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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에 대한 나의 고민

  https://youtu.be/7gw7qr-zJsA?si=UYNXPlNlgtI1j3Cg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2a) (데살로니가전서 1장 4-10절)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2a)

 

 

[데살로니전서 1 4-10절 말씀 묵상]

 

언젠가 같은 노회에 계신 목사님 한 분이 자기 교회에서 직분자를 훈련시켰는데 시험 후 노회 고시부에서 그 분들을 구두로 시험 치르게 해줄 수 있냐고 물으셔서 다른 고시부 목사님들과 그 교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제 기억으로는 서리 집사님들이 안수 집사가 되기 위하여 시험 본들 중 한 분이 우리 목사들에게 이러한 내용의 말을 하신 것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그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배웠는데 예수님을 믿고 나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불신자들보다 더 못하게 나쁜 짓을 하면서 죄를 범하는 사람도 천국을 가는 것입니까?  저는 그 때 옆에서 그 질문을 듣고 그 집사님이 무슨 질문을 하는지 알고 답변을 할까 말까 하고 있는데 제 옆에 있는 목사님이 답변을 하셔서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저는 그 분의 질문에서 생각한 것은 물론 우리가 인간의 노력인 선행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당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선행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은 후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다는 교리를 잘못 받아들여서 선행을 하기보다 불신자보다 더 못하게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세상 사람들에게 본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우리가 교회만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이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닌 것을 나름대로 알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함께 교회를 다니는 형제자매들도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어 거듭난 새 사람인지 아닌지를 의문하기까지 합니다.  심지어 그들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 또는 “신자”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교회를 다니는 “교인”이라고만 말하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이미 데살로니가전서 1 4-5절 말씀 중심으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유를 묵상했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 본문 5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바울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그 복음이 그들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지역에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복음의 능력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나타났고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들의 마음 문이 열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의 큰 확신을 가졌기에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과연 이것이 다 인가요?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들에게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되었다는 것이 다 일까요?

           

저는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1 4-10절까지 말씀 중심으로 바울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알았는지 처음에 복음을 전했을 때 그 복음이 그들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님과 큰 확신으로 되었다는 것 외에 그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은 후 어떠한  신앙생활을 하였는지를 한 3가지로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주님을 본 받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 데살로니가전서 1 6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은 많은 고난 중에서도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한 번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구원을 받은 것이라는 생각 속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후 예수님을 안 믿는 세상 사람들 보다 더 못하게(나쁘게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인가요?  나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았다면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책임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요?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면 더욱더 그 은헤의 힘으로 우리의 책임을 잘 감당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음.  그는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고백하면서 그 은혜의 힘으로  주님의 일을 힘써 수고했습니다(고전15:10). 

 

여러분여러분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힘써 수고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중요한 책임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복음을 전하는 것인가요?  선을 행하는 것인가요?  예수님의 계명대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가요?   주님의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것인가요?  이 모두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해야 할 중요한 책임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이 보다 더 중요한 책임은 우리 각자가 예수님을 본받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예를 들어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본 받지 못하면서 예수님의 복음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우리 가족 식구에게 전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우리가 빌립보서를 묵상하면서 배웠듯이 우리가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동시에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1;27).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1 6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계속해서 써내려가면서 그들이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 말씀을 읽었을 때 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는 주님과 우리를 본받은 자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와 주님을 본 받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는지 좀 의아해 했습니다.  왜 바울은 그리 말했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그 이유는 김세윤 박사님의 “데살로니가전서 강해”란 책을 보고 좀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실루아노와 디모데)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그 복음의 합당한 삶을 살므로 예수님을 본 받는 삶을 그들에게 보여줬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비슷한 말을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도 편지를 통해 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1:1).  원어대로 번역하면 “나를 본받는 자들이 되시오.  내가 주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입니다(김세윤).  김세윤 박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복음 선포자는 복음을 말로 선포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복음을 삶을 통해 그려 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 선포자의 임무요 소명입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은 지금 이 복음 선포자의 임무요 소명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복음 선포자였던 바울과 그의 동역자를 본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그려내준 복음의 삶을 통하여 복음의 핵심인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어떻게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 및 주님을 본 받는 자들이 되었을까요?  저는 그 대답을 오늘 본문 6절 상반절에서 찾아 보았습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 및 주님을 본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그들은 많은 환난(고난중에서도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기에 주님을 본 받는 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겪은 많은 환난(고난)은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은 것을 가리킵니다(2:14).  유대인들은 바울이 선포한 것은 유대교가 아니라고 하면서 데살로니가 시민들을 충돌질해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저자의 깡패들까지 동원해서 기독교인들에게 테러를 가하고 로마 관원에게 고소하여 기독교인들을 핍박하였습니다(김세윤).  그런 와중에서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많은 환난중에서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그 말씀에 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KJV 성경 주석).  이것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성령님의 역사가 없으면 많은 환난과 핍박 중에서 슬퍼하지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가 없이는 그 와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는 커녕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우리가 많은 고난과 고통 중에 있을 때 더욱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하시고 그 말씀을 겸손히 받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통하여 깨달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케 하십니다.  그 결과 성령님은 우리를 고난 중에 말씀으로 빚으시사 거룩케 하시고 주님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그 결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1 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여러분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를 본받아 주님을 본 받는 자들이 되어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마게도냐”란 지역의 수도(중심도시)가 바로 데살로니가였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주님의 종들을 본받고 또한  주님을 본받은 그들의 모범이 마게도냐의 수도인 데살로니가 도시에서만이 아니라 마게도냐 전 지역으로 퍼졌다는 것입니다.  상상이 되십니까?  예를 들어우리 승리장로교회 식구들의 주님을 닮아가는 모범된 삶이 남가주에서 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 전체에 있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도 모범이 된다는 것이 상상이 되십니까?  더 나아가서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모범이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도 모범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가야”라는 지역의 수도는 고린도였는데 사도 바울이 바로 고린도에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를 썼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어쩌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모범이 고린도에 있었던 바울을 통하여 아가야 전 지역에 있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전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사실에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만일 우리 승리장로교회 모든 식구들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처럼 하나님께 선택을 받았다면 우리는 모범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범이 되되 교회 전체적으로 적어도 이 지역 사회에 사는 다른 교회에 다니는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범이 되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우리 가정에서나 직장/회사에서나 친구들 사이에서 먼저 예수님을 닮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범이 되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본 받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7 8 6사랑하는 아내에게 죽기 전에 내 안에 거하시는 작은 예수님을 보여주길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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