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의 길
순종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외로울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무도 그 길을 걸어가는 당신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당신의 사랑하는 가족, 친척 식구들도 당신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주님께서 명하시고 뜻하신 길이기에 그 길을 믿음으로 걸어가는 당신은 끝까지 묵묵히 주님만 바라보면서 그 외로운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사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세기 22:1-2)고 명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3절). 그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되 모리아 산으로 3일 동안 걸어갔었을 뿐만 아니라(3-4절) 심지어 그는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고 하기까지(10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순종을 부인 사라가 알고 있었을까요? 만일 그녀가 알고 있었다면 그녀의 남편인 아브라함의 순종함을 자신의 명철로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사라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도 자신의 명철을 의지했었더라면 결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명철로는 하나님의 명령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순종을 아들 이삭은 이해하고 있었을까요? 그는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7절) 그 때 아버지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에게 이렇게 답변하였습니다: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8절). 그런데 어째서 내 아버지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나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나를 잡으려고 하시는 것일까요?(9-10절) 아들 이삭의 입장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겲코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명철로 하늘의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못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충분히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뜻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뜻에 순종함에 있어서 우리의 본능은 적어도 사랑하는 가족 식구들에게 이해를 받고 싶어하겠지만 이해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오해를 받는다 할찌라도 우리는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말씀에 묵묵히 순종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예수님도 그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여 죽으시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빌립보서 2:8). 순종하시되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영접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요한복음1:11) 오히려 배척을 당하셨습니다(마태복음 13:57).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십자가에 못박히시기까지(요한복음 19:6)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히브리서 5:8)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들에게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누가복음 9:23)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주님의 말씀에 당신은 믿음으로 순종하시겠습니까? 당신은 주님 가신 십자가의 순종의 길을 주님만 바라보면서 묵묵히 걸어가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식구들에게조차 이해를 받기보다 오해를 받을 수 있는 그 외로운 길을 당신은 아버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믿음으로 끝까지 걸어가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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