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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Then one of those standing near drew his sword and struck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cutting off his ear.” ( Mark 14:47, Today's Korean Version ) 1. Identifying the People Involved: The person who stood beside Jesus and drew the sword was Simon Peter .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was named Malchus . “Then Simon Peter, who had a sword, drew it and struck the high priest’s servant, cutting off his right ear. The servant’s name was Malchus.” ( John 18:10 ) 2. Jesus' Response to Peter's Action: (a) Jesus said: “Permit even this.” ( Luke 22:51, KJV: “Suffer ye thus far”; RSV: “No more of this” ) The Greek words clarify this: “ἕως τούτου” (“heōs toutou”) = “up to this point” or “even this” “ἐᾶτε” (“eate”) = “allow it,” “let it be,” “leave it alone” Therefore, Jesus is essentially saying: “Let them do what they are doing. Do not resist any further.” “If ...

푸른 서현교회 최현선 전도사님의 설교 동영상을 나누고 싶습니다(고후 12:1-10).

끝까지 설교 말씀을   다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흥미롭습니다 . 지난 주일 저 또한 사도 바울의 육체의 가시에 대해서 하나님의 족한 ( 충만한 ) 은혜에 대해서 설교를 했었는데 이렇게 최현선 전도사님의 설교를 통해 생각케 만드는 도전을 받네요 .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와 바울이 육체의 . 가시를 세번 removed 해달라고 간구한 내용의 연관성이 도전이 됩니다 .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받으신 예수님처럼 바울도 하나님의 . 응답을 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내 뜻은 가시 면류관 등 십자가의 고난이 지나가길 또는 바울의 경우는 remove 가 되길 원하는 것이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신 것처럼 사도 바울도 그 예수님을 본 받아 고난에 동참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   https://youtu.be/I2E4w2LuFc0 저는 이 설교 말씀 가정에게 적용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고충없는 가정이 없고 , 간절한 기도 제목이 없는 가정이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 특히 그 고충과 기도 제목 가운데 가정에 너무나 고통과 괴로움을 주는 " 가시 " 와 같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역경을 접할 때 우리는 고린도후서 12 장 1-10 절의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여 믿음으로 지혜롭게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해야 할지 가정의 위기 가운데 큰 깨달음과 배움의 기회를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다고 믿습니다 . 그 하나님의 은혜를 , 그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믿음으로 겸손히 받아 누릴 수 있는 축복이 여러분의 가정에 있길 기원합니다 .

"내 육체의 가시"보다 '하나님의 족한 은혜'에 초점을 맞추자.

"내 육체의 가시"보다 '하나님의 족한 은혜'에 초점을 맞추자. 나는 하나님께  " 내 육체의 가시 " 를 제거해 주시길  그리도 수없이 수년 동안 간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 고 말씀하신다 .   나는 " 내 육체의 가시 " 가 그리도 없어지길 원했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나에게 허락하신 목적은  나로 하여금 너무나 자만하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   만일 그 육체의 가시가 내게 없었다면  나는 얼마나 더 자만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   나는 이제부터 내 육체의 가시가 아니라  내 육체의 가시 가운데 내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족한 은혜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   그리고 나는 겸손히 하나님의 족한 은혜를 누리고자 한다 .   누리되 나는 나의 연약함을 나눌 뿐만 아니라 자랑하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더 경험하고 싶다 ( 고린도후서 12:7-9).

좀 약해질 필요가?

좀 약해질 필요가?  주님께 받은 축복이 너무 크면  우리는 너무 자만하기가 쉽습니다 .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각자만의 " 육체의 가시 " 입니다 .   우리는 그 " 육체의 가시 " 로 인해  좀 약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 고후 12:7, 9).

"내 육체의 가시"보다 '하나님의 족한 은혜'에 초점을 맞추자.

나는 하나님께 "내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주시길 그리도 수없이 수년 동안 간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내 육체의 가시"가 그리도 없어지길 원했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나에게 허락하신 목적은 나로 하여금 너무나 자만하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만일 그 육체의 가시가 내게 없었다면 나는 얼마나 더 자만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나는 이제부터 내 육체의 가시가 아니라 내 육체의 가시 가운데 내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족한 은혜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그리고 나는 겸손히 하나님의 족한 은혜를 누리고자 한다.  누리되 나는 나의 연약함을 나눌 뿐만 아니라 자랑하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더 경험하고 싶다(고린도후서 1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