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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이 사무엘상 22장 22-23절인 게시물 표시

The One Who Receives the Greatest Grace May Be the Most in Danger

The One Who Receives the Greatest Grace May Be the Most in Danger             “Woe to you, Chorazin ! Woe to you, Bethsaida !   For if the mighty works done in you had been done in Tyre and Sidon , they would have repented long ago, sitting in sackcloth and ashes.   But it will be more tolerable for Tyre and Sidon at the judgment than for you.   And you, Capernaum , will you be exalted to heaven?   You shall be brought down to Hades . The one who listens to you listens to Me, and the one who rejects you rejects Me; and the one who rejects Me rejects Him who sent Me” (Luke 10:13–16).         (1)     Today, I would like to meditate on the lesson given through Luke 10:13–16 , together with its parallel passage, Matthew 11:20–24:   (a)     First, Jesus rebuked the cities in which most of His mighty works had been done, because they did not repent (Mt. 11:20)...

“나의 탓”

  “ 나의 탓 ”     “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말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하니라 ”( 사무엘상  22 장  22-23 절 ).               “ 내 탓 ” 입니까 아니면  “ 네 탓 ” 입니까 ?  “ 잘 되면 내 탓 ,  안되면 조상 탓 ” 인가요 ?   진정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것입니까 아니면 나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것입니까 ?   혹시 나 때문에 저 사람이 저렇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   천주교 주요 기도문에 나오는‘고백의 기도’중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가슴을 세 번 치면서  ? 내 탓이오 ,  내 탓이오 ,  내 큰 탓이로소이다 ? 하는 기도문이 있다고 합니다 .   이 기도문에서 따온 말이 바로  “ 내 탓이오 ” 였고  1990 년에 있었던 카톨릭에서 벌인  “ 내 탓이오 ”  운동의 배경은  ‘ 너는 형제의 눈 속에 든 티는 보면서 어째서 제 눈 속에 들어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 마 7:3) 고 한 그리스도의 말씀처럼 자신의 잘못은 깨닫지 못하고 남의 잘못만을 비난하는 사회분위기를 앞장서서 반성하자는 데 있었다고 합니다 .   카톨릭의 이  “ 내 탓이오 ”  운동은 국민적 자각을 일깨우는데 적지 않게 기여는 했지만 아쉽게도 오래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