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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11)

이 성탄 계절에 사도 바울은 두기로를 특별히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보냈다(골4:8)하는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gave)(요3:16)는 말씀과 더불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내주"셨다(gave up)(롬8:32)는 말씀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셨다(gave Himself up)(엡5:2)는 말씀을 연관해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마27:46)라는 말씀도 생각났습니다.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버리시기까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도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우리 목숨을 잃을 수 있길 기원합니다(막8:35).   https://youtu.be/amBwOJJrKxs?si=B6DoBllFE_Il7U-p

진짜 탕자는 맏아들?

진짜 탕자는 맏아들?

 

 

집을 나간 자식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자녀를 위하여 매일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며 돌아오기만을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좋은 성경적인 예가 바로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입니다(11-32).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는 탕자인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자기 분깃으로 받은 자기 재산을 모아 가지고 나라에 갔을 (12-13)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20).  그러다가 아버지는 자기의 둘째 아들이 궁핍함 가운데서(13-17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마음으로 아버지께로 돌아왔을 때 멀리서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축은히 여겨 달려가  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췄습니다(20).   그리고 아버지는 종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아들에게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서 함께 먹고 즐기자고 말했습니다(22-23).   이유는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잃었다가 다시 얻었고(찾았고죽었다가 다시 살았기 때문입니다(24). 

저는 여탯것 탕자의 비유를 생각할   아버지의 입장에서 돌아와야 아들은  나간 둘째 아들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본문 예레미야 26 3, 13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어쩌면 탕자의 비유에서 진정으로 돌아와야 아들은 맏아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게 이유는 둘째 아들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뉘우쳐 자기 집과 자기 아버지께로 돌아갔지만 맏아들은 자기 동생이 돌아왔을 자기 아버지의 기쁨에 동참하기보다 아버지를 향하여 분노하는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28-30).  특히 둘째 아들은 ‘나 행한 (sin)밖에 없습니다’라는 겸손한 자세와 은혜의식을 가지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아버지께로 돌아간 반면에(18-21맏아들은 ‘나 행한 (righteousness) 밖에 없습니다’라는 “자기-의”(self-righteousness) 내세우는 교만한 자세와 공로의식으로 아버지에게로부터 멀리 떠나있었기에(29진정으로 아버지께 돌아갔어야 자는 맏아들이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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