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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11)

이 성탄 계절에 사도 바울은 두기로를 특별히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보냈다(골4:8)하는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gave)(요3:16)는 말씀과 더불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내주"셨다(gave up)(롬8:32)는 말씀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셨다(gave Himself up)(엡5:2)는 말씀을 연관해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마27:46)라는 말씀도 생각났습니다.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버리시기까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도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우리 목숨을 잃을 수 있길 기원합니다(막8:35).   https://youtu.be/amBwOJJrKxs?si=B6DoBllFE_Il7U-p

상대방의 말을 들은 후에 결정해서 행동으로 옮겨도 늦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들은 후에 결정해서 행동으로 옮겨도 늦지 않습니다.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동쪽 반 지파는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 , 아직 가나안 땅에 있을 때에 강가에 굉장히 큰 단 하나를 쌓았습니다 .   그 때 요단강 서쪽에 남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이 행한 일을 듣고 실로에 군대를 모아서 그들의 형제 지파들과 싸울 준비를 했습니다 .   그러나 그들이 잘 한 것은 먼저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이끄는 대표단을 강 건너 길르앗 땅의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동쪽 반 지파에게 보내어 그 큰 단을 쌓은 그들의 목적을 들은 것입니다 .   그들의 목적은 결코 번제나 소제나 다른 제사를 드릴 목적으로 성막 앞에 있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단 외에 다른 단을 쌓아 여호와를 저버리거나 여호와를 거역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훗날 요단강 서쪽에 남은 이스라엘 백성의 후손들이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동쪽 반 지파의 후손들에게 "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하는 말을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 였습니다 .   이 목적을 알게 된 제사장 비느하스는 그들에게 " 이제야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 줄을 알겠소 .   당신들은 여호와를 거역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을 여호와의 형벌에서 구해낸 셈이 되었소 !" 라고 말했습니다 ( 여호수아 22:10-31, 현대인의 성경 ).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대화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   무턱대고 오해를 해서 싸우려 하지 않고 먼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것입니다 .   상대방이 왜 그리 행했는지 그 목적이나 이유를 들은 후에 결정해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지혜롭게 행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

믿음의 열매는 순종이지만 불신의 열매는 의문이요 의심이요 불순종입니다.

믿음의 열매는 순종이지만 불신의 열매는 의문이요 의심이요 불순종입니다 .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 모세의 첫 번째 반응은 " 내가 누구이기에 ..." 였고 두 번째 반응은 " 만일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여러분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여러분에게 보내셨습니다 하고 말했을 때 그들이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 하고 물으면 내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 였습니다 ( 출애굽기 3:11, 13, 현대인의 성경 ).   첫 번째 반응은 자기 의식이라고 말한다면 , 두 번째 반응은 다른 사람들 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그 다른 사람들 의식은 " 만일 " 로 시작합니다 : ' 만일 그 사람들이 ....'   이러한 가상적인 질문은 "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12 절 ) 는 말씀을 전적으로 믿지 못해서 던지는 질문이라 생각합니다 .   믿음의 열매는 순종이지만 불신의 열매는 의문이요 의심이요 불순종입니다 .

"참으로 어리석도다"

" 참으로 어리석도다 "   사위 야곱이 자신을 속이고 아무 말도 없이 몰래 도망간 행위를 " 참으로 어리석도다 " 라고 야곱에게 말한 장인 라반은 어째서 자기를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일한 야곱을 속여 그의 품삯을 10 번이나 변경한 자신의 행위는 " 참으로 어리석도다 " 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 ( 창세기 31:6-7, 20, 26-28, 현대인의 성경 )   자신의 참으로 어리석은 행위는 모르면서 상대방의 행위는 " 참으로 어리석도다 " 라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