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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 (고전 15:12-20)

  https://youtu.be/aGt9hEV6LvE?si=rwEe20LoVNX9W9De

'오징어 게임'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 인터뷰"를 읽고 나서 ...

넷플릭스를 통해 "오징어 게임"(Squid Game) 보았습니다. 인터넷 신문을 통해 "오징어 게임" 대한 기사를 읽고 어떤 "오징어 게임" 무엇이기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보는 것일까 라는 관심이 생겨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에서 1위이고 또한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기에 이렇게 "오징어 게임" "오일남" 역학을 "오영수"라는 분의 기사도 관심을 가지고 조금 전에 읽어보았습니다. 읽은 인터뷰 내용에 관하여 그저 저의 작은 생각을 적어 내려가고 싶은 마음에 생겨 많은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적어 내려고 합니다(그저 여러분도 저의 부족한 글을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으면 합니다).



1.      "그가 우린 깐부(딱지나 구슬을 서로 나누는 짝꿍이라는 뜻의 은어)잖아~라는 명대사와 함께 퇴장하며 여운을 남긴 6화에 대해 포브스지() 올해 TV 에피소드 최고라고 했고, 각국 유튜버들은 장면을 보고 울음을 펑펑 터뜨리는 리액션 영상을 앞다퉈 올렸다. K-신파가 세계를 울렸다 말도 나왔다." 저는 기사 부분에서 어떻게 인생 드라마에서 "퇴장" 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리했을 저는 작년에 아내랑 함께 참석한 헨드릭스 목사님의 장례 예배가 생각났습니다. 특히 예배 조사를 했을 목사님의 아드님 분이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글에 자신의 아버지가 주님에게서 "Well done, good and faithful servant!"("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태복음 25:21)라는 칭찬을 들으실 것이라 말하는 부분과 조사 내용에 맞는 "Well Done"이라는 영어 노래를 처음 들었는데 찬양을 들으면서 마음이 뭉클했었습니다(https://youtu.be/X29hPMgKUyM). 저의 인생 드라마의 퇴장도 헨드릭스 목사님처럼 되고 싶습니다. 장례 예배 사랑하는 가족이 저를 생각하며 마음의 조사를 ' 남편/ 아버지' 주님 앞에서 서서 주님께 "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받으실꺼야 라고 생각할 수만 있다면 저는 저의 인생의 퇴장이 식구들의 마음에" 여운" 남긴 것이라 생각합니다.

2.      "대중에게 얼굴이 널리 알려진 배우가 아니었기에 금방 죽을 역할인 알았는데 알고보니 드라마의 열쇠였다 반응이 국내에서도 나왔다." 저는 기사 부분에서 인생 "드라마의 열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저는 사람들 보기에만 그저 "죽을 역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처럼 "나는 날마다 "어야 한다고 믿습니다(고린도전서 15:31). 그런데 저는 자신을 바라볼 안이숙 사모님이 쓰신 제목처럼 "죽으면 죽으리라" 결심했다가 다른 제목처럼 "당신은 죽어요 그런데 죽어요" 저의 현실이라 생각합니다. 날마다 죽어야 하는데 자신이 " 죽어요" 저의 진정한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저야 하는데(마태복음 16:24) 자신이 날마다 죽지 않고 살아있기에 자신을 부인하기가 싫고 십자가 지는 것을 피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신을 보면서도 저의 간절한 바램은 가족과 친척과 교회 식구들과 친구들과 동역자들과 대학 후배들과 인터넷 사역 지체들에게 저의 날마다 죽지 않는 모습 속에서도 인생 드라마의 열쇠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널리 알려지길 기원합니다.

3.      "오영수의 출연작 3월의 (2018) 함께 했던 연출가 손진책은 그에 대해 오랜 세월 작품을 대하는 자세가 한결 같다 순수함이 설득력 있는 연기로 승화돼 나오는 배우라고 평가했다." 저는 기사 부분에서 "한결 " "자세"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순수함"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영수"라는 분에 대해 "손진책"이란 분이 "순수함이 설득력 있는 연기로 승화돼 나오는 배우"라는 평판( 단어가 맞는지 모르겠음) 했는데 귀한 평판이라 생각합니다. ㄶ은 사람들이 "오징어 게임" 보고 "오영수"라는 분에 대해 많은 칭찬을 하겠지만 이렇게 "손진책"이란 분의 칭찬이 진정으로 값진 칭찬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한결 " "자세" "순수함" 시대에서도 보배롭고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연기" 뿐만 아니라 실제 삶으로 "승화돼" 자연스럽게 나올 수만 있다면 얼마나 귀한 삶인가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저도 한결같은 신앙인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묵묵히 주님을 따라 길을 걷고 싶습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묵묵히, 성살하게, 신실하게 하루 하루 살고 싶습니다. 특히 주님의 한결같은 신실한 사랑의 통로가 되어 이웃을 사랑하므로 제가 인생 드라마에서 퇴장한 사랑하는 사람들이 저를 생각할 다윗이 친구 요난단이 죽은 고백한 내용인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사무엘하 1:26)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4.      "연기를 잘해야 한다고 욕심을 부리며 의식하지는 않았어요. ... 배역에 필요한 내공이 아직 충분히 무르익지 못했을 겁니다. 내공이라는 것은 시간이 흘러 경륜이 쌓이기 전에는 좀처럼 생기지 않습니다. ... 일흔 살이 넘으니 그렇게 그냥 두고 놓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그러다 보니 연기에도 지나친 욕심을 내지 않게 되더군요. 저는 기사 부분에서 "욕심"이란 단어와 "내공"/"경륜"이란 단어를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이유는 개인적인 생각은 진정한 "내공"/"경륜" "욕심을 부리"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각은 오랜 기간의 경험을 통해 쌓은 능력에는 얼마만큼 자신과의 싸움에서 욕심을 버리고 탐심을 비우느냐와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배우자로서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욕심을 부리게 되면 분수에 넘치는 생각 속에서 나름대로 삶의 원칙과 경계선을 넘어서서 타협함으로 부귀 영화를 누릴 있을지는 몰라도 배우자의 사람으로서의 사람의 됨됨과 가까운 식구 이웃들의 마음에 새겨지는 평판은 이상 존중을 받지못하므로 귀한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잃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자신을 생각할 너무나 부족한 영적 내공과 경륜의 원인은 바로 "욕심" 또는 "탐심"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골로새서 3 5 말씀으로 인해 양심에 찔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말씀을 보면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에 있는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탐심은 부리지 않도록 절제케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경험함과 동시에 안에 죽지않고 살아있는 탐심이 자꾸만 절제의 경계선을 넘어서 부리고 싶어하는 충동질을 경험합니다. 참으로 곤곤한 자가 아닐 없습니다. 성경 로마서 7 22-25 말씀이 생각납니다: "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지체 속에서 다른 법이 마음의 법과 싸워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5.      "평생 자신을 위한 돈과 권력과 재미를 열심히 추구했지만, 결국 가까웠던 이들은 모두 떠나버려 마지막 순간엔 곁에 있어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되죠. 저는 기사 내용에서 "마지막 순간"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이라는 캐랙터는 "마지막 순간에 곁에 있어 사람이 없었다는 " 비록 그가 "평생 자신을 위한 돈과 권력과 재미를 열심히 추구"하고 나름대로 마음 누려보았겠지만 죽음 앞에서는 결국 솔로몬 왕의 고백이 적용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헌대인의 성경) "모든 것이 헛되고 무가치하며 의미가 없으니 아무것도 소중한 것이 없구나"](전도서 1:2).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전도서 7 2 말씀을 좋아합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현대인의 성경)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모두 죽을 수밖에 없으니 살아있을 이것을 명심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3-4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은 것은 슬픔으로 인해서 새로운 것을 깨달을 있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앞에 보이는 즐거움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결혼식보다 장례식을 열심히 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장례식에 가서 입관예배 때에는 제가 안에 들어가 있다는 생각과 하관예배 때에는 무덤 안에 들어가 있다는 생각을 의도적으로 합니다. 그리고 여러 교회 어르신들의 장례 예배를 섬기면서 주님께서 저에게 '죽음의 관점' 가르쳐 주고 계심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록 마음이 슬프고 힘들 때가 있었지만 값진 죽음의 관점을 조금이나마 갖게 되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면서 하루 하루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결혼식에 오신 많은 하객분들보다 장례식에 오실 많은 조문객들이 하나님께 저의 장례 예배를 드리면서 제가 그리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주님의 안에 안겼기에 감사 기뻐하면서 저를 생각할 예수님을 닮은 '작은 예수' 있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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