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مقدمة

    مقدمة       "مَخَافَةُ الرَّبِّ رَأْسُ الْمَعْرِفَةِ، أَمَّا الْجُهَّالُ فَيَحْتَقِرُونَ الْحِكْمَةَ وَالتَّأْدِيبَ... الْحُسْنُ غِشٌّ وَالْجَمَالُ بَاطِلٌ، أَمَّا الْمَرْأَةُ الْمُتَّقِيَةُ الرَّبَّ فَهِيَ تُمْدَحُ" (أمثال 1: 7؛ 31: 30).     منذ نحو أربعة عشر عاماً، بدأ الله يكشف لي -بشكل متزايد ومن خلال كلمته- عن حماقتي ونقص الحكمة لدي، مولِّداً في داخلي قناعةً بأنه لم يعد بإمكاني الاستمرار في عيش حياة تتسم بتلك الحماقة. ونتيجة لذلك، عقدت العزم على طلب "الحكمة" من الله -متمسكاً بالوعد الوارد في رسالة يعقوب 1: 5: "وَإِنْ كَانَ أَحَدُكُمْ تُعْوِزُهُ حِكْمَةٌ، فَلْيَطْلُبْ مِنَ اللهِ الَّذِي يُعْطِي الْجَمِيعَ بِسَخَاءٍ وَلاَ يُعَيِّرُ، فَسَيُعْطَى لَهُ"- وعلى التأمل في "أسفار الحكمة" في الكتاب المقدس. كان سفر المزامير هو أول سفر اخترته؛ وبعد التأمل فيه لنحو أربع سنوات (من 21 سبتمبر 2005 إلى 30 سبتمبر 2009)، انتقلت للتأمل في سفر الجامعة (من 7 أكتوبر 2009 إلى 22 ديسمبر 2010). ثم، ابتداءً من 5 يناير 2011، بدأتُ في تقديم عظات حول ...

어떻게 감사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감사할 수가 있습니까? " 나의 탓이로다 " 라고 아비아달에게 말했던 다윗 ( 사무엘상 22:22),  자기 때문에 아비아달의 아버지인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 제사장들 (11 절 )  85 명이나 죽임을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18 절 ).   그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 시편 52:9).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저 같으면 죄책감과 자책감으로 허덕일텐데 ,  어떻게 다윗은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을까요 ?   어쩌면 그 이유는  그는 그 와중에서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8 절 ).   또한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8 절 ) ( 시편 52:1, 7, 8).

"나의 탓이로다"

"나의 탓이로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세우신 제사장 아히멜렉이 죽임을 당한 것이  자기 탓인 줄 알았습니다 ( 삼상 22:22).   우리도  주님의 종이 해 ( 고통 ?) 를 당하는 것이  " 나의 탓 "(22 절 ) 인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   우리 목사님들은  성도님들이 힘들어 하고 고통을 당하는 것이  " 나의 탓 " 인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  

“나의 탓”

  “ 나의 탓 ”     “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말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하니라 ”( 사무엘상  22 장  22-23 절 ).               “ 내 탓 ” 입니까 아니면  “ 네 탓 ” 입니까 ?  “ 잘 되면 내 탓 ,  안되면 조상 탓 ” 인가요 ?   진정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것입니까 아니면 나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것입니까 ?   혹시 나 때문에 저 사람이 저렇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   천주교 주요 기도문에 나오는‘고백의 기도’중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가슴을 세 번 치면서  ? 내 탓이오 ,  내 탓이오 ,  내 큰 탓이로소이다 ? 하는 기도문이 있다고 합니다 .   이 기도문에서 따온 말이 바로  “ 내 탓이오 ” 였고  1990 년에 있었던 카톨릭에서 벌인  “ 내 탓이오 ”  운동의 배경은  ‘ 너는 형제의 눈 속에 든 티는 보면서 어째서 제 눈 속에 들어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 마 7:3) 고 한 그리스도의 말씀처럼 자신의 잘못은 깨닫지 못하고 남의 잘못만을 비난하는 사회분위기를 앞장서서 반성하자는 데 있었다고 합니다 .   카톨릭의 이  “ 내 탓이오 ”  운동은 국민적 자각을 일깨우는데 적지 않게 기여는 했지만 아쉽게도 오래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