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 라며 영적 파산을 선언할 때 , 하나님은 낙타 같은 죄인을 바늘귀로 통과시키시는 구원의 기적을 행하십니다 . “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 누가복음 18:24-27).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8 장 24-27 절 말씀을 한국어 성경으로 읽은 후 헬라어 성경으로 읽을 때 제일 먼저 한국어 성경으로는 번역되지 않은 “ ὁ Ἰ ησο ῦ ς [περίλυπον γενόμενον]”( 호 이에수스 [ 페릴뤼폰 게노메논 ]) 라는 문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이 문자의 의미는 무엇이고 왜 한국어 성경책에는 번역되지 않은 것일까요 ? 1. 문장의 의미 분석 이 문장은 두 단어로 나뉘어 문자 그대로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집니다 . “ ὁ Ἰ ησο ῦ ς”( 호 이에수스 ): ' 예수께서 ' ( 주어 ) “περίλυπον γενόμενον”( 페릴뤼폰 게노메논 ): ' 매우 슬퍼하시며 ' 또는 ' 근심에 싸이신 채 ' ( 분사구문 ) “περίλυπος”( 페릴뤼포스 ) 는 ' 주위에 ' 를 뜻하는 ' 페리 (περί)' 와 ...
부모의 생명과 자식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특별히 사랑하였던 라헬이 낳은 요셉 ( 창세기 37:3, 현대인의 성경 ) 이 맹수에게 찢겨 죽은 것이 틀림없다 (44:28, 현대인의 성경 ) 고 생각하고 살고 있었는데 라헬이 낳은 또 하나의 아들은 베냐민에게마저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면 백발이 된 자기를 슬픔 가운데서 무덤으로 내려보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42:38, 현대인의 성경 , 참고 : 44:29, 현대인의 성경 ). 그정도로 아버지 야곱의 생명과 야들 베냐민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었습니다 (44:30). 그래서 야곱의 아들 유다는 이집트 총리 ( 요셉 ) 에게 " 우리가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 만일 이 아이가 우리와 같이 가지 않으면 아이가 없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죽게 될 것입니다 . 이렇게 되면 백발이 된 아버지를 우리가 죽이는 셈이 됩니다 ... 내가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고 어떻게 아버지에게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 아버지에게 불행한 일이 닥치는 것을 내가 차마 볼 수 없습니다 " 라고 말했습니다 (30-31 절 , 34 절 , 현대인의 성경 ).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제가 몇 년전 딸 아이에게 ' 아빠는 첫째 아기 주영이가 내 품에서 죽었는데 너까지 죽으면 아빠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을 것 같다 ' 라고 말한 기억이 납니다 . 부모의 생명과 자식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다는 말씀 (30 절 ) 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