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라벨이 탕자인 게시물 표시

God’s love, which is stronger than death, is causing me to continue walking the path of the mission the Lord has given me (John 6:1–15).

God’s love, which is stronger than death, is causing me to continue walking the path of the mission the Lord has given me (John 6:1–15).             “At that very time some Pharisees came and said to Him, ‘Leave this place and go somewhere else. Herod wants to kill You.’   He replied, ‘Go tell that fox, “I will keep driving out demons and healing people today and tomorrow, and on the third day I will reach My goal.”   In any case, I must press on today and tomorrow and the next day—for surely no prophet can die outside Jerusalem!   Jerusalem, Jerusalem, you who kill the prophets and stone those sent to you, how often I have longed to gather your children together, as a hen gathers her chicks under her wings, and you were not willing.   Look, your house is left to you desolate.   I tell you, you will not see Me again until you say, “Blessed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Luke 13:31–35).     ...

“그제서야” 신부된 교회는 신랑되신 주님께 돌아갈 것입니다.

“ 그제서야 ”  신부된 교회는 신랑되신 주님께 돌아갈 것입니다 . “ 그제서야 ” 신부된 교회는 신랑되신 주님께 돌아갈 것입니다 .   즉 , 교회인 우리가 영적으로 음란하게 예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여 돈을 그리도 열심히 찾고 쫓아갔지만 주님께서 계속해서 그 길을 막으시므로 말미암아 돈을 얻지 못할 그제서야 우리는 궁핍함 가운데서 주님께 돌아갈 것입니다 .   그 이유는 그 때 우리가 주님만 쫓고 따랐을 때의 형편이 돈을 쫓다가 궁핍해진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았기 때문입니다 ( 참고 : 호세아 2:7,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예수님의 탕자 비유가 생각났습니다 ( 눅 15:11-32).   아마도 그 이유는 탕자는 먼 나라로 가서 방탕한 생황을 하다가 자기 재산을 모두 날려버려 궁핍함 가운데 있었을 “ 그제서야 ”(17 절 , 현대인의 성경 ) 그는 제정신이 들어 “ 내 아버지의 집에는 양식이 풍부하여 많은 일꾼들이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 하고 말한 후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17-20 절 , 현대인의 성경 ).

왜 하나님께서는 삶의 풍요롭던 시절을 다 잊히게 만드실 정도로 극심한 삶의 기근을 내려주(허락하)시는 것일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삶의 풍요롭던 시절을 다 잊히게 만드실 정도로 극심한 삶의 기근을 내려주 ( 허락하 ) 시는 것일까요 ?    삶의 기근이 너무 심하면 이전의 삶의 풍년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   이렇게 극심한 인생의 기근은 풍요롭던 시절을 다 잊히게 만듭니다 ( 참고 : 창세기 41:30-31, 현대인의 성경 ).   왜 하나님께서는 삶의 풍요롭던 시절을 다 잊히게 만드실 정도로 극심한 삶의 기근을 내려주 ( 허락하 ) 시는 것일까요 ?   혹시 탕자처럼 궁핍함 가운데서 죄를 뉘우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서 일까요 ? ( 누가복음 15:13-20)   요셉의 때에 왜 하나님께서 젓과 꿀이 흐르는 풍족한 가나안 땅에도 기근이 들게 하셨을까요 ?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미워하여 ( 창세기 37:8) 그들 죽이려 다가 (20 절 )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판 (28 절 ) 그의 형들의 죄를 회개케 하시려고 했던 것일까요 ?   혹시 우리로 하여금 과거에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풍족한 은혜를 다시금 생각케 만들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 (appreciation) 하게 만드시고 그러시는 것일까요 ?   어쩌면 삶의 기근으로 말미암은 우리가 경험하는 궁핍함은 하나님의 큰 구원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요 ? (45:5, 7)

하나님의 뜻이었을까요?

하나님의 뜻이었을까요?   가나안 땅에 심한 흉년으로 인해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을 떠나 애굽 ( 이집트 ) 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을까요 ?( 창세기 12:10, 현대인의 성경 )   유다 땅에 흉년이 들어 엘리메렉이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과 함께 유다 땅을 떠나 모압 땅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을까요 ? ( 룻기 1:1, 현대인의 성경 )   탕자가 아버지에게 자기 몫으로 돌아올 재산을 다 정리하여 먼 나라로 가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재산을 모두 날려버렸을 때 그 나라에 심한 흉년까지 들어 굶주리게 된 탕자가 결국에 가서는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을까요 ?( 누가복음 15:11-20, 현대인의 성경 )

나 같은 탕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엿봅니다.

나 같은 탕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엿봅니다.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신데 자기 몫으로 돌아올 재산을 미리 받아서  먼 나라로 가서 창녀들과 놀아나면서  방탕한 생활로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날려버리고  굶어 죽는 궁핍함 속에서 제정신이 들어  "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어 이젠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도 없습니다 .   다만 저를 일꾼의 하나로 써주십시오 " 라고 한 둘째 아들이  "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었다가 다시 찾았다 " 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 종들과 함께 먹고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통해  나 같은 탕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엿봅니다 ( 누가복음 15:11-32, 현대인의 성경 ).

진짜 탕자는 맏아들?

진짜 탕자는 맏아들 ?     집을 나간 자식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   그래서 부모님은 그 자녀를 위하여 매일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며  돌아오기만을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   그 좋은 성경적인 예가  바로 누가복음 15 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입니다 (11-32 절 ).   그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는  탕자인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자기 분깃으로 받은 자기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갔을 때 (12-13 절 ) 그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20 절 ).   그러다가 그 아버지는 자기의 둘째 아들이 궁핍함 가운데서 (13-17 절 )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마음으로 아버지께로 돌아왔을 때  멀리서 그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축은히 여겨 달려가  그 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췄습니다 (20 절 ).    그리고 그 아버지는 종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그 아들에게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서 함께 먹고 즐기자고 말했습니다 (22-23 절 ).   그 이유는 그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잃었다가 다시 얻었고 ( 찾았고 )  죽었다가 다시 살았기 때문입니다 (24 절 ).  저는 여탯것 이 탕자의 비유를 생각할 때   아버지의 입장에서 돌아와야 할 아들은  집 나간 둘째 아들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   그런...

나 같은 탕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엿봅니다.

나 같은 탕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엿봅니다.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신데 자기 몫으로 돌아올 재산을 미리 받아서 먼 나라로 가서 창녀들과 놀아나면서 방탕한 생활로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날려버리고 굶어 죽는 궁핍함 속에서 제정신이 들어 "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어 이젠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도 없습니다 .   다만 저를 일꾼의 하나로 써주십시오 " 라고 한 둘째 아들이 "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었다가 다시 찾았다 " 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 종들과 함께 먹고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통해 나 같은 탕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엿봅니다 ( 누가복음 15:11-32, 현대인의 성경 ).  

진짜 탕자는 맏아들?

  진짜 탕자는 맏아들? 집을 나간 자식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그 자녀를 위하여 매일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며  돌아오기만을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그 좋은 성경적인 예가  바로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입니다(11-32절).   그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는  탕자인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자기 분깃으로 받은 자기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갔을 때(12-13절) 그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20절).   그러다가 그 아버지는 자기의 둘째 아들이 궁핍함 가운데서(13-17절)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마음으로 아버지께로 돌아왔을 때  멀리서 그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축은히 여겨 달려가  그 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췄습니다(20절).   그리고 그 아버지는 종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그 아들에게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서 함께 먹고 즐기자고 말했습니다(22-23절).   그 이유는 그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잃었다가 다시 얻었고(찾았고)  죽었다가 다시 살았기 때문입니다(24절).   저는 여탯것 이 탕자의 비유를 생각할 때   아버지의 입장에서 돌아와야 할 아들은  집 나간 둘째 아들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본문 예레미야 26장 3, 13절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어쩌면 그 탕자의 비유에서  진정으로 돌아와야 할 아들은 맏아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게 된 이유는  둘째 아들은 자신의 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