갚겠다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는 까닭 없이 네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며 네 입술로 속이지 말지니라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가 행한 대로 그 사람에게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 (잠언 24장 28-29절)
우리의 본능은 상대방이 나에게 빰을 한 대 때리면 나도 그 상대방의 빰을 한 대 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상대방을 한 때 때리면서 우리의 본능대로 상대방에 갚아준
것을 이렇게 합리화 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출21:23-25). 우리가 상대방에 나에게 행한 것처럼 그대로 갚아주고 싶은 충동대로 살아가는 것을 합리화 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성경구절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까지 우리가 합리화 시키면서까지 우리가 우리의 본능대로 상대방이 나에게 빰을 한 대 때렸으면 나도 그 상대방에게 그대로 갚아주는
것이 우리는 본능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본능대로 행하려고 했던 사람이 구약 성경 사무엘상 25장에 나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나발이란 사람에게 자기기 친히 복수하려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그리하려고
했던 이유는 다윗이 나발을 매우 선대하였지만(15절) 나발은
다윗을 선대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모역하였기 때문입니다(14절). 다윗의 소년들이 갈멜에 있는 동안 나발의 목자들과 함께 있으므로 그들을 헤아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발의 양들도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7절). 즉, 나발의 목자들이
나발의 양을 지키는 동안에 다윗의 소년들이 그들과 함께 있어 밤낮 그들에게 담이 되었으므로(16절) 그들이 다치거니 잃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15절). 그런데 다윗이 자기 소년 10명을 나발에게 보내서(5절) 그들로 하여금 나발에게 은혜를 얻게 하려고 했는데(나발의 손에 있는 대로 다윗과 다윗의 소년들에게 주기를 원했는데)(8절) 나발은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10절)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다윗에게 아무 것도 베풀지 않고 오히려 그들 모역하였습니다(14절). 그러므로 다윗은 자기 사람들에게 각기 칼을 차라고 명한 후 한 400명을 데리고(13절) 나발의 집으로 가서 자기가
친히 복수를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발의 아내인 아비가일이 지혜롭게 말하고 행동하여
다윗으로 하여금 그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복하는 일을 막았습니다(26, 31, 33절). 그녀는 다윗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복하셨다든지 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31절상). 무슨 말입니까? 만일 다윗이 나발에게 친히 보복을 하였다면 나중에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나발에게 복수한 일로 인하여 그의 양심에 걸리는 것이
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아바가일을 통하여 막으셨기에 그럴 염려는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때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33절). 결국 주님께서는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을 통하여 다윗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복하는 일을 막으셨던 것입니다(26절). 왜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그 대답을 로마서 12장 19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주님께서 다윗으로 하여금 나발에게 보복하는 것을 막으신 이유는 원수 갚은 것은 주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 다윗을 위하여서 친히 갚아 주실 것이기 에 주님께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나발에게 보복하는 것을 막으셨던 것입니다.
오늘 성경 잠언 24장 29절을 보면 성경은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가 행한 대로 그 사람에게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보복(복수)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상대방에게 선히 대해는데 그 사람은
오히려 나에게 모욕을 줬다면 나도 그 사람이 나에게 행한대로 나도 그 사람에게 모욕을 주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 사람이 분노 가운데 나에게 막을 막한다고 해서 나도 그 사람에게 그대로 하라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특히 오늘 본문 28절을 보면 우리는 까닭(이유) 없이 우리 이웃의 거짓 증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입술로
우리 이웃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나를 속인다 할찌라도
우리는 그 상대방에게 그대로 해서는
아니된다는 말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성경은 우리가 친히 보복(복수)하는 것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거짓말을 하지 말고 이웃을
속이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이웃이게 거짓말을 하고 속인다면 그것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인 마귀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요8:44). 오히려 우리는 기독교의 황금률(The Golden Rule)대로 행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황금률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7장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 이 말씀은 예수님의 이중계명
중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을 실천함에 있어서 어떻게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가르쳐주는 핵심 원리입니다. 그 원리는 ‘내가 상대방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내가 먼저 그에게 그렇게 대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만일 나는 상대방이 나를 좀 이해해 주길 원한다면 내가 먼저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는 습관을 가져야 함. 그리할 때 우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우리도 남을 대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우리가 상대방에게 진실을 원하듯이 우리가 먼저 그 상대방에게 진실해야 합니다. 결코 우리는 거짓말을 입밖으로 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결코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거짓증거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진실된 증거를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죄악된 본능대로 살기보다 오히려 성경대로 살기를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4년 9월 25일, 하나님께서 우리 대신 갚아주실 것임을 믿는 믿음으로 참고 견디면서 그 와중에서도 기독교 황금률을 실천하는 자로 세움 받기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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