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고난의 잔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마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마가복음15:22-23)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로마 총독 군병들이 예수님을 끌고 골고다(해골의 곳)에 이르로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하고 마가는 기록하였는데(막15:22-23),
마태는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마27:34)하고 기록하였습니다.
(a)
호크마에 의하면 마태복음에는 “쓸깨 탄 포도주”하고 기록하였고 마가복음에는 “몰약을 탄 포도주”하고 기록하였는데 이 같은 차이는 아람어의 '몰약'(morah)이라는 말이 히브리어의
'담'(marrah)과 유사할 뿐 아니라 그 쓴맛이나 독성에 있어서도 유사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호크마).
(i)
물론 이 사건에서 마태복음이 중언하는 “쓸개 탄 포도주”란 말이 시편
69편 21절 말씀에 더 가깝습니다: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여기서 “쓸개”란 진짜
'쓸개'나 '담즙'을 뜻하기 보다 쓴 맛이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말로 보는 것이 보편적입니다(Carson,
Lenski). 그리고 “포도주”는 매우 센 독주로서 취기가 속히 들고 마취 성분이 강한 술을 가리킬 것입니다(호크마).
·
유대 전승에 따르면 이 쓰디쓴 포도주를 사형당하는 죄수에게 제공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였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1) 십자가 형을 당하는 죄수들에게 순간적으로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하거나,
그 고통을 참아낼 힘을 주려했기 때문인 동시에
(2) 술로인해 거의 마취되다시피 한 죄수들은 사형 집행관들이 손쉽게 다룰 수 있었기 때문에 제공되었다는 것입니다(호크마).
(b)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쓰디쓴 포도주를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셨는데 여기서 마시고자 “아니하시더라”는 말은 계속적인 거부 의사를 내포한 말로서,
예수님은 그 당시 몇 번에 걸쳐 마실 것을 강요당했으나 끝까지 마시지 않을 것을 고사하셨음을 보여줍니다(호크마).
(i)
실로 예수님께서는 마취제의 도움으로 고통을 덜어보려 하기보다는 모든 감각을지닌채 맑은 정신으로 끝까지 다가오는 뼈저린 고통에 맞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것이 순전히 당신의 자발적인 의지에 따른 것으로서 그 십자가가 제공하는 아주 세미한 고뇌조차도 친히 감수하시며 인성으로서 당하셔야 할 모든 고통을 끝까지 체험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호크마). 진정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당신의 “고난의 잔”을(요18:11, 현대인의 성경)
한 방울도 남김없이 마시고자 하셨습니다(호크마).
·
한편으로는 이같은 행동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이미 말씀하신 바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마26:29)는 당신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성취하신 것입니다(호크마).
(2)
구레네 사람 시몬은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과 함께 골고다까지 갔지만(마27:31-32)
예수님께서는 자원하는 마음으로(자발적으로) 십자가가 제공하는 아주 세미한 고뇌조차도 친히 감수하시며 인성으로서 당하셔야 할 모든 고통을 끝까지 체험하고자 하셨습니다.
(a)
예수님께서는 마취 성분이 강한 쓰디쓴 포도주를 마시는 것을 계속해서 거부하시고 자기에게 주어진 고난의 잔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마시고자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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