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에게 던져진 사악한 두 질문들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현대인의 성경)
“그래도 예수님이 침묵을 지키시고 대답을 하시지 않자 대제사장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
하고 다시 물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렇다. 내가 전능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은 것과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볼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마가복음14:61-62)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마가복음14:61)하고 마가는 기록하였는데,
마태는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마태복음26:63)하고 기록하였고,
누가는 “날이 새매 백성의 장로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여서 예수를 그 공회로 끌어들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누가복음22:66-67)하고 기록하였습니다.
(a)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에게 던져진 질문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1)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와 (2) ‘네가 그리스도냐?’ 이 두 질문을 마태에 의하면 “대제사장 가야바”(마태복음26:57)가 예수님에게 던졌다(63절)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질문에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죄책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을 판 자는 가룟 유다였지만 율법의 교묘한 올가미와 교권주의자들의 사악한 질문을 통해 예수님을 처형할 합법적 이유를 구체적으로 마련한 자는 바로 대제사장 가야바였던 것입니다.
실로 가야바는 이 적나라한 질문을 통해 율법적으로는 신성 모독의 범죄를 찾고자 했으며 정치적으로는 반란 음모죄를 찾고자 했던 것입니다(호크마).
(i)
이렇게 가야바가 예수님을 처형할 합법적 이유를 구체적으로 마련하려고 했던 것은 이미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 뜰에 모여 예수님을 흉계로(교묘하게) 잡아 죽일 방법을 의논했기 때문입니다(마태복음26:3-4;
마가복음14:1,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는 예수님을 죽이려고(사형에 처하려고)
예수님을 칠 증거를 찾았던 것입니다(마가복음14:55).
·
여기서 “흉계”는 속임수,
교활함 또는 배신의 존재나 행위를 나타냅니다.
성경에서 이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품과 그분의 백성 간의 언약 관계를 훼손하는 미묘하고 종종 숨겨진 조작을 지속적으로 묘사합니다.
신약에서는 이 용어가
11번 사용되며,
자연적인 마음의 구부러진 계획과 구속받은 자에게 요구되는 투명한 의로움 사이의 명확한 대조를 그립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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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6장 4절과 마가복음
14장 1절은 예수님을
“교활하게” (δόλῳ) 붙잡으려는 음모자들의 계획을 전하며,
하나님께서 구속을 공개적으로 이루고 계신 바로 그 시간에 반대자들이 사용하는 은밀하고 속임수에 의한 전술을 강조합니다.
마가복음
7장 22절은 속임수를 타락한 인류의 내면에서 나오는 마음의 죄로 나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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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적 의미(인터넷):
1.
성품의 계시
속임수는 하나님과 반대됩니다.
“그 안에는 변함이나 회전하는 그림자가 없다”
(야고보서
1:17). 교활하게 행동하는 것은 뱀,
즉 “거짓의 아버지”
(요한복음 8:44)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론적 순수성
예수님의 결점 없는 진실성은 그분의 메시아적 정체성을 증명하며,
그분을 흠 없는 제물로 자격을 갖추게 합니다.
3.
교회적 청렴성
사도적 사역은 조작적인 방법을 거부하고 직설적인 방식을 모델로 제시합니다.
바울과 베드로는 동일한 입장을 취합니다:
진정한 선포는 정직에 의해 좌우됩니다.
4.
도덕적 변화
중생은 “각각 이웃과 진리를 말하는” 백성을 만들어냅니다
(에베소서
4:25). 그러므로 속임수는 단순한 결점이 아니라 새로 태어남을 부정하는 실존적인 부정입니다.
(ii)
대제사장 가야바가 던진 질문 중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는 물음은 ‘네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본체이신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신적 속성을 지니고 있느냐?’는 것이며,
‘네가 그리스도냐?’는 물음은 ‘네가 이 세상을 구원할 사역을 지니고 온 메시아이냐?’는 질문입니다.
이러한 질문은 구약 시대 이래로 메시아를 대망해 온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결국 그 질문으로써 예수님은 자신의 메시아 되심을 선포할 기회를 얻게 되신 것입니다(64절)(호크마).
·
여기서 첫 번째 질문의 의미를 묵상할 때 빌립보서
2장 6-8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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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장 30절 말씀도 생각났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유대인들은 다시 돌을 예수님을 치려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을 모독(“신성모독”)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33절).
·
여기서 두 번째 질문의 의미를 묵상할 때 빌립보서
3장 20절 말씀을 묵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성경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요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요(마태복음16:16)],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하는 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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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디모데전서 1:15,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십자가에 단번에 드리신 바(희생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때에는 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두 번째 나타나실 것입니다(히브리서9:28, 현대인의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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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은 메시아를 대망해온 유대인들이 원했던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메시아가 와서 자기들을 죄에서 구원해줄 것을 기대하지 않고 오히려 로마 정부로부터 정치적으로 구원(해방)시켜주시고, 사회적으로 공의를 행해주시고,
또한 경제적으로 풍부케하여 주시는 구원자 메시아를 기대했던 것입니다(김세윤). 한 마디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에게 베풀어주시고자 하셨던 구원은 그들이 간절히 기대했던 메시아를 통한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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