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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taught that we must become upright people who, in God’s sight, are blameless and fully keep His commandments.  

We are taught that we must become upright people who, in God’s sight, are blameless and fully keep His commandments.       “In the time of Herod king of Judea there was a priest named Zechariah, who belonged to the priestly division of Abijah; his wife Elizabeth was also a descendant of Aaron. Both of them were righteous in the sight of God, observing all the Lord’s commands and decrees blamelessly” [(Modern Translation: “When Herod was king of Judea, there was a priest named Zechariah of the division of Abijah, and his wife Elizabeth also came from the family of Aaron. They were righteous before God and faithfully kept all the Lord’s commandments and regulations without fault”)] (Luke 1:5–6).   While meditating on this passage, I would like to draw out the lessons given to us:   (1)    The author of Luke’s Gospel, Luke, first wrote to Theophilus about John the Baptist’s parents. The father’s name was “Zechariah” (meaning, “The LORD remembers...

"주의 광명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시편 36편)

"주의 광명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시편 36편 말씀 묵상]

 


늘 저는 CNN 인터넷 뉴스를 통하여 뉴져지 주(New Jersey)에서 동성의 결혼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풀로리다 주에서는 1990년 풀로리다 대학 캠프스에서 다섯 명의 대학생들을 잔인하게 죽인 사람이 사형을 당했습니다.  미국 아닌 이락에서는 이락 민간이 매일 약 100명씩 죽어간다고 합니다.  물론 미국 군인들도 죽어가고 있구요.  우리는 참 어두운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어두운 세상에서 과연 우리 교회는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인지요?  정민영이란 분이 쓴 “교회가 잠든 사이”라는 글을 보면 “깨어 일어나 빛을 발하든지 계속 잠들어 망하든지선택은 우리의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인터넷)그런데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잠든 세상을 깨워야 할 교회가 한밤중 깊은 잠에 빠져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잠든 요나 때문에 죽게된 이방 선원들이 도리어 요나를 깨웠듯오늘날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깨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무종교인과 매스컴이 교회를 노골적으로 책망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

 

오늘 본문 시편 36을 보면 우리는 악인의 패역을 탄식하다가 하나님의 인자와 공의를 바라보고 위한을 얻는 다윗을 보게 됩니다(박윤선).  오늘 본문 말씀 중심으로 “악인의 어두움과 “의인의 광명()”을 묵상하면서 우리 또한 악인의 패역을 듣고 보면서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인자와 공의를 바라보므로 위안을 받을 수 있길 기원니다.

 

첫째로악인의 어두움(Darkness of the Ungodly)을 묵상해 보십시다.

 

      D. L. 무디(Moody)오늘 본문 1-4절에서 죄악에 깊이 들어가는 일곱 걸음을 가리킨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에서 성경은 일곱 가지 악인의 어두움을 들춰내 주고 있니다: (1) 첫째로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36편 1절을 보십시오“악인의 죄얼이 내 마음에 이르기를 그 목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하니”.  다윗은 악익의 죄악을 보면서 자기 마음 속에 깨달음이 있었니다.  다시 말하면악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이 죄악으로 달음질 하지만 다윗은 그러한 악인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으로하나님을 더욱더 경외하기로 다짐하였습니다.  죤 칼빈은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그 악인은 방심하고 죄악으로 달음질하나성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죄가 악인의 마음에 말을 하고 의인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2:14).  (2) 둘째로지은 죄를 미워하지 않고 도리어 제 마음에 아첨하면서 괜찮게 생각하며 넘어갑니다.  오늘 본문 시편36 2절을 보십시오“저가 스스로 자긍하기를 자기 죄악이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 하리라 함이로다”.  여기서 “자긍”한다는 말은 “미끈하게 함”(smooth over)을 의미합니다.  아첨한다는 뜻입니다(박윤선).  이것은 “악을 행하면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괜찮다 괜찮다’하니 그것은 스스로 자기에게 아첨함이고동시에 스스로 속음이고스스로 멸망의 길로 직행함이다”(박윤선).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자기가 죄를 범하고도 죄를 가볍게 여기는 모습을 보십시오.  자기의 죄악이 드러나 미움 받을 일에 대하여는그가 스스로 자기 마음에 아첨하여 “괜찮다”고 하는 것입니다.  죤 칼빈은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그 악인은 스스로 제 마음에 대하여 아첨하나성도는 엄격하게 자기 자신을 반성하며 견제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는 악을 미워하되 철저히 미워하지만 어두움 가운데 있는 악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기에 죄를 가볍게 여기므로 죄악을 향하여 달려니다.  (3) 셋째로그 입은 거짓말을 잘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36편 3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그 입의 말은 죄악과 궤휼이라 …”.  악인은 죄를 행함에 있어서 가볍게 여기기에 입술을 함부러 놀려 죄를 범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우리 입술은남에게 은혜를 베풀고 진리를 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악인들은 그와 반대로 혀로써 남을 해하고 또 비진리를 말하기 위업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313-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악인의 입은 거짓말을 내뱉는 것입니다.  (4) 넷째로지혜와 선을 떠납니다.  오늘 본문 시편 36편 3절을 보십시오“…지혜와 선행을 그쳤도다”.  어두움 가운데 있는 악인은 전적으로 악화되어서 지혜도 없고 그러므로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도 상실하였습니다.  악인에게는 지혜가 불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선을 행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지혜가 불필요해 졌으니 결국 악인은 지혜와 선을 떠나 악행을 일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악인은 지혜가 없기에 옳다 함을 얻을 만한 선행이 따라오지 못니다(11:19).  (5) 다섯째로침대에서 악을 계획합니다.  늘 본문 시편 36편 4절을 보십시오: “저는 그 침상에서 죄악을 꾀하며 …”.  성도에게 있어서 “침상”은 자기 반성과 회개하기에 적합한 곳이지만(4:4) 악인은 오히려 그곳에서 악의 계획을 꾸니다(박윤선).  그것을 보면 그는 심령의 깊은 부분에까지 악이 가득한 자요선한 기회도 악행에 이용하는 자요돌연히 악에 끌려서 악을 행하게 되는 자가 아니고 계획적으로 악을 행하는 자입니다.  (6) 여섯째로스스로 불선한 길에 서 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36편 4절을 보십시오: “… 스스로 불선한 길에 서고 …”.  “곧그 악인이 외래의 강요나 유혹에 끌려서 마지 못하여 죄악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일부러 또는 기탄 없이 죄악을 즐거워하여 행하는 것을 가리킵니(박윤선).  저는 죄악을 즐거워하기까지의 과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을 시편 11절에서 찾아니다첫째로악인의 꾀를 좇음 (Walk in the counsel of the wicked), 둘째로죄인에 길에 섬 (Stand in the way of sinners그리고 셋째로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습니다(Sit in the seat of mockers).  (7) 마지막 일곱째로악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364절을 보시길 바랍니다... 악을 싫어하지 아니하는도다”(He does not despise evil).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악을 미워하지만 그러한 두려움이 없는 악인은 악을 싫어 하지 않고 좋아니다

 

이러한 악인의 어두움 가운데서도 의인은 오늘 본문 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여기서 우리가 두 번째로 묵상해 봐야 할 것은 의인의 광명 ()입니다.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주님그의 광명즉 그의 빛 안에서 우리는 빛을 니다.   다시 말하면악인의 어두움 가운데서 다윗은 주님의 광명()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 빛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신격을 가리킵니다.  그 하나님의 신격을 한 두 가지로 본문에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첫째로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의 성실하심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36 5절을 보시길 바랍니다“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성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의 광명인 그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에 “하늘에 있고” 공중에 사무쳤다는 말씀은 그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높은데서 환하게 비추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주님의 보호를 받으므로 오늘 본문 7절에서 이렇게 고백하였니다“하나님이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인생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나이다.  더 나아가서 다윗은 하나님의 풍족한 은혜로 말미암아 그의 영혼이 만족을 누렸습니다.  8절을 보시길 바랍니다“저희가 주의 집의 살찐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수로 마시우시리이다.  여기서 “복락의 강수”란 “당신의 기쁨의 강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박윤선).  ‘이것은영적으로 인생을 만족하게하는 은혜의 풍부함을 가리킵니다’(박윤선).  요한복음114절을 보면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full of grace and truth)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의 빛을 생각하면 예수님의 충만한 은혜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악인의 어두움 가운데 있을 때에라도 주님의 광명 (), 즉 그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의 빛을 바라보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2) 둘째로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그의 판단하심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36편 6절을 보십시오: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판단은 큰 바다와 일반이라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보호하시나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태산처럼 변하지 않으시면서 자기가 택한 백성의 모든 억울한 사정을 보시면서 그의 공의를 들어내신다는 말씀입니.  그의 공의가운데서 판단하심은 “큰 바다”같습니다.  “큰 깊음”을 가리킵니다.  이것은하나님의 오묘막측한 처사나 심판이 인간에게 신비로운 사실을 가리킵니다(박윤선).

 

오늘 본문 시편 36편을 묵상하고 또 묵상해 볼 때에 본문에 나오는 다윗은 왠지 예수님을 가리킨다는 생각이 저는 듭니다.  악인의 어두움에 둘러싸인 예수님그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그리고 그의 의로우심과 판단하심을 우리는 엿 볼 수가 있습니다.  결국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판단하심을 만족케 하셨으며 그 결과 우리에게는 주님의 복락의 강수로 마시우게 하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의 인자하심을 계속 우리에게 맛보게 하시므로 말미암아(10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기쁨의 강수로 마시우게 하니다.  우리의 영혼을 풍족하게 만족케 해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서 계속해서 그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나타내실 것이며 또한 우리를 공격해 오는 악인들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게 하니다(11).  결국 주님께서는 그의 지혜로운 판단하심 가운데 악인들을 다시는 일어날 수 없게 하실 것입니다(12).

 

 



주님의 빛을 바라보므로 어두움을 이겨나아가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06 10 25일 주님의 인자하심이 나의 생명보다 나음을 고백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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