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짧은 말씀 묵상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마가복음15:2)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마가는 빌라도 총독이 예수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하고 질문했을 때 예수님께서 “네 말이 옳도다”하고 대답하셨다고 기록하였지만(막15:2; 참고: 마27:11) 누가는 그 빌라도와 예수님과의 대화 내용 이전에 “무리”[마태와 마가에 따르면(마 27:1,2; 막 15:1)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장로들,
즉 산헤드린 대표들이 예수님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끌고 간 것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누가가 언급한 “무리”도 역시 문맥상 공회에 참석한 사람 모두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무리” 앞에
'온'이라는 뜻의 헬라어 “하관”을 사용하여 “온 무리”(공동 번역)라고 표현했습니다(호크마)]가 다 일어나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고발한 내용을 기록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현대인의 성경)
“이 사람은 우리 민족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지 못하게 하고 자기가 그리스도 왕이라고 주장합니다”](눅23:2). 그래서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하고 질문하였고 예수님은 “네 말이 옳도다”하고 대답하셨다고 누가는 기록하였습니다(3절).
(a)
마태와 마가는 빌라도가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직접 심문하는 것으로 묘사했지만(마
27:11-12; 막15:2-3)
누가는 고소자들에 의해 나열될 죄목 중 마지막 항목인 자칭 왕이라는 말에 대해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확인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누가의 묘사가 더 합리적이고 사실적임을 알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끌고 왔으면 이유를 먼저 밝히는 것이 당연하며 마태와 마가의 경우처럼 예수님을 끌고 오자마자 빌라도가 먼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는 것은 상식적으로 볼 때 어색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누가는 예수님을 십자가 처형에 내어준 것이 유대인들,
특히 유대인 중에서도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꾸며진 일임을 더욱 선명히 부각시키고 있는 셈입니다(호크마).
(b)
누가가 기록한 예수님을 고소한 내용(이유)를 보면 호크마는
3가지로 요약하였습니다:
(i)
첫째로,
이 예수가 민심을 현혹하여 질서를 위협하였다[“이 사람은 우리 민족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눅23:2, 현대인의 성경].
·
그 무리는 불신앙 속에서 예수님에 대해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참고: 사53:4). 이 그릇된 생각의 뿌리는 교만입니다. 교만은 그들의 생각을 삐뚤어 놓았습니다.
·
또한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그릇된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그릇된 관점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자 순종하시는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사53:2). 그들의 그릇된 관점은 예수님의 순종하심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주님께 불순종한 것입니다.
·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그릇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그릇된 가치관이란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지 않은 것입니다(참고: 사53:3). 그들이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지 않은 이유는 슬픔과 질고를 싫어하였기 때문입니다.
-
이렇게 그릇된 생각(사53:4-5)과 그릇된 관점(2절)과 그릇된 가치관(3절)을 가지고 있으면 그릇된 행동(6절)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탄에게 그릇된 길로 인도함을 받고 있었던 그 무리는 예수님께서 “우리 민족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눅23:2, 현대인의 성경)하고 빌라도 총독에게 고속한 것입니다.
(ii)
둘째로,
이 예수가 로마 당국에 바치는 세금을 거부하도록 백성을 선동하였다[“이 사람은 …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지 못하게 하고”(눅23:2, 현대인의 성경)].
·
결코 예수님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지 못하게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세심하게 지켜보다가 첩자들을 보내 의로운 체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이 하는 말에서 구실을 찾아 그를 총독의 권한에 넘기려고 하였을 때 그 첩자들이 예수님에게 “우리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하고 묻자 예수님은 그들의 간교함을 아시고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오너라. 이 돈에 누구의 초상과 이름이 새겨져 있느냐?” 하고 되물으셨고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하고 말씀하셨을 뿐입니다(눅20:19-25,
현대인의 성경).
(iii)
마지막 셋째로,
이 예수가 자칭 왕이요 메시아라고 지칭하여 왕권에 도전했다[“이 사람은 … 자기가 그리스도 왕이라고 주장합니다”(눅23:2, 현대인의 성경)].
•
로마 총독 빌라도가 산헤드린 공회의 대표들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장로들의 고소를 접수하고 재판을 진행하면서 예수님을 심문하기 위해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막15:2)하고 질문을 한 이유는 그들의 세 가지 고소 내용 중에 세 번째 고소 내용을 문제 삼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예수님을 고소한 대로 예수님이 자칭 그리스도 왕이라고 주장하였다면 그것은 로마 황제의 왕권에 도전하는 것으로 로마 황제 가이사에 대한 엄청난 반역이요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입니다(참고: 호크마).
•
그 무리가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고하면서 “이 사람은 … 자기가 그리스도 왕이라고 주장합니다”(눅23:2, 현대인의 성경)하고 말한 것을 생각할 때 저는 요한복음
6장 15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강제로 자기를 잡아 그들의 왕을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올라가셨다”(현대인의 성경).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남자만 약
5,000명이나 먹이신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강제로 잡아 자신들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었는데 이제는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이 자칭 왕이라고 고소하면서 로마 황제 가이사의 왕권에 도전했다고 고소한 것입니다. 어떻게 자신들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던 예수님을 자칭 왕이라고 고소한 것일까요?
•
또한 저는 누가복음
23장 2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을 묵상할 때 요한복음
19장 21-22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도 생각났습니다: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
이라 쓰라고 하였으나 빌라도는 쓸 것을 다 썼다고 대답하였다.” “실로 복음서 초두에 동방 박사들은 예수를
'유대인의 왕'으로 예배했었고(마2:2) 그에게 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었다. 이제 그분의 생애의 마지막에 로마의 군인들은 그의 옷을 빼앗고,
옷을 벗기은채 고독하게 죽어가는 그의 십자가 아래 달아있으면서 처음에 붙여진 그 칭호를 마지막으로 달아 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묘하게도 예수께
'유대인의 왕'이라는 칭호를 붙여 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방인들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언약 백성,
선택받은 백성인 유대 민족들은 오히려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께
'유대인의 왕'이란 칭호를 부여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하라고 요구한다(요 19:21)”(호크마).
(c)
“이들이 고소한 내용은 사회.
정치적 성격을 갖고 있는데 이같은 음모는 이미 예수가 성전에서 가르칠 때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에 의해 모의된 바이다(20:20). 고소자들이 종교적 이유를 뺀 이유는 종교 문제는 유대 민족에게 국한된 것이기 때문에 빌라도의 관심 밖의 일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빌라도에게는 종교 문제가 호소력이 없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언급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사회.
정치적 이유는 총독으로서 빌라도에게는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법적인 제판이 가능하리라고 그들은 판단하여 사회.
정치적 이유만을 강조하여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호크마).
(d)
사탄에게 그릇된 길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위선자들은 지금 교회 안에서 성도들의 마음을 현혹하여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헌신하며 살지 못하도록 성도들을 선동하고 교회 질서를 위협하므로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의 주님되심를 거부하는 심각한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i)
우리는 주님의 다스리심를 거부해서는 아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주님의 다스리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의 권위에 불복종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권위적인 말씀인 예수님의 이중계명에 순종하여 우리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우리 주 하나님을 사랑하며 우리 이웃을 우리 몸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마22:37,
39,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신앙 생활을 진실되고 신실하게 해야 합니다.
(2)
사도 요한은 좀 더 구체적으로 빌라도 총독과 예수님과의 대화 내용을 기록하였습니다(요18:33-38):
빌라도: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빌라도: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예수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빌라도: “진리가 무엇이냐.”
(a)
로마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막15:2; 요18:33)하고 질문한 것은 유대인들의
3가지 고소 내용[(1)
예수님이 유대인을 미혹하는 행동을 한다,
(2) 가이사 즉 로마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지시킨다,
(3) 자기를 가리켜 유대인의 왕이라고 선언한다(눅23:2)] 중 세 번째 고소 내용인 정치적인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진 것으로서 그 질문의 요지는 예수님이 무력으로 유대를 로마로 부터 해방시킬 왕이냐는 것이었습니다(호크마).
(b)
빌라도 총독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현대인의 생각)
“그것이 네 생각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너에게 한 말이냐?”](요18:34)하고 물으셨는데 아마도 그리 말씀하신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빌라도가 스스로 판단하여 행동하길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참고: 호크마). 그런 의미로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말씀하신 이유는 빌라도는 단지 유대인 고소자들의 말을 듣고 정치적 의미에서 예수님에게 물은 것 같기 때문입니다(참고: 35절, 호크마). 다시 말하면,
빌라도는 유대인 고소자들이 예수님이 자기를 가리켜 유대인의 왕이라고 선언한다(눅23:2)고 고소함으로 예수님은 정치적 선동자라고 이해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정치적 의미에서(종교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예수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하고 물은 것입니다.
(c)
빌라도의 답변인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현대인의 성경)
“너는 내가 유대인이라고 생각하느냐?
네 동족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나에게 넘겼다.
도대체 네가 무슨 짓을 했느냐?”](요18:35)하는 질문을 보면 빌라도는 자신의 개인적 호기심에 의한 심문이 아니라 오직 그가 알고 싶어했던 것은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고발하도록 원인을 제공한 행위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호크마).
(i)
“빌라도는 총독으로서 유대인 중 누군가가 자칭 이스라엘의 왕이라하며 세력을 규합하여 반로마적 투쟁을 주도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바 없었고 또한 체포되어 끌려온 예수의 모습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를 가리켜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한다며 그를 고발했다.
그리하여 빌라도는 보다 구체적인 질문으로 예수에 대해 알고자 했다”(호크마).
(ii)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란 표현 속에는 한가지 분명히 확인되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재판이 이방인 총독에 의해 제기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대제사장이 주도적 역할을 했음도 강조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궁극적 책임의 소재와 결부됩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에 의해 떠밀려 재판을 진행하고 있을 뿐 실질적으로 재판을 이끌어간 세력은 대제사장들로 대변되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호크마).
(d)
빌라도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현대인의 성경)
“도대체 네가 무슨 짓을 했느냐?”](35절)하고 질문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현대인의 성경)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했다면 내 종들이 싸워 내가 유대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36절)라고 답변하셨는데 이 예수님의 답변은 빌라도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i)
결국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예비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그가 한 일을 설명하는 것보다 그의 나라의 정체를 설명하셨는데(호크마) 그 설명의 핵심은 하나님의 날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했다면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종들이 싸워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입니다.
·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나라가 세상에 속하니 않는 것임을 설명하는데 있어 단 하나의 단서를 제시하십니다.
그것은 싸움에 의해 획득되고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나라의 권력이란 예외 없이 싸움에 의해 얻어지고 싸움에 의해 지켜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나 그의 추종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나라는 전혀 다른 질서와 원리에 의해 세워진 것임을 증명해 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통치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는 나라이며(계11:15) 힘이 아니라 사랑과 평화의 원리로 세워지는 나라입니다(호크마).
(e)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하고 질문하자 예수님께서는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요18:37)하고 대답하셨는데 이 답변의 말씀을 한
3가지로 나눠서 생각해볼 수가 있습니다:
(i)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내가 왕이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대답은 “네 말이 옳도다”(막15:2)하는 말씀보다 더 분명하게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ii)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요18:37)하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은 참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나의 왕이신 예수님의 존재도 이 세상에 기원을 두고 있지 않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요한복음
16장 28절에서 자신의 기원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신성(Divinity
of Jesus)을 증거합니다. 자신의 기원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셨다/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셨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예수님의 참된 인성(Humanity
of Jesus)을 증거합니다(참고: 호크
(iii)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완전한 참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시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18:37). 예수님은 그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이며(1:1-3),
진리이십니다(14:6). 그 자신이 진리인 예수는 세상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들을 생명에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14:6).
·
진리에 속한 자만이 진리이신 예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18장 37절 말씀은 다음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1) 하나님께서 보내지 않으면 아무도 예수님께 올 수 없다는 사실(3:27;
6:44, 45, 65)과 본절은 잘 조화됩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예정론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2) 본 구절은 영적 진리에 무지한 빌라도가 예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음을 암시합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왕으로 진리를 말하고 있으므로 만일 빌라도가 진리에 속한 사람이라면 예수의 말씀을 이해했겠지만 그는 결코 “진리에 속한 자”가 아니었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진리가 무엇이냐”하고 질문했던 것입니다(18:38).
(f)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음으로 진리에 속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진리에 속한 우리들은 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또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인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8:32)도 믿으며 그 자유를 부분적으로 이 세상에서 누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i)
지금 내주하시는 진리의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고 계시며(16:13)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계십니다(17:17). 또한 성령님께서 우리로하여금 오직 진리만을 위해서 일하게 하고 계십니다(고후13:8, 현대인의 성경). 계속해서 성령님께서 우리로하여금 진리를 행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심히 기쁘게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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