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짧은 말씀 묵상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마가복음15:26-27)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예수님께서 못박히신 십자가 위에 있는 죄패에(막15:26) 빌라도가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마27:37), “유대인의 왕”(막15:26; 눅23:38)]라는 죄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였습니다(요19:19).
(a)
처형되는 죄수의 죄목을 밝히는 내용의 패를 목에 걸거나 가슴에 매달고 형장까지 가서 십자가를 세우고 그 죄패를 머리 위에 매다는 것은 당시 로마 처형법상 한 관례였습니다(호크마).
(b)
예수님의 죄패는 빌라도가 쓴 것으로(요19:19) 죄패의 내용이 복음서에 조금씩 다른 것은 죄패가 세 가지 언어인 각 지방에서 오는 순례자를 위해 히브리어(아람어)와 헬라어(당시의 보편적인 언어)와 라틴어(로마의 공용어)로 각각 쓰여졌기 때문인 듯합니다(요19:20). 그중 요한복음의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표현이 가장 완전한 형태인 것으로 추정됩니다(호크마).
(c)
빌라도가 이 말을 쓰게 한 것은 이 죄명을 통하여 자신의 반유대적 입장을 분명히 밝히면서 유대 민족을 조롱하고 또한 유대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모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호크마).
(d)
복음서 초두에 동방 박사들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예배했었고(마2:2) 그분에게 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었는데 이제 그분의 생애의 마지막에 로마의 군인들은 그의 옷을 빼앗고,
옷을 벗기은채 고독하게 죽어가는 그의 십자가 아래 달아있으면서 처음에 붙여진 그 칭호를 마지막으로 달아 준 것입니다.
이와같이 묘하게도 예수님께 “유대인의 왕”이라는 칭호를 붙여 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언약 백성,
선택받은 백성인 유대 민족들은 오히려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께 “유대인의 왕”이란 칭호를 부여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하라고 요구했습니다(요 19:21)(호크마).
(2)
강도 둘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님과 함께 끌려가서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눅23:32)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두 죄수도 못박았는데 하나는 예수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매달았습니다(32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예수님은 가운데 있었습니다(요19:18).
(a)
다른 사형수인 두 강도들과 함께 사형장으로 끌려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예수님이 일반 사형수와 같이 강도나 범죄자와 동일한 취급을 당하여 처형되신 것임을 말하는데 이것은 누가복음
22장 37절[“내가 너희에게 말하지만
'그가 범죄자처럼 되었다.'라고 기록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 내게 관한 일은 이루어져 가고 있다”(현대인의 성경)]과 이사야
53장 12절[“그러므로 내가 강하고 위대한 자들의 영예를 그에게 주겠다.
그는 기꺼이 자기 생명을 바쳐 범죄자처럼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고 그들이 용서받도록 기도하였다”(현대인의 성경)]에서 언급된 예언의 성취를 확인시켜 줍니다(호크마).
(i)
예수님은 죄가 없으실 뿐만 아니라[“…
그러나 죄가 없으셨습니다”(히4:15, 현대인의 성경)]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데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리스도에게
…”(고후5:21, 현대인의 성경)]
범죄자처럼 되셨습니다(사53:12; 눅22:37). 그 목적은 “… 하나님께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자기 아들을 죄 많은 인간의 모양으로 보내시고 우리의 죄값을 그에게 담당시키신 것입니다”(롬8:3, 현대인의 성경).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마가복음15:29-32)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이 말씀을 보면 세 그룹의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모욕하고 희롱하며 욕했습니다:
(a)
첫째 그룹의 사람들은 “지나가는 자들”입니다(막15:39).
(i)
지나가는 자들은 비언어적으로는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모욕했고,
언어적으로는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29-30절)하고 예수님을 모욕했습니다.
·
마태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마27:39-40).
·
먼저 지나가는 자들의 비언어적인 모욕은 지나가는 자들이 자기 머리를 흔들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형은 항상 다른 사람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 공개적으로 시행되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형을 목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머리를 흔들었다는 것은 시편
22편 7절에 언급된 “사람마다 나를 보고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빈정댑니다”(공동 번역)의 반영입니다. 여기서 ‘머리를 흔드는 것’은 상대방을 심히 멸시하고 조롱하는 유대인들의 상징적인 행동이었습니다(시109:25; 애2:15)(호크마).
·
지나가는 자들의 언어적인 모욕은 ‘성전을 헐고
3일만에 짓겠다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였습니다(막15:29-30;
마27:40). 이 모욕적인 발언에는
3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들은
(1) 예수님이 성전을 모독했다고 생각하였고(그래서 예수님은 마땅히 십자가에 처형되어야 한다고 믿었음),
(2)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칭함으로 신성 모독 죄로 마땅히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한다고 믿었으며,
(3) 예수님에게 “’네 자신이나 구원하고 십자가에 내려오너라’하고 조롱”한 것(마27:40, 현대인의 성경)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구원할 메시아(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에 죽으시는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뜻을 어기라는 조롱이었습니다.
(b)
둘째 그룹의 사람들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입니다(막15:31).
(i)
마가는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예수님을 희롱하였다고 기록하였는데,
마태는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예수님을 희롱하였다(마27:41)고 기록하였습니다. 즉,
산헤드린의 중추적 인물들이 예수님을 희롱한 것인데 아마도 그들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보면서 자기들이 완전한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듯합니다(호크마).
·
여기서 “그와 같이”란 “지나가는 자들”이 예수님을 심히 멸시하고 조롱한 것과 같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함께 예수님을 심히 멸시하고 조롱했다는 의미입니다.
-
그 말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지나가는 자들처럼 예수님이 성전 모독죄와 신성 모독죄를 범하였기에 마땅히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한다고 확신하였다는 것입니다.
·
그들의 희롱(조롱) 내용은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현대인의 성경)
“남은 구원하면서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군”](막15:31)하고 마가는 기록한 반면에,
마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마27:42-43).
-
이 희롱(조롱) 내용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1)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2) 이스라엘의 왕으로도 믿지 않았고[“이스라엘 왕이라는 자야”(42절, 현대인의 성경)],
또한 (3) 하나님의 아들이심도 믿지 않았습니다[“하나님을 믿고 또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으니 …”(43절,
현대인의 성경)].
n
이러한 불신앙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예수님을) 구원하실지라”(마27:43)하고 조롱하였는데 이 조롱 내용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이사야 선지가가 메시아(그리스도)에 관하여 예언한 이사야
53장 10절 상반절 말씀을 불신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현대인의 성경)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그가 상처를 입고 고통을 당한 것은 내 뜻이었다 …’”].
·
그들도 “지나가는 자들”과 같이 예수님에게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막15:32, 현대인의 성경)하고 조롱하였는데 추가로 이들은 “그러면 우리도 믿겠다”(32절, 현대인의 성경)고 말하였는데 이미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리스도(메시아)이심을 믿지 않고 있는 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은 거짓과 악의에 찬 약속입니다(호크마)
(c)
셋째 그룹의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입니다(막15:32). 즉,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두 강도들입니다(27절).
(i)
성경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은 두 강도들까지도 “그와 같이”
예수님을 욕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는데(32절; 마27:44, 현대인의 성경),
누가복음은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현대인의 성경)
“함께 십자가에 달린 죄수 중 한 사람은
'당신이 그리스도가 아니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하시오.'
하며 예수님을 모욕하였으나”](눅23:39). 그랬을 때 “다른 죄수가 그를 꾸짖으며 ‘너는 똑같이 사형 선고를 받고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 우리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런 벌을 받아도 싸지만 이분은 잘못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41절, 현대인의 성경)하고 말했다고 누가는 기록하였습니다.
·
여기서 예수님을 비방한 강도(죄수)는 예수님에게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39절)하고 비방한 것을 보면 그는 유대인으로서 종교적인 의미로 예수님을 모역한 것입니다(호크마). 그리고 그는 예수님에게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39절)하고 말한 것을 보면 그는 예수님과 더불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매달린) 다른 강도(죄수)까지도 십자가에 처형당하는데서 구원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구원을 받기 원했지만(육신의 생명이 건짐을 받기를 원했지만)
다른 강도(죄수)처럼 그가 구원을 받지 못한 이유는[다른 강도는 예수님에게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하고 말하자 예수님은 그에게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음(눅23:42-43,
현대인의 성경)]
그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
저는 오늘 본문 마가복음
15장 29-32절 말씀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과 연관해서 묵상할 때 전에 묵상한 말씀의 글을 다시금 읽고 나누고 싶습니다:
(a)
예수님께서는 이 마귀의 시험을 “기록되었으되”(현대인의 성경은 “성경에는”)(4,
7, 10절)하고 말씀하시면서 승리하셨습니다. 이렇게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에도 마귀의 종들인
(1) “지나가던 사람들”과
(2)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과
(3) 예수님과 함께 못박힌 두 “강도들”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22:39,
41, 44). 그 시험이란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보러 ‘너 자신을 구원하라’는 것이었습니다[참고: (40절, 현대인의 성경)
“성전을 헐고
3일 만에 짓겠다는 자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네 자신이나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너라”;
(42절, 현대인의 성경)
“남은 구원하면서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군.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자야,
당장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그러면 우리도 믿겠다”]. 즉,
그들은 예수님에게 십자가에 못박혀 죽지 말고 살라고 시험한 것입니다.
(i)
이 시험에 빠진 사람이 바로 사도 베드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서 가르치”셨을 때(마16:21)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22절)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마태복음
16장 2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
베드로는 인간의 동정심 속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원치 않으므로 “이 일” 즉,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베드로의 생각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생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사탄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기보다 사람의 생각을 하게 만들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이루고자 하기보다 사람의 뜻을 이루게 만드는 것입니다.
-
우리는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림에 있어서 어떠한 어려움들이 있을지라도 사람의 생각을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특히 인간의 동정심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가복음15:33-34)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막15:33)하는 개역개정 말씀을 현대인의 성경은 “낮
12시가 되자 온 땅에 어두움이 뒤덮이더니 무려
3시간 동안 계속되었다”하고 번역하였습니다. 누가는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눅23:44)하고 기록하였습니다.
(a)
이 말씀을 종합해서 묵상할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계셨을 때에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무려
3시간 동안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뒤덮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계셨던 시간은 오전
9시경부터(막15:25, 현대인의 성경)
오후3시경까지(34절, 현대인의 성경)이니까 무려 약
6시간 동안이나 찢어지는 듯한 육체적 고통과 더불어 어두움보다 더 짙은 영적,
정신적 고뇌(34절)를 맛보시며 시시각각 다가오는 당신의 죽음을 온몸으로 확인하고 계셨습니다(호크마).
(i)
무려
3시간 동안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뒤덮었다는 것은 적어도
3가지 상징적인 의미들을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호크마): (1)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의 준엄함(마26:24; 사5:30), (2)
인류의 무거운 죄짐을 대신 지신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지를 보임,
(3) 전우주적 통치자의 고뇌에 찬 죽음에 대한 자연계의 순응(롬 8:22).
(2)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막15:34; 참고: 마27:46)하는 말씀은 사복음서(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 중에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계셨을 때 외치신 일곱 마디 말씀(가상 칠언)
중 오직 이 한 말씀(막15:34)만 기록해 놓았습니다(참고: 호크마).
(a)
이 말씀”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막15:34)는 가상 칠언(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하신 일곱 말씀)
중 네번째 말씀에 해당합니다:
(1) 첫 번째 말씀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2) 두 번째 말씀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3) 세 번째 말씀은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요19:26-27),
(4) 네 번째 말씀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막15:34; 마27:46),
(5) 다섯 번째 말씀은 “내가 목마르다”(요19:28),
(6) 여섯 번째 말씀은 “다 이루었다”(요19:30), 그리고 (7) 일곱 번째 말씀은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b)
가상 칠언 중 이 네 번째 말씀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막15:34)는 예수님께서 다윗이 예언적으로 노래한 시편
22편 1절의 말씀이 당신의 찢어지는 듯한 영적 절망감을 예언적으로 표현해 놓은 것으로 인정하시고 이 구절을 인용하신 것입니다(호크마):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i)
실로 예수님의 이러한 부르짖음은 가장 필요한 시간에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데 대한 절대 고독감과 심각한 위기적 심경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그가 당할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처절하고 무거운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절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1)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지셨다는 점(고후:5), (2)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셨다는 점(빌 2:6-8),
(3) 죄를 향한 하나님의 증오와 보응이 얼마나 엄격하고도 무서운 것인가라는 점,
(4) 성부로서의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지만(눅23:46) 죄악을 징벌하시는 심판(호크마).
(3)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셨는데 여기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인지 한
3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김창세):
(a)
첫째로,
예수님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공의로우시며 거룩하신 분이심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i)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주기도문)을 보면 “…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말씀하고 있음(마6:9; 눅11:2).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ii)
(합1:13상)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현대인의 성경)
“주의 눈은 너무 정결하셔서 악을 보지 못하시며 비행을 용납하실 수 없습니다”].
(iii)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고 공의로우시기에 그분의 정결한 눈으로는 죄악을 차마 보지 못하십니다.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용납하실 수 없으시며,
반드시 죄에 대한 형벌을 가차 없이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
하나님은 죄에 대한 형벌을 가차 없이 내리시되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마3:17)까지 십자가상에서 버리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b)
둘째로,
예수님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죄의 값이 얼마나 무겁고 또한 무서운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즉,
예수님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죄의 값은 사망임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i)
창세기
2장 16-1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에덴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마음대로 먹을 수 있지만 단 한 가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만일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17절, 현대인의 성경).
(ii)
그런데 아담은 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음으로(3:6)
죄의 형벌인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iii)
예수님께서 산에서 율법의 말씀을 주신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의 말씀 중 마태복음
5장 26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개역한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
여기서 “한 푼”이란 예수님 당시에 로마 사람들의 화폐 중에 단위가 제일 낮은 것입니다. 개역한글에는 “호리”라고 말씀했는데 여기서 “호리”란 사분의 일 앗사리온(1
앗사리온은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데나리온의
1/16정도에 불과)에 해당하는 아주 작은 단위의 돈입니다(인터넷)[지금 미국으로 말하자면
1 센트(cent)임].
·
여기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는 빚진 자가 다 갚고도 단 한 푼을 갚지 못하면 감옥에서 나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빚진 자가 마지막 빚 한 푼까지도 모두 지불한다는 것은 완전히 가망이 없는 것이기에 빚을 다 갚기까지 형벌을 면키 심히 어렵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즉,
마태복음 5장 26절의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한 최종적인 유죄 선고를 나타내 줍니다(인터넷).
·
이 세상에 많은 감옥에서는 빚을 갚고 또 갚고 다 갚다가 돈
1센트(cent)를 못 갚아서 감옥에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비록 이 세상의 법은 이렇지만 하나님의 법에서는 단 한 푼이라도 못 갚으면 영원한 형벌을 받아 영원한 감옥(지옥)에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정도로 하나님의 공의로우셔서 죄에 대하여 무섭게 형벌을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비록
1센트(cent)같은 죄라 할지라도,
그래서 우리 사람의 눈에는 그 죄가 보이지 않아 그 죄를 죄로 여기지도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서운 형벌을 내리시는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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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머리털이 다 해결되었다 할지라도 머리털 끝 한 부분의 죄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용납될 수가 없고 숨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만큼 우리의 죄를 다 알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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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로 인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한 푼의 죄요
1 cent의 죄요,
머리털 끝 한 부분의 죄까지도 다 담당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 버리심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c)
셋째로,
예수님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우리에게 예언의 성취를 보여줍니다.
(i)
여기서 예언이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약
1,000년 전에 다윗이 예언한 시편
22편 1절 말씀을 가리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
이 시편
22편의 표제(머리말)를 보면 “다윗의 시,
영장으로 아얠렛 샤할에 맞춘 노래”라고 쓰여 있는데 현대인의 성경은 “다윗의 시. 성가대 지휘자를 따라 ‘아침의 사슴’이란 곡조에 맞춰 보른 노래”라고 번역을 했습니다(1절, 현대인의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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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시편
22편은 노래라기보다는 예언으로서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시편
22편 1절 말씀[“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란 예언의 말씀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15:34)라고 크게 소리 지르시므로 성취가 되었음]
외에도 또 한 예로
18절을 보아도 알 수가 있습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이 예언의 말씀은 요한복음
19장 23-24절에서 성취가 되었습니다: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d)
이렇게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을 받으신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
즉 한 푼(1
센트)같은 죄나 보이지 않는 죄나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죄까지도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크게 소리 지르시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을 당하시므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드리신 것입니다.
(i)
(사53: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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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을 당하시는 영혼의 수고를 하신 것을 보시고 만족하게 여기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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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시고,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미리 예언하신 것을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 성취하셨기에 예수님께서는 만족히 여기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도 만족히 여기시고 기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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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만족케 하시고자 우리의 모든 죄(큰 죄뿐만 아니라 지극히 한 푼 같은 죄까지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까지 다 당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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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상에서 크게 소리를 지르신 예수 그리스도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를 믿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을 받으시므로(forsaken
by God)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forgiven
by God)는 이 놀라운 죄 사함의 은혜에 감사 찬양 경배를 평생 그리고 영원히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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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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