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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 이상 예수님이 피 흘려 사신 그 한 영혼을 내 교만으로 짓밟으면서도,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다 용서해 주실 것"이라는 종교적 자기기만(마취제)에 빠져 양심의 화인을 맞은 상태로 살아가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예수님이 피 흘려 사신 그 한 영혼을 내 교만으로 짓밟으면서도 , "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다 용서해 주실 것 " 이라는 종교적 자기기만 ( 마취제 ) 에 빠져 양심의 화인을 맞은 상태로 살아가서는 아니 됩니다 !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 누가복음 17:1-4).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7 장 1-4 절 말씀을 읽고 헬라어 성경으로 읽었을 때 몇 개의 헬라어 단어과 문장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어 그 단어들과 문장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   (a)    첫째 헬라어 단어는 , “σκάνδαλα”( 스칸달라 )(“ 실족하게 하는 것 ”) 입니다 (1 절 ).   (i)                   누가복음 17 장 1 절에 복수형태인 'σκάνδαλα( 스칸달라 )' 로 등장하며 , 바로 뒤이어 1 절 끝과 2 절에 동사 형태인 ' 스칸달리세 (σκανδα...

죽을 것도 각오한 복음 전파자

죽을 것도 각오한 복음 전파자 예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 마가복음 8:35) 죽을 것도 각오하고 복음 전파 선교지로 가려고 하는 복음 전파자를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뜻대로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더 이상 말리지 말아야 합니다 ( 사도행전 21:12-14, 현대인의 성경 ; 참고 : 요나 1:13-14).

죽을 각오(Ready to Die) (사도행전 21장 13절)

죽을 각오 (Ready to Die)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 사도행전  21 장 13 절 ).         싸울 때에 죽을 각오를 하고 달려드는 사람은 참 무섭습니다 .   그 이유는 그 사람은 생명을 걸고 싸우기 때문입니다 .   자기가 싸우다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무섭게 달려들면 그 누가 막겠습니까 .    오늘 우리는 본문 사도행전 21 장 13 절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고 하는 사도 바울을 봅니다 .   성령님이 각 성에서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고 그에게 증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20:23)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결심에는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   그 각 성 중에서 오늘 본문은 가이사랴 ( Caesarea ) 에 도착한 바울을 우리는 봅니다 .   그리고 거기서 아가보라 하는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 ( 바울 ) 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 ( 로마인 ) 에 넘겨주리라” (11 절 ) 고 예언하였습니다 .   그리하였을 때 그 말을 들은 바울의 일행과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였습니다 (12 절 ).   그 때 바울은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고 말하면서 (13 절 )  자기는 주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13 절 ).   바울은 예수 그...

죽을 각오를 하고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자 하는 주님의 종은 말릴 수가 없습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자 하는  주님의 종은 말릴 수가 없습니다 .     “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 현대인의 성경 ) “ 그러나 바울은  ' 왜 이렇게 울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하시오 ?  나는 주 예수님을 위해 예루살렘에서 묶이는 것뿐만 아니라 죽는 것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  하고 대답하였다 .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으므로 우리는 주님의 뜻대로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서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 ( 사도행전  21 장  13-14 절 )            오늘 새벽에 미국에 와서 제일 먼저 알게된  38 년 넘게 아는 친구의  15 살 밖에 안된 막내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접했습니다 .   그 소식을 접한 후 저는  SNS( 소셜네트워크서비스 ) 로 친구 부부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이 함께 하시길 기원한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   그러면서 저는 친구에게 두 부부가 보여준 믿음의 본에 감사했습니다 .   그리고 저는 그 친구 형제에게 그의 사랑하는 막내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습니다 .   제가 그리 말한 이유는 지난 번 친구를 만나서 그의 아들에게 대하여 들은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저는 그 친구를 통해 그 친구의 아들이 암으로 인해 방사선 치료를 받는 그 고통스러운 과정에서도 눈물을 흘린 이유가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고 (displeased)  오히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어서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