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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은 지혜의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은 지혜의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 입니 다 .   지혜의 하나님이시요 능력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 자체가 지혜요 능력 입 니다 .   그 말씀 , 그분의 가르치심을 듣고 감탄한 회당 안에 모였던 사람들처럼 지금도 교회당에 모여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인 하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 새찬송가 200 장 “ 달고 오묘한 그 말씀 ” 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찬양드릴 수 있길 기원합니다 : (1 절 )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귀한 그 말씀 진실로 생명의 말씀이 나의 길과 믿음 밝히 보여주니 , ( 후렴 )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2) (빌립보서 2장 5-11절)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2)

 

[빌립보서 2 5-11절 말씀 묵상]

 

여러분혹시 “왕자와 거지”라는 동화 이야기 아십니까?  왕자와 거지가 만나서 서로 옷을 바꿔입고 왕자가 거지생활을 하다가 왕자로 돌아가려고 노력을 하고거지는 왕자가 되어 정치를 조금씩 이해해가는 상황이였습니다.  왕자는 처음 거지생활에 익숙치 못하고 여러 사람에게 "나는 왕자다"하면서 왕자라는것을 밝히려 하지만 오히려 미친놈 취급을 받아 여러 사람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그때 거지는 점점 왕자의 생활에 익숙해 지고나라일을 조금씩 해나갔지만 거지역시 "나는 한낮 거지에 불과합니다라고 사실을 밝혔지만 사람들은 "왕자님께서 미치셨다!" 라고 생각하고 더 잘 모시려고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야기 끝에 왕자와 거지는 만나게 되었고 서로 만나서 왕자는 다시 왕자 아니 왕으로 되었습니다.  왕자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않고 끝까지 버텼기 때문에 결국에는 왕이 되었습니다(인터넷).  이 동화이야기가 생각난 이유는 오늘 본문 빌립보서 2 7절에서 예수님께서 “근본 하나님의 본체”(being in very nature God)신되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제(taking the very nature of a servant)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왕자가 거지 생활을 했다는 것과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종이 되셨다는 것과는 천지 차이가 있겠지만 조금이나마 예수님의 성육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기에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둘째로우리 모두가 품어야 할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은 우리 자신을 비워 종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빌립보서 2 7절을 보십시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but emptied Himself, taking the form of a bond-servant, and being made in the likeness of men. (NASB)].  여러분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가리켜 “성육신”(incarnation)이라고 말합니다“성육신이란 요한복음 1 14절에 있는 말씀에 근거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사건을 의미한다이 말씀은 세상의 창조 이전부터 계신 분이며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을 뿐만 아니라 이 말씀 자신이 곧 하나님이시다.( 1:1)  요한의 증언에 따르면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이 말씀을 통하여 지음을 받았다(3).  이 말씀은 이제 육신이 되어서 사람들 사이에 거하셨는데이 말씀은 참 빛이며 모든 사람들의 생명이다(4).  육신이 되신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서 우리에게 오셨는데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의 사건이 곧 성육신의 사건이다.  성육신의 개념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곧 자기를 비워 모든 조건에서 인간과 같이 된 것을 의미한다  성육신은 모든 만물을 지으신 분이 지음을 받은 존재 가운데 하나가 되었음을 뜻한다”(인터넷).  여기서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우셨다[made himself nothing/emptied himself]는 말씀은 하나님의 성품이나 본질 등 하나님의 “정체”를 비우셨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만 내어 놓으셨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예수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신성을 내어 놓으셨다는 의미가 아니고 하늘 영광을 떠나셨다는 것입니다(박윤선).  이렇게 하늘 영광을 다 내려 놓으시고 “근본 하나님의 본체”(being in very nature God)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사 “종의 형체”(taking the very nature of a servant)를 가지셨다(2:6-7)는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주님이시지만모든 것의 종이 되는 낮은 자리로 내려오셨다”는 말입니다(박윤선).

             

놀랍지 않습니까?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종이 되는 낮은 자리로 내려오셨다는 사실이요?  여러분왜 예수님께서는 종의 되는 낮은 자리로 내려오신 것일까요?  마태복음 20 27-28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주님이심에도 불구하시고 우리의 종이되신 이유는 우리를 섬기려 하시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대속물이란 헬라어의 의미는 노예나 포로를 해방할  지급하는 몸값(속적)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을  밖에 없는 죄를 지은 우리를 죄의 노예()에서 해방(자유)시키시고자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걸머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주님이신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마땅히 섬김을 받으셔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우리를   섬기려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불러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9:35).  지금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우리에게도 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 이웃을 어떻게 섬길 수 있을까요?

                       

2007년 우리 승리장로교회의 표어는 “섬기는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섬기는 교회로서 “겸손히 교회를즐거운 마음으로 가정을자발적으로 이웃을” 섬기자고 도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해 첫째 주간에 특별새벽기도회 때 하루 하루 섬김에 대한 말씀 중심으로 설교를 했었습니다.  그 주간 셋째날 에베소서 6 5-7절 말씀 중심으로 설교를 했었는데 새벽기도회 후 교회의 집사님 한 분이 이런 글을 써서 이 메일로 보내셨습니다“각자의 삶 속에서 ---가정과 사회,직장 또 교회에서---우리가 섬겨야 할 대상이 있습니다어떻게 그들을 섬겨야 합니까?  우리는 순종함으로 그들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순종하지 못함은 내뜻과 내주장이 너무 뚜렸하고 강하기 때문입니다.  직장상사에게,학교 선생님들에게,부모님께,교회의 목사님과 어른들께 순종하지 못함은 우리에게 종의 의식노예의식의 결여로 인함입니다또한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을 주인으로 섬기며 그에 대한 순종의 훈련이 부족함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3 5절에서 자기나 아볼로나 “사역자”(servants)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사역자”란 헬라어 단어는 “diakonoi”으로서 우리가 익히 들어 아는 “deacon즉 “집사”란 말이 그 단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섬기는 사람들’라는 뜻입니다.  그런 후 바울은 고린도전서 4 1절에서 자기와 자기의 동역자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일꾼”(servants of Christ)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영어로는 “사역자”나 “일꾼”이나 다 servants ‘섬기는 사람들’이란 의미입니다.  그러나 원어 헬라어를 보면 “사역자”란 ‘섬기는 사람들’이란 뜻이지만 “일꾼”이란 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일꾼”이란 헬라어 단어 “huperetes”는 문자적 의미는 배 밑에서 ‘노 젓는 사람’(under rowers)을 뜻합니다.  John MacArthur 목사님에 의하면 그 당시 배 밑에서 노 젓는 노예들은 제일 천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요아무도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이요 또한 제일 경멸을 받는 사람들이였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단어가 나중에 와서는 모든 권위에 절대 복종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된 것입니다(MacArthur).  결국 사도 바울은 자기나 아볼로나 베드로를 자랑하는 육신에 속한 고린도 교회 사람들에게 자기나 자기의 동역자들은 그리스도의 “하인”(또는 “하급 노예”)(박윤선)로서 주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주님의 노예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들로서 주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주님의 노예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노예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언젠가 제가 설교하면서 우리에게는 “노예 근성”이 필요하다고 말한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왠지 우리는 노예 근성이나 노예 의식보다 ‘주인 근성’과 ‘주인 의식’이 더 많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을 섬기는지 아니면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섬김을 받고 있는지를 보면 알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우리에게는 섬김의 의식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종의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의식을 가지고 우리는 형제자매들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말고 그/녀를 나보다 낫게 여기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3년 전에 사랑하는 딸 예리가 귀걸이를 하기 전에 제가 촐애굽기 21 1-6절에 나오는 말씀을 이야기를 얘기해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성경 이야기를 보면 하나님의 법규가 나오는데 그 법규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6년 동안 섬기다가 7년 째에는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2).  그런데 만일 그 종이 “내가 상전과 내 처자[만일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주었다면 그녀는 상전에게 속하기에 그와 함께 자유인이 될 수 없기에(4)]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5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뿐만 아니라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에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6).  저는 그 이야기를 예리에게 말해주었는데 감사하게도 그녀는 그 성경 말씀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딸 아이에게 ‘만일 너가 귀걸이를 꼭 하고 싶다면 그 성경 말씀에 나오는 노예처럼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께 종이 되겠다는 헌신을 해라’고 권면했습니다‘그러면 이 아빠는 너가 귀걸이 하는 것을 허락하마’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이 성경 이야기를 생각할 때 그 말씀에 근거하여 만든 미국 복음성가 Pierce My Ears(내 귀를 뚫으소서)라는 찬양이 생각납니다.  그 가사를 제가 한국어로 번역해 보았습니다: (1오 주님 나의 하나님이 날 저를 당신의 문으로 데리고 가소서저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않겠습니다주님 저는 머무르고자 여기에 있습니다, (2당신은 저를 위하여 값을 치루셨습니다당신의 피로 저를 구속하셨습니다이제 저는 당신만 영원히 섬기겠습니다주님 저는 머므르고자 여기에 있습니다, (후렴그러므로 오 주님 나의 하나님 저의 귀를 뚫으소서이 날 저를 당신의 문으로 데리고 가소서이제 저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않겠습니다오 주님 저는 머무르고자 여기에 있습니다.  언젠가 새벽기도회 때 이 찬양을 부를 때에 제 마음에 십자게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이 생각났습니다.  영원히 멸망할 수 밖에 없었던 저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그 예수님으로 인하여 영원히 죄의 종 노릇 할 수 밖에 없었던 제가 구원을 받아 죄에서 자유를 누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는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21장에 나오는 종이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제 칠년 째 자유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하기를 거부하고 사랑하는 상전을 영영히 섬기고자 송곳으로 귀를 뜷은 것처럼 저 또한 제가 사랑하는 주님과 제 아내와 자녀들을 위하여 자유하기를 거부하고 영영히 주님을 섬기겠노라고 마음의 귀를 뜷었습니다.  온전히 제 마음을 받쳐 영영히 주님만을 섬기고 싶은 마음을 주님께 고백했습니다.  이러한 고백 가운데서도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에 주님의 종으로서 노예 의식(slave consciousness)보다 상전 의식(master consciousness)이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보게 해주시면서 저의 죄를 자백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빌립보서 2 4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을 구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우리 모두 상전 의식을 버리고 노예 의식을 가지고 겸손히 주님을  섬기십시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 이웃을 섬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4 12 14우리를 높이시고자 자기를 비우시고 낮고 낮은 이 땅에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과 같이 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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