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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핸슨: 비기독교적으로 용서에 접근하는 방법이 있나요?
팀 켈러: 실용주의죠.
콜린 핸슨: 네, 근본적으로는 스스로 분노를 달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팀 켈러: 네. 용서에 대한 세속적인 접근 방식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제가 ‘치료’라고 부르는 것인데요. 제 책에 나와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이는 치료적 접근 방법인데요. 제가 ‘보상적인 거래’라고 부르는 방법이죠. 치료적인 접근 방법은 여러분이 가장 많이 들어본 것으로 대부분의 세속적인 책에서 촉구하는 방식입니다. 어떻게 용서할지, 어떻게 분노를 내려놓을지와 같은 것을 가르치고 있죠. 그것은 모두 피해자 자신에 관한 겁니다. 화를 내는 게 건강에 좋지 않으니 놓아줘야 하고 어떻게든 그것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거죠. 거기엔 가해자에 대한 진정한 걱정도 없고 사회에 대한 진정한 걱정도 없습니다. 어떻게든 중요한 건 내가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게 실용주의예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유효한지 무효한지의 문제도 아니죠. 그것은 용서가 마치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식입니다. ‘보상적인 용서’는 일종의 거래적 용서입니다. "당신이 변하면 용서해 주겠다"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오직 변해야만 용서하겠다는 겁니다. 충분히 변하고 충분히 굴복해야만 한다는 거죠. 어떤 면에서는 당신이 나를 괴롭힌 것만큼 고통받았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보상적 용서는 당신이 와서 머리를 조아리고 이것저것을 하면 용서해 주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매우 실용주의적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감정적, 행동적 변화를 어느 정도 요구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이 용서를 말할 때 "당신도 고통받는 것을 보면 용서해 주겠다"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있겠죠. 그리고 당신이 굴복하고, 자신을 미워하고 때리고, 이 모든 것을 하고 배상했다면, 어떤 의미에서 상대방에게 그 빚을 갚는 것이라는 건데요. 이러한 보상적 용서는 역설적입니다. 마사 누스바움은 세속 철학자이자 시카고 대학의 아주 유명한 인사인데요. 용서에 반대하는 책을 몇 권 썼습니다. 사회에서 보는 용서는 진짜 용서가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네가 이렇게 저렇게 하며 충분히 굽실거리면 용서해 준다’는 말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리고 이건 기본적으로 상대방에게 보복하는 방식인데 복수심에 불타는 마음을 용서라는 이름으로 가리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보복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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