 일종의 ‘특정 집단’을 가리키는 의미로 그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   하지만 2 세기의 속사도교부들은 그 용어를 부정 ( 否定 ) 과 차별 ( 差別 ) 의 의미를 내포한 평가적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하는데 ,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이단의 의미다 .   그러므로 이단이란 용어는 이미 2 세기부터 기독교인들에게 아주 익숙한 개념이다 .   영국 신학자 맥그래스 (McGrath) 에 의하면 , “이단은 우발적이든 고의든 주인의 집안에 대안적 신념 체계를 세우는 수단 , 즉 일종의 트로이 목마 같은 것이다 .   이단은 겉으로는 기독교처럼 보이지만 , 실제로는 파괴적 씨앗을 심는 신앙의 원수이다 . … . ”   “오늘날 ‘이단’이란 말은 ‘완전히 다른 복음’ , 즉 기독교에 포함시킬 수 없는 단체나 모임에 적용하는 용어다 .   그렇다면 과연 ‘기독교’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는 기준 , 즉 이단의 기준은 무엇인...

“주의하라” (4) (골로새서 2장 20-23절)

  “ 주의하라 ” (4)         [ 골로새서 2 장 20-23 절 ]       마지막 넷째로 , 사도 바울은 금욕주의 (Asceticism) 를 주의하라고 경고했습니다 .   래리 오스본 목사가 쓴 “당신의 열심이 위험한 이유”는 , 크리스천들의 열정적인 신앙에도 함정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   이 책은 그리스도인들의 율법주의식 열정에 난색을 보입니다 .   또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 역시 , 의도하지 않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리새인의 모습을 지닌 채 살아간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   또한 이 책에서 저자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 종종 제대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쉽게 ‘판단’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쉽게 판단하는 ‘신실한 크리스천’들을 “우연한 바리새인”이라고 정의합니다 .   “그리고 오스본 목사는 ‘우연한 바리새인’들은 헌신과 신학적 성숙 , 열의 , 재정적 헌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 이들의 복음에는 예수님의 은혜와 긍휼이 없다고 꼬집는다 .   어떻게 보면 ‘우연한 바리새인’ (accidental pharisees) 들은 종교적 열광주의와 금욕주의에 빠져 있다고 강조한다” ( 인터넷 ).     여러분 , 금욕주의란 무엇입니까 ?   ‘옥스포드 기독교 사전’ (The Concis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는 ‘금욕주의’ (asceticism) 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음 : “금욕주의는 여러 종교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 자기 절제를 위한 수단으로 , 악에 대항하며 선을 고양하기 [ 높이 쳐들어 올리기 (Naver 사전 )]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수행 체계를 뜻한다” ( 인터넷 ).   위키백과는 “금욕주의는 정신에 속하는 것을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