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자의 만남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사도행전 16장 16절).
우리 삶의 여정에 주어지는 만남들을 보면 우리의 관점으로 볼 때 좋은 만남들이 있는가 하면 좋치 않은 만남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볼 때 좋은 만남들이란 우리를 상쾌하게 하고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유익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볼 때 좋치 않은 만남들은 우리를 힘들게 하며
괴롭게 할 뿐 아니라 우리에제 전혀 유익이 되지 않아 보이는 만남입니다. 그러면 이 모든
만남들을 과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보고 계실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삶의 여정의 만남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의 만남들은 모두 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만남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만남들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 만남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모를 뿐이지 우리의 만남들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우리가 주님 안에서 우리의 만남에 충실할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펼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16장 16절 문맥을 보면 사도 바울과 그의 일행인 실라와 디모데는 3 만남들을 갖습니다. 첫 번째 만남은 우리가 익히 들어 아는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는 여자입니다(14절). 두 번째 만남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과의 만남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만남은 바로 간수와의 만남입니다(27절ff). 이 세 만남들을 우리의 눈으로 평가할 때 첫 번째 만남인 루디아와의 만남과 세 번째 만남인 간수와의 만남은 좋은 만남들이였습니다. 그 이유는 루디아나 간수나 바울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사용하시사 루디아나 간수 뿐만 아니라 그들의 온 집이 하나님을 믿게 하시사 세례를 받게 하시므로
말미암아(15, 34절) 다들 크게 기뻐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만남들은 우리가 볼 때 좋은 만남들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점을 보는 귀신
들린 여종과의 만남은 우리가 볼 때 좋치 않은 만남입니다. 그 이유는 그 여자는 바울을
심히 괴롭게 하였기 때문입니다(18절). 더 나아가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여자 안에 있는 귀신을 좇아 내므로 말미암아 그 여자의 주인들에게 모함을 받고(20절) 결국에는 매를 많이 마진 후 깊은 옥에 갇히게 되었기에(23절) 우리가 볼 때 이 만남은 좋치 않은 만남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만남을 통해서 우리가 괴로움을 심하게 당하고 모함을 받고 핍박도 받아 감옥에까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갖힌다면 어느 누구 이러한
만남을 좋은 만남이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리고 만일 우리가 바울처럼 우리를 심히 괴롭히던
자를 도와준 대가로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다면 우리는 결코 감옥에서 바울처럼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25절). 그런데 어떻게 바울과 실라는 깊은 감옥에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한
것입니까?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고는 할 수 없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뜻은 알 수 없으나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 말씀 묵상하면서 참 하나님의 섭리가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 이르러서(12절) 기도처가 있는지 찾고 있었는데(13, 16절) 그들의 기도처가 바로 깊은 감옥이였기 때문입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배당에서 기도케 만드시지 않으시고 깊은 감옥과 같은 곳에서 기도케 만드시기도 하신다는 사실이 여러분은 흥미롭지
않습니까? 바울과 실라는 깊은 옥에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므로 말미암아 기적을 경험하였는데
그 기적은 바로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 것입니다(26절). 그러나 이 보다 더 큰 기적은 우리가 보기엔 좋치 않은 바울을 심히
괴롭히는 귀신 들린 여종과의 만남이였지만 그 결과는 세 번째 만남인 바울과 실라를 지키던 간수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간수의
온 집이 다 하나님을 믿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33-34절).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요 역사입니까? 이것이 진정으로 기적 중에
기적이 아닙니까? 자살하려는 한 간수가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영혼도 구원을 받고
더 나아가서 그 한 간수를 통하여 그의 온 집을 구원 받은 것, 이것이 기적 중에 기적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기적을 만남들을 통해서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처가 있는가 찾고 있었던 바울과 실라를 루디아와 만나게 하시사 그녀와 그녀의 온 가족 식구를 구원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간수를 깊은 옥에서
만나게 하시사 그와 그의 온 집도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주님 안에서 귀한
만남입니까? 이 귀한 두 만남 과정에 하나님께서는 귀신 들린 여종과의 만남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 좋치 않는 만남, 우리를 심히 괴롭게 하는 만남, 이 만남도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시사 결국 바울과 실라로
하여금 기도처(“깊은 옥”)를 찾게 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처에서 바울과 실라로 하여금 기도케 하시고 하나님을 찬미케 하시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기도하는 자의 만남은 모두 다 좋은 만남입니다. 그 이유는 좋으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주관하시는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 인간의 관점으로 볼 때에는 좋치
않은 만남일지라도 좋으신 하나님은 그러한 만남도 사용하시사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에(롬8:28) 그 만남 또한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땡에는 좋은 만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기도자의 좋은 만남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자가 되심을 우리의 심비에 깊이 적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하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어떠한 만남을 허락하시사 영광을 나타내실지 우리 모두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리십시다. 승리!
모든 만남들을 주관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0년 11월 19일, 기도하므로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과 만나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귀한 만남을 가지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하길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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