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
[전도서 5장 13-20절 말씀 묵상]
여러분들은 세계에서 제일 갑부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지난
주 인터넷 뉴스를 보니까 “2010 세계 부자 순위, 빌게이츠 1위에서 물러나다. ..”란 제목 아래
기사가 실렸는데 올해 2010년 세계에서 제일 부자(갑부)는 멕시코에 카를로스 슬림 헬루라고 합니다(Net Worth: $53.3 billon)(인터넷). 카를로스 슬림 헬루라는 사람은 나이 70세에 창업을 통해서 돈을 벌었는데 그가 운영하고
있는 회사는 라틴 아메리카의 최대 텔레콤 회사라고 합니다. 어느 정도 이 사람이 부자인가
하면 멕시코 인들이 하루100원을 쓴다면 이 중 70원은 이
사람의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카를로스
슬림 헬루 텔맥스텔레콤 회장이 한 해 동안 순자산을 185억달러 늘려 총 535억달러(약 60조6500억원) 로 세계 최고 부자가 됐다고 합니다(인터넷). 최고 부자가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나온 것은 1994년 이래 16년 만이다고 합니다. 지역별로 보면 올해 2010년 새롭게 탄생한 신규 억만장자는 아시아가 97명으로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또한 중국이 처음으로 2위 억만장자 국가로 부상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억만장자가 4명에 그쳤던 우리나라는 올해 11명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총자산이 두 배 이상 급증한 72억달러로 205위에서 100위로 껑충 뛰었다고 합니다. 과연
이들이 어떻게 이렇게 큰 갑부가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 전도서 5장 19절을 보면 지혜자 솔로몬 왕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여기서 우리는 지혜자 솔로몬 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세 가지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재물과 부요를 주시는 하나님이란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란 전도서 5장 10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은을
사랑하는 자”들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돈을 사랑하는 자에게 재물과 부요를
주시지 않습니다. 만일 주신다하여도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징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재물과 부요가 돈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저주(징벌)이 될 수 있습니까? 그 징벌 중 하나는 바로 욕심의 배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자에게 돈이 더
많아지면 결국은 그 돈으로 인하여 욕심이 더욱더 생겨서 결코 만족함이 없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징벌입니다. 만족함이 없는 욕심의 배를 갖는다는게 얼마나 큰
저주입니까? 만족할 수 없는 욕심의 배를 소유한 돈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결코 마음에 평온함이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란 돈을 사랑하는
자들을 가리키기 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재물과 부요를 주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시편 112편 1-3절을 보십시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 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되 부요와 재물을 그 집에 주십니다. 그러면 과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재물과 부요의 축복을 어떻게 주십니까? 신명기 8장 1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재물 얻을 능”을 주시므로 재물과
부요의 축복을 주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능력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물질이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재물과 부요를 능히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이란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참 어리석고 어리석은 사람은 풍부한 재물을 가지고도 그 재물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누린다 해도 헛된 쾌락에 그 재물을 사용하는 자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왜 그들은 어리석게도 풍부한 재물을 누리지
못합니까? 저는 그 이유가 오늘 본문 전도서 5장 13절에서 찾아 보는 것입니다: “내가 해
아래서 큰 폐단 되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 되도록 지키는 것이라.” 왜 풍부한 재물을 누리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재물의 소유주가 자기의 재물을
자기에게 해 되도록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입니까? 왜 자기에게 해가 될 정도로 재물을 왜 지키는 것입니까? 그 근본 이유는
자기 자신보다 돈(재물)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돈이 사람의 생명보다 더 귀할 수 있습니까? 박윤선 박사님은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영원히 가지지 못할 것에 생명을 받침은 해로운 일이다"(박윤선). 참 큰 폐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에게 해가 될정도로 지키려고 했는데 그 재물을 재난으로
인하여 다 잃어버리게 되므로 말미암아 결국 자식들에게도 물려 줄께 하나도 없이 빈손이 되는 것을 솔로몬 왕은 이 세상에 보았습니다(14절). 그러므로 솔로몬 왕은 오늘 본문 전도서 5장 15-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것도 폐단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가 저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결국 이 세상은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수고를 많이 해서
재물을 많이 모았다 해도 우리가 죽을 때에 가지고 갈 수있는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해하면서 재물을 풍부하게 모았은들 무엇합니까? 누리지도 못할 뿐 아니라 재난으로
인해 그 모았던 모든 재물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 결과 “일평생을 어두운데서 먹으며 번뇌와 병과 분노가 저에게 있느니라”고 솔로몬 왕은 오늘 본문 17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미련한 부자는 평생 바람을 잡으려는 헛된
수고를 한 것 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아니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지혜로운 자들은 하나님께서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재물의 능을
주셔야 우리가 재물을 풍부하게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풍부한 재물 또한 하나님께서 능히 누리게 하셔야 우리가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란 사실입니다.
지혜자 솔로몬 왕이 해 아래서 본 큰 폐단(13절)은 소유주가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재물을 지키는 것이요 그리고 그 재물을 지키다가 재난을 만나 그 모든 재물을 잃어버리는 것(14절)이었습니다. 즉, 솔로몬 왕이 본 큰 폐단은 바람을 잡으려고는 헛된 수고를 하는 것이였습니다(16절). 그것과 더불어 솔로몬 왕이 본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있었습니다(18절). 그것을 오늘 본문 18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 지혜자 솔로몬
왕이 본 선하고 아름다운 것은 일평생 먹고 마시며 이 세상에서 수고하면서 낙을 누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솔로몬 왕은 먹고 마시는 즐거움과 수고 가운데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박윤선).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수고하는 자에게 주시는 분복이라고 솔로몬 왕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분복”이란 무슨 뜻입니까? 분복(히브리어: amal)이란 '각자가 타고난 복'이라는 뜻이고, 이 단어의
원어 의미는 '수고,' '일,' '고생' '고난'이란 뜻입니다. 즉, '타고난 복이'란 결국 각 사람이 일하며 수고하며
고생하면서 살아가는 그 자체입니다(인터넷). 중요한 것은 일하며 수고하며 고생하는 가운데 마음에 즐거움이 있는가입니다. 여러분은 일하며 수고하며 고생하시는 가운데 마음에 즐거움이 있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던지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고생하며 일을 하던지(19절) 과연 여러분의 마음에 즐거움이 있으십니까? 오늘 본문 19절을 보면 이러한 마음에 즐거움은 하나님의 선물(the gift of God)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절 하반절에서도 솔로몬
왕은 “하나님이 저의 마음의 기뻐하는 것으로 응하”신다고(God keeps him occupied with gladness of heart)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선물로 주시는 즐거움(기쁨)을
받아 누리시고 계십니까? 중요한 것은 재물이 많고 적음이 아닙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마음에 즐거움이 많이 있느냐 적게 있느냐입니다. 만일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즐거움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생명의 날을 깊이 관념치 아니할 것입니다(20절).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신적 기쁨을 누리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아름다운 일을 하며 수고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세 가지 교훈을 받았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재물과 부요를 주시는 하나님이란 사실과,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재물과 부요를 능히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이란 사실, 그리고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란 사실을 우리는 배웠습니다. 과연 이제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우리가 이미 묵상한 전도서 3장 12-13절이 생각납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기뻐하면서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게 없다는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먹고 마시는 즐거움과 더불어 수고함으로 즐거움을 누리는 것보다
나은게 없다는 말씀입니다. 바라기는 이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영적인 복, 인복, 물질의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0년 3월 17일, 복의 근원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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