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설교에 대한 나의 고민

  https://youtu.be/7gw7qr-zJsA?si=UYNXPlNlgtI1j3Cg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2b) (데살로니가전서 1장 4-10절)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2b)

 

 

[데살로니전서 1 4-10절 말씀 묵상]

 

 

여러분지금 여러분의 믿음은 자라나고 있습니까?  작년보다 금년여러분의 믿음은 더 견고해졌는지요?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서 견고해 지기 위해선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성경 로마서 10 1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믿음은 듣는데서 생기고 듣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비롯됩니다”(현대인의 성경)[“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경 공부도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서 성경책도 읽으면서 성경문답도 하고 또한 조용한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도 묵상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믿음이 자라나지 않는 것 같고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주님을 믿는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충분히 답답해 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저는 그 답변을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1 6절 상반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은 많은 고난 중에서도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저는 이 말씀 속에서 왜 우리의 믿음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 만큼 자라나지 않고 견고하지 못한지 한 2가지 이유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그 첫번째 이유는우리에게는 고난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고난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시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우리는 우리에게 닥치는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를 좀 알 수가 있습니다.  새찬송가 543 “어려운 일 당할 때” 1절 가사를 보면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가사처럼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적은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더 주님을 의지하고자 작은 몸부림 속에서 하나님께 간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책으로 돌아가 하나 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읽습니다.  성경 시편 119 67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그릇 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큰 유익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적은 것만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그릇 행하고 있어던 죄도 깨닫고 돌이킬 수 있는 은혜도 누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법(말씀)을 배우게 됩니다(71).  이러한 우리의 신앙에 유익한 고난이 없기에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고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지 않고 견고하지 못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살전1:6).  여러분어떻게 고난 가운데 있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나요?  오히려 우리는 슬픔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나요?  그게 자연스러운게 아닌가요?  어떻게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으므로 많은 환난을 당하고 있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을 수 있었을까요?  이것이 바로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그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어떻게 성령님께서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많은 환난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게 하셨을까요?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1 5절을 보십시오: “이는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  성령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그들 마음에 기쁨을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성령님은 최고의 기쁜 소식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고난 중에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복음입니다!  새찬송가 336 “환난과 핍박 중에도” 1절 가사가 생각납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이 신앙 생각 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이 기쁨이 저와 여러분에게도 충만하길 기원합니다.

 

둘째로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에 대한 소문이 곳곳에 퍼졌습니다.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1 8절을 보십시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현대인의 성경)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통해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널리 퍼졌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의 믿음에 대한 소문이 곳곳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여러분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께 사랑하심을 입어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는가 하면 하나님을 믿는 그들의 믿음의 소문이 곳곳에 펴졌기 때문입니다(8).  여기서 저는 한 3가지를 좀 간략하게라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1)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은 “하나님을 향하는” 믿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유대인들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향하는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질 정도였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제 생각엔 많은 환난에 그들로 하여금 더욱더 성령님의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계기가 되어 그들의 믿음이 더욱더 성장하고 견고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신앙 때문에 고난을 당할 때 둘 중에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고난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원망하여 입술로 죄를 짖던지 아니면 고난으로 인하여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더욱더 견고해 지던지.  저와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제가 고 장을수 할머님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그 분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양로원에 계실 때에 제가 찾아뵐 때마다 함께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또한 그 분이 시편 23편과 주기도문을 외우시면서 저에게 종종 말씀하셨던 것은 예수님을 그리도 보고 싶어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러한 상황에서도 더욱더 주님을 사모하고 찬양과 경배를 드릴 수 있습니까?  그 분은 숨질 때까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오히려 교회에 나오셨을 때보다 더 자라나고 견고해 지셨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믿음을 우리도 소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2)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소문이 어떻게 퍼졌는가 하면 그들을 통하여 주님의 말씀이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널리 퍼졌다는 사실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어떻게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자신들의 신앙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까지 널리 퍼졌다는 사실이요?  그들은 많은 환난 중에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자신들의 신앙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그 와중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는 말입니다.  분명히 그 복음을 전하면 유대인들이 싫어하므로 더욱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핍박했을텐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마게도냐와 아가야까지 널리 퍼진 것입니다.  여러분한번 이렇게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 승리장로교회 식구들이 신앙 때문에 여기 Los Angeles에서 불신자들에게 핍박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캘리포니아 전체 뿐만 아니라 네바다 주까지 널리 퍼졌다면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여러분복음 전파자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어느 정도로 사랑하는가 하면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합니다.  그러기에 어떠한 역경과 고난 및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타협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더 믿음에 견고히 서서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히 전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야 하지 않겠습니까?

 

(3)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 믿음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할 것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우리 한국어 중에 ‘할말을 잃었다’는 말이 있죠?  왜 그런 말을 사용하나요?  주로 우리가 생각하기에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할말을 잃었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외에도 우리가 ‘할말을 잃었다’란 말을 쓰는 이유는 너무나 놀랍고 굉장해서 그 문구를 사용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한국에서 미국에 여행 온 사람이 웅장한 그랜드 캐년을 보면서 그 앞에서 놀라서 할말을 잃는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1 8절에서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사실을 알고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다(we have no need to say anything)고 말하였습니다.  그 의미가 뭘까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소문난 믿음에 대해 아무 할 말이 없다는 말이 아닐까요?  바울이 그들의 믿음의 소문을 듣고 무슨 말을 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제 주위에 훌륭한 믿음의 소유자를 보면 제가 그 분들에 대한 믿음에 대해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제가 목사라 한들 목사보다 훌륭한 믿음을 가진 성도님들에게 대해 뭐라고 할말이 있겠습니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할말을 잃을 정도로 위기와 역경 속에서도 잠잠히 하나님만을 신뢰하면서 인내하고 견디며 결국에는 승리하는 형제자매들의 모습을 보면 참 놀랍지 않습니까

 

      여러분우리 승리장로교회 모든 식구들이 이러한 놀라운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어떠한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견고히 서서 요동하지 않고 인내하며 견디는 가운데 결국에는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의 소문이 여기 저기에 널리 퍼지길 기원합니다.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뵈어도 오직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묵묵히 걸어가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7 8 15우리 승리장로교회 식구들의 믿음의 소문이 점진적으로 더 퍼져 나아가길 기원하면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