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3)
[잠언 28장 15-20절 말씀 묵상]
여러분, 혹시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 ‘나는 이중인격자’란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네이버 사전을 보니까 “이중인격”이란 “겉과 속이 다른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경우, 어떻습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때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볼 때가 있지 않았나요? 성경에 겉과 속이 달랐던 사람들이 나옵니다.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금식을 하고(마9:14, 막2:18)
“박하와 운항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도 드렸으며(눅11:42, 마23:23) 자신들이 보기에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식사도 하지 않고(막2:16) 세리와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하였지만(눅18:11) 그들은 속으로는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었으며(눅16:14) 그들 속에는 탐욕과 악독과 방탕과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였습니다(11:39, 마23:25, 27). 이렇게 바리새인들은 이중인격자들이었습니다. 이들 외에 성경 요한복음 12장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 중에 가롯 유다라는 이중인격자가
나옵니다. “유월절 엿새 전에” 베다니에 가신 예수님, 마리아란 여인이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았습니다(요12:1-3). 그 때 가롯 유다는 이것을 보고 “이 항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으냐”고 말하였습니다(5절). 만일 우리가 그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이 말을 듣고 가롯 유다는 진정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착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가롯 유다가 그리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6절). 그는 겉으로는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는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속으로는 도둑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가롯 유다는 이중인격자였습니다. 이만재란 사람이 쓴 “교회가기 싫은 77가지 이유”라는 책이 생각납니다. 그 책을 보면 교회 가기 싫은 77가지 이유가 적혀 있는데 그 중에 두 가지는 바로
“교회에서 진짜 신앙인을 보지 못했다,” “이중 인격자가 많아 싫다”라는 이유입니다(인터넷). 왜 교회가 이지경까지 된 것일까요? 언젠가 제가 이런 글을 쓴 것을 다시금 찾아서 읽어보았습니다(2015. 4. 11.). “지금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생산하기보다 이중인격자들을 생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을 글로나마 써서 나눈 것입니다. 제가 이리
생각하는 이유는 어쩌면 제 자신부터 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겉과 속의 다른 모습이 주위 사람들이 알 정도로 점점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점점 더 진실성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만큼 교회가 사람의 성품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행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교회가 진실한 그리스도을 양육하는데 헌신 하기보다 겉과 속이 좀 달라도 봉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결과 봉사는 열심히 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품이 받쳐주지 않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가리우는 죄를
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굽은 길로 행하는 자”(거짓되게 사는 사람)가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오늘 본문 잠28:18)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 [(현대인의 성경) “진실하게 사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나 거짓되게 사는 사람은 갑자기 패망할 것이다”]. 오늘 본문 잠언 28장 18절을 보면
성경은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진실하게 사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나
거짓되게 사는 사람은 갑자기 패망할 것이다.” 지금
잠언 기자는 “성실하게 행하는 자”(진실하게 사는 사람)과 “굽은 길로
행하는 자”(거짓되게 사는 사람)과 대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원어 히브리어를 개역하면 “순전하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나 이중으로 속이는 자는 한번 넘어지히라”입니다(박윤선). 여러분, 이중으로
속이는 자는 어떠한 자입니까? 그 좋은 예가 바로 우리가 이미 묵상한 잠언 28장 6절 하반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부유하면서 굽게 행하는 자” [“거짓된 부자”(현대인의 성경)]임. 원어 히브리어의 개역하면 “두 길로 속이는 부자”입니다(박윤선). 여러분, 두 길로 속이는 부자는 어떠한 자입니까? 겉으로는 선한 길을 가는 체 하지만 실제로는 악한 길로 행하고 있는 사람입니다(박윤선). 이렇게 두 길로 행하는 부유한 자가 행하는 악한 길 중에 하나는 바로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것입니다(3절). 학대하되 좀 더 구체적인 예는 야고보서 2장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괴롭히며
법정으로 끌어가는 사람들은 부자들이 아닙니까?”(현대인의 성경). 두 길로 행하는 부유한 자는 가난한 사람들을 학대함에 있어서 그들을 업신여길 뿐만 아니라 그들을 괴롭히며 또한 그들을 법정으로 끌고가기
까지 하여 해를 입힙니다. 잘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사람들 앞에서 선행을 하는 것 같은데 사람들이 보지 않은 뒤에서는 이렇게 가난한 자들을 (교묘 하게) 학대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와 보지 않은 뒤에서의 불일치된 행함으로 인하여 두 길로 속이는 부자들은 재물을 모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재물을 모으되 잘 모으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고통당하는
가난한 의인들은 어떻게 그러한 이중인격인 악한 부자들이 “항상 평안하고 재물을 더욱 불어나”는지(시73:12) 자기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죄를 짓지 않는 것이 헛되도다 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할 수가 있습니다(13절).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두 길로 속이는 이중인격인 부자들은
그리 재물을 쌓는 가운데 자신들의 악도 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잠언 28장 18절 하반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그러한 부자들은 “곧 넘어”질 것임[갑자기 패망할 것입니다(현대인의 성경). 그들에게는 반드시 넘어지는 한 때가 올 것입니다(박윤선).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성경 잠언 28장 6절은 이러한 이중 인격인 악한 부자보다 진실히 행하는 가난한 자가 낫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부유하면서 굽게 행하는 자보다 나으니라”[(현대인의 성경) “가난하지만 정직하게 사는 자가 거짓된 부자보다 낫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부함과 가난함 보다 진실히 행하느냐 아니면
위선적으로 사람들의 눈을 속이면서 거짓되게 행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거짓되고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반드시 넘어질 것이요 갑자기 패망할 것이지만 진실하게 하는 사람,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구원(건짐)을 받을 것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8절). 그러므로 우리는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건짐(구원)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참 신자, 진실하고 성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움 받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7년 10월 19일,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에 나 자신을 비춰보면서 나 자신의 이중 인격적인 면을 깨달아 자복하며 회개하길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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