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1)
[데살로니가전서 1장 4-5절 말씀 묵상]
오래 전에 저희 교회 나오던 형제 한 사람이 저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선택하셔서 천국에
가게 하시고 누구는 선택을 안하셔서 지옥에 가야하는지 하나님은 불공평하시다.’ 그 때 저는 중학생이었는데 그 형제의 말을 듣고 아무 답변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그 형제가 하나님이 불공평하게 느껴지는 것에 대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하였지만 그 말에는 동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제가 그 때 그 형제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던 이유는 제 생각엔 완전한 하나님께서는
불공평하실 수가 없다고 제 나름대로 믿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그 형제가
말한 것처럼 왜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선택하시고 누구는 안하셨는지에 대한 답변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렇게 답변할 만한 믿음이나 성경적인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형제의 말에 저는 이렇게나마 답변을 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공평하심은 우리 모두가 죄를 지은 자들로서 마땅이 지옥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공평하심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를 선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사 우리에게 모든 영적인 축복을 주셨습니다.
성경 에베소서 1장 3-5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모든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우리를 자기 자녀로 예정하셨습니다”(현대인의 성경). 이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사 창세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셨다는 그 자체가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께 선택을 받으셨다고 믿으십니까? 만일 “예”라고 대답하셨다면,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께 선택 받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1장 4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형제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인 실루아노와 디모데(1절)는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 대답을 오늘 본문 5절 상반절에서 찾아 보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기쁜 소식이 말로만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현대인의 성경)[(개혁개정)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데실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는가 하면 자기와 실루아노 및 디모데가 그들에게 기쁜 소식인 복음을 전하였을
때 그저 말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5절).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입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하심의 기쁜 소식을 전했을 때
왜 그 복음을 들은 상대방에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지 않았을까요? 왜 그들의
삶에 아무 변화도 없어 보이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그들에게 전한 복음이 그저
말로만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전한 복음이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5절). 그러면 복음이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해졌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능력”으로(in power) 전해졌다는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다.
여러분, 우리가 전도하고 싶은 사랑하는 가족 식구나 친구 등 이웃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에 우리가 반드시 믿어야 할 성경 구절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바로
로마서 1장 16절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현대인의 성경) “나는 이 기쁜 소식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처음에 유대인에게만 해당되었으나 이제는 이방인에게도 전파되어 모든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쓴 이 편지 내용을
보면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이유는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인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복음이 “모든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여기서 “구원”이란
무엇인지 이미 원로 목사님을 통해서 수요기도회 때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인용하여 3가지로 묵상했었습니다:
(1) 첫째로, 죄책에서의 구원입니다.
우리가 죄 진것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
책임이란 죽음입니다[(롬6:23상) “죄의 삯은 사망이요”]. 죄의 형벌인 죽음이란 (a) 육체적 죽음, (b) 영적 죽음 그리고 (c) 영원한 죽음(지옥에서의 영원한 형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 받았습니다. 우리가 형벌을 면하였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영생의 복이 주어졌습니다. (2) 둘째로, 죄의 종에서 자유함입니다. 우리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었습니다(엡2:2-3). 즉, 우리는
사단의 종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습니다. (3) 셋째로, 죄의
오염에서의 구원입니다. 우리 본성은 죄의 오염되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을 때는 선했지만 아담의 죄로 인하여 우리 본성은 부패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여기서 죄의 오염에서 구원을 받아 우리의 본성이 선하고 깨끗해졌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을 때 그 복음이 능력으로 전해져서 우리가 죄에서 구원(죄책에서의 구원, 죄의 종에서 자유, 죄의 오염에서의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을 받아 더 이상 사단의 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영원한 생명의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경험한 자들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경험한 자들이요 또한 믿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자들은 복음의 능력으로 또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고후13:4).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성령”으로(in the Holy Spirit) 전해졌다는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다.
여러분, 우리가 전도하고 싶은 사랑하는 가족 식구나 친구 등 이웃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에 우리가 반드시 믿어야 할 성경 구절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바로
고린도전서 12장 3절입니다: “… 또 성령으로 아니 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아무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성령으로 데살로니가에 있는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들에게 전해졌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그들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 에베소서 1장 13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여러분도 진리의 말씀인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이를 확인하는 표로 약속하신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구원의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성령님을 주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확인하는 표입니다. 여러분, 성령님의 역사가 없이는 우리가 복음을 들어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없이는 우리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행16:14). 성령님의 역사가 없이는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달을 수도
없고 자복할 수도 없고 회개할 수도 없습니다. 성경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오순절 날 성령 충만했던 사도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히 전했을 때 약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 복음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라고 물었습니다(행2:37, 현대인의 성경). 그 때 베드로는 그들에게 “여러분, 모두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 사함을 받으십시오.
…”라고 말하였습니다(38절, 현대인의
성경). 그 말대로 순종하여 그 날에 신도의 수가 3000명이나 추가 되었습니다(41절, 현대인의 성경).
복음이 전파될 때 성령님의 역사가 있으면 상대방의 마음의 문이
열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마음의 찔림 속에서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며 예수님을 나의 구주요 주님으로 영접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 식구나 친구나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야 복음을 듣는 사람의 마음이 열리고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령님의 역사가 있을 때 복음을 듣는 상대방이 진정한 회개를 하므로 예수님을 영접하여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큰 확신”으로(with full conviction) 전해졌다는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다.
여러분, 우리가 전도하고 싶은 사랑하는 가족 식구나 친구 등 이웃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에 우리가 반드시 믿어야 할 성경 구절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바로
빌립보서 1장 6절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 확신하노라” [(현대인의 성경) “여러분 가운데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실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사도 바울은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 확신이란 바로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 가운데 시작한 착한 일, 즉 구원의
일을 반드시 완성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바울의 확신은 결코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근거한 확신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 확신은 하나님에게 근거한 확신이었습니다. 즉, 바울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서 선택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반드시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이 확신이 있었기에 그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간구할 때 항상 감사와 기쁨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랑하사 창세 전에 선택하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원의 일을 완성하신다는 믿음의 확심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랑하사 선택한 사람들에게
구원의 일을 시작하심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을 사용하셔서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게 하시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셨을 뿐만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로 그들의 마음 문을
여시고 복음을 듣게 하시사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케 하셨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큰 확신”(with full conviction)이 임하였습니다. 그 큰 확신은 적어도 2 가지였다고 생각합니다:
(1) 첫째로, 죄에 대한 큰 확신이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 죽으심으로 말미암은
죄 사함의 메시지가 있습니다(눅24:47, 행10:43,
13:38, 엡1:7).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때 죄 사함의 메시지를 듣는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은 죄에 대한 확신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확신이 든 사람은 자신의 마음(양심)에 찔림 속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 죄 없이 함을 받습니다(행3:19).
(2) 둘째로, 구원에 대한 큰 확신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죄에 대한 큰 확신 속에서 동시에 성령님이 주시는 큰 확신은 바로 구원에 대한 확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의가 나에게 전가되었으므로 내가 하나님께 의롭다하심을
얻었다는 사실을 믿게 됩니다(롬4:25). 그러면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확신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성경 요한1서 5장 11-12절을 보십시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여러분, 어떻게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께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요? 어떻게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형제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그 복음이 “말로만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5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제가 전에 즐겨 부르던
미국 복음성가 중에 “Why have You chosen me?”(왜 나를 선택 하셨나요?)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제가 이 노래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가사가 제 마음에 다가왔기 때문임. 한국어로 번역해 보았습니다:
(1절)
‘하나님, 하나님은 제가 하나님에게 범한 모든 잘못들을 아시면서도
왜 저를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습니까
어떻게 당신은
나의 죄들을 용서하실 수가 있으십니까
나를 구원해
주시고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2절)
그러나 주님
당신께서 제가 어떠한 사람이 되길 원하시는지 도와주세요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고자 분투하겠습니다.
제 삶을
주님께 받칩니다, 당신을 위하여 살아가겠습니다.
당신의 옆에서
끝까지 걷겠습니다.
(후렴)
저는 크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저 같은 사람을 사랑해 주시는지,
기꺼이 복
주시를 원하시는지 놀랍습니다.
그 분의 사랑은 너무나 놀랍고, 그 분의 긍휼은 너무나 풍부합니다.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저의 고백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7년 7월 24일, 능력과 성경님과 큰 확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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