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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taught that we must become upright people who, in God’s sight, are blameless and fully keep His commandments.  

We are taught that we must become upright people who, in God’s sight, are blameless and fully keep His commandments.       “In the time of Herod king of Judea there was a priest named Zechariah, who belonged to the priestly division of Abijah; his wife Elizabeth was also a descendant of Aaron. Both of them were righteous in the sight of God, observing all the Lord’s commands and decrees blamelessly” [(Modern Translation: “When Herod was king of Judea, there was a priest named Zechariah of the division of Abijah, and his wife Elizabeth also came from the family of Aaron. They were righteous before God and faithfully kept all the Lord’s commandments and regulations without fault”)] (Luke 1:5–6).   While meditating on this passage, I would like to draw out the lessons given to us:   (1)    The author of Luke’s Gospel, Luke, first wrote to Theophilus about John the Baptist’s parents. The father’s name was “Zechariah” (meaning, “The LORD remembers...

우리의 경영

 우리의 경영

 


[사도행전 19장 21-41절 말씀 묵상]


 

‘1만 명 먹이는 하나님의 경영’이란 책의 저자 김종춘 목사님은 서울대 불문과한세대 신대원과 연세대 교육대학원경영대학원을 졸업했고 한국무역협회를 11년간 근무한 현 충인교회 담임목사님이십니다.  그에게 오늘날 세속주의적 신앙에 편승하여 타협적 신앙을 합리화하고 살아가는 신앙 경영인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크리스천 CEO 정신에 대해서 그 책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세상에 경영이 아닌 게 어디 있겠습니까?  세계경영국가경영교회경영가정경영자기 경영미래경영지식경영 등 다 경영입니다.  다만 크리스천 경영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항상 전제되기 때문에 그 독특성과 차별성이 있습니다.  진정한 경영은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를 전제로 합니다.  크리스천의 삶이 곧 경영이다삶의 전 영역에서 경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한 좋은 성경적인 예 또는 모델은 바로 요셉입니다.  그는 7년 풍년과 7년 흉년을 잘 경영함으로써 당대의 이집트는 물론 주변국들까지 위기에서 건져낸탁월한 경영자입니다그가 세계경영의 원조인 셈입니다.  크리스천 경영의 3가지 포인트는 열심지혜와 지식은혜입니다.  열심은 경영의 기본입니다(28:19-20).  열심에 지혜와 지식이 더해지면 금상첨화 입니다 (24:5). 지혜와 지식이 열심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당할 재간이 없습니다.  지혜가 제일(4:7)이라는 잠언의 외침도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21:30-22:1).  우리는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최선을 다 해지혜롭게 지식을 따라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고 우리의 삶을 경영해야 하겠습니다.  크리스천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한 마디 그리고 기도제목이 있다면 하나님의 영원한 관점죽음 이후의 관점죽음을 바로 앞둔 관점에서 내세와 당대와 후대를 아우르는 자기경영의 틀을 부단히 점검해 봐야 할 것입니다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꾸준하면서도 민첩한 자기경영이 요구됩니다(인터넷).  

 

지혜자 솔로몬은 잠언 163절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맞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행사를 다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러나 다 하나님께 맡김에 있어서도 우리는 우리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경영’입니다.  오늘 “우리의 경영”이라는 제목 아래 과연 우리의 경영을 어떻게 할 것인지 한 세 가지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우리는 경영하기 위하여 우리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9장 21절을 보십시오: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사역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역사 가운데 다 마친 후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을 경유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계획을 짜고 있었습니다(유상섭).  왜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기를 계획하였습니까?  그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목적은 바로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로마는 땅 끝까지 나가는 전초 기지로서 사도 바울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한 후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유상섭).  이러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사도 바울은 계획을 짜되 먼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을 방문하여 성도들을 위로하고 권면한 후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거기 있다가 최종 목적지인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명령처럼 땅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길 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한국 성경에는 오늘 본문 21절에 “바울이 … 예루살렘 가기를 경영하여”라고 적혀 있는데 원어 헬라어를 좀 더 가깝게 잘 번역한 영어 성경 NASB를 보면 “Paul purposed in the spirit to go Jerusalem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한국 말로 번역한다면, ‘바울은 예루살렘 가기를 영으로 결정하였다’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사도 바울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움에 있어서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그의 목적과 계획은 자기 이익과 자기 영광이 나타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길 원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우리가 분명한 목적과 구체적인 계획을 세움에 있어서 영적 민감함을 가지고 성령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기도하며기대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너무나 성급하게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가끔 우리는 이렇게 말을 하던지 또한 그러한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무조건 믿음으로 일을 저지르면 됩니다’.  물론 믿음으로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행함에 있어서 과연 우리는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믿음으로 행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 일을 내가 생각하는 ‘믿음’으로 행하는지를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너무나 많은 때에 우리는 주님의 뜻을 잘 모르는 가운데 무조건 믿음으로 일을 저지르다가 길이 막히면 주님의 뜻이 아닌가 보다 하고 다시 주님의 뜻을 찾아볼 때가 있습니다.  좀 더 신중하게 우리는 주님의 뜻을 기다리고 그 뜻을 깨달아 순종해야 합니다.  그 한 예로 우리는 사도행전1610절을 들 수가 있습니다.  바울이 그의 일행이 소아시아로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하였을 때 성령님께서 길을 막으시고 마게도냐로 인도하심에 있어서 사도 바울은 환상 가운데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바울에게 청하여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말을 듣고 사도 바울은 그의 일행과 함께 이것이 주님께서 마게도냐에서 복음을 전하라는 뜻으로 ‘인정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영어 NIV나 NASB 성경을 보면 “concludi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그의 일행은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자기들을 부르신 줄을 “인정” 또는 “결론”을 내렸다는 말씀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좀 더 구체적으로 무슨 뜻입니까?  이 단어의 뜻은 인정하다’라는 단어의 의미는 ‘함께 가도록 만들다’, ‘하나로 되다’, ‘결합시키다’, ‘이것 저것에 동의하므로 결론을 내리다’입니다(to make go together, to coalesce or knit together, to make this and that agree and so to conclude)( Word Pictures in the New Testaments).  이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볼 때에 사도 바울과 그의 일행은 바울의 환상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이성(reason)을 사용하여 논한 결과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함께 동의하고 결론을 내렸던 것입니다.  바울과 그의 일행은 환상을 통하여 주님께서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그의 뜻을 계시해 주셨음에 충분히 설득을 당했던 것(being fully persuaded)입니다(칼빈).  우리는 분명한 목적과 그 목적을 이루고자 구체적인 계획을 세움에 있어서 우리는 주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경영이 주님의 뜻대로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광스러운 경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제일 먼저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12:2).  그러므로 영적 민감한 가운데서 성령님께서 막으시는 문과 열어주시는 문을 분간해야 합니다.  그는 분명히 한 쪽 문을 닫으시며 또 다른 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점은 주님의 뜻인지 아닌지 함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이성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져 가는 이성을 사용하여 주님의 뜻을 깨달아 그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에 합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로우리는 경영하기 위하여 신뢰할 만한 돕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9장 22절을 보십시오: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간 더 있으니라”.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갔다가 최종적으로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실천으로 옮김에 있어서 자기를 돕는 사람들 중에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22).  바울은 이 두 사람을 먼저 마게도냐로 보낸 후 자기는 얼마 기간 동안 아시아 지역에 좀더 남아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의 전도로 세워진 교회들에 사랑하는 제자들을 파송해서 그 교회를 심방하여 붙들어 주도록 부단히 노력했었습니다.  그 한 예로 오늘 본문 22절에서 바울은 그의 제자들 중 디모데와 에라스란 돕는 자들을 마게도냐로 파송한 것입니다.  우리는 주로 사도 바울히면 참으로 위대한 인물로 보면서 우리는 그의 조력자들다시 말하면 그를 돕는 자들을 잘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의 편지들의 끝 부분에 가서 종종 그의 동역자들조력자들돕는 자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그 한 예로 골로새서 47절부터 17절까지 보면 사도 바울은 그의 동역자들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마음에 다가오는 문구는 반복적으로 나오는 ‘신실하다’라는 단어 입니다[두기고 - 신실한 일군”(7), 오네시모 -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9 )].  바울의 조력자들돕는 자들은 참으로 신실한 일군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신실한 일군들은 신뢰할 만한 돕는 자들입니다.  또 다른 예는 빌립보서 225절에 나와있습니다.  그 구절을 보면 사도 바울의 동역자였던 에바브로디도에 대하여 바울은 그를 가리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미 해병대 모토를 아시죠?  그것은 바로 “A few good men” 입니다.  해석하자면 ‘소수정예’입니다.  이들이 받는 훈련은 우리는 잘 모르지만 한 가지 우리가 익히 아는 사실은 해병은 '많은 인원'일 수 없는 소수정예 부대인 것은 배수진과 진배없는 상륙 전을 감행해야 하는 군인이므로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소수의 예수님의 군사들이 돕는 자들로 옆에 있을 때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큰 힘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충성스럽고 신실하며 신뢰할 만한 소수의 훈련된 일군들 …  이러한 돕는 자들이 바울 주위에 있었기에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와 하나님 나라 확장하는 사역에 큰 일을 감당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어떠합니까?  과연 저와 여러분들 주위에 신뢰할 만한 신실한 돕는 자들이 있습니까?  과연 있으시면 몇이나 있으십니까?  다른 쪽으로 생각해 볼 때 과연 저와 여러분들은 우리의 지도자들에게 신뢰할 만한 돕는 자들입니까 진정한 리더로 거듭나기 위한 7가지 법칙” 중 여섯 번째 법칙을 보면 “언행일치의 메시지를 전달하라”는 말이 있습니다그 법칙은 우리가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우리 자신이 하겠다고 말한 일은 실제로 실행하는 언행일치의 사람이 되야 한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모범을 보이는 것이 신뢰를 얻는데 긴요한 것입니다.  리더가 신뢰할 수 있는가를 결정할 때 사람들은 우선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 다음에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을 봅니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 ‘믿을 수 있다’는 판정이 내려집니다리더가 어떻게 살아가는 가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여러분에게 맡길지 여부를 결정합니다(인터넷).  우리 모두가 우리가 경영하는 일에 신뢰할 만한 돕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붙혀 주시길 기원합니다.

 

셋째로우리는 경영함에 있어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예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9장 23절을 보십시오: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인하여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여기 23절부터 마지막 절인 41절까지는 사도 바울이 그의 신실한 두 돕는자들인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게도냐로 먼저 보낸 다름 에베소에 잠시 머물고 있었을 때 일종의 노조위원장이라고 할 수 있는 데메드리오의 선동으로 촉발된 대소동을 진술하고 있습니다(유상섭).  왜 이러한 대소동이 일어났습니까?  이 사건은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려고하다가 크게 수치와 망신을 당한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대변화의 역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유상섭).  어떻게 관련이 되 있는가 하면 지난 주일에 묵상했듯이 이미 주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행해 왔던 미신적인 관습을 고백하고 포기하는 역사가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18전혀 주님을 믿지 않던 많은 주술인들이 대대적으로 주술과 관련된 책들을 불살라 폐기 처분하고 주님께 돌아오게 되었습니다(19).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하여 에베소인들 가운데 우상 문화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에베소인들이 섬기는 신들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들로서 결국 신이 아니라는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에베소인들은 각종 우상과 주술과 관련된 물품들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게 되므로 말미암아 우상에 관한 제품들을 폐기하고 더 이상 이러한 물건들을 만들지도 사지도 않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유상섭).  유상섭 교수님의 말씀입니다: “에베소의 아데미 우상 산업을 주도하고 이로 인하여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누 려왔던 자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앉아서 망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단체를 결성하여 대소요를 일으켰던 것이다.”  이 대소요를 일으켰던 주동자였던 데메드리오라 하는 은장색 또한 우상인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은 벌이(24),  “유족한 생활”(25)을 하고 있었는데 돈벌이 줄어들자 그는 그 직공들과 이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소동을 일으켰습니다(25).  그가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면서 주장했던 것을 바로 이것이였습니다: “우리의 이 영업만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전각도 경홀이 여김이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27).  그 때 군중들의 반응은 28-29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분이 가득하여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온 성이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가지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들어 가는지라”.  그 때 사도 바울은 그의 동행자들인(4:10) 더베 사람 “가이오”( 20:4)와 데살로니가 사람인 “아리스다고” (20:4; 27:2)와 같이 고난을 겪으려고 연극장으로 들어가려고 했었지만 제자들이 말렸습니다(30) (박윤선).  겱국은 에베소의 서기장이란 관리가 나서서 에베소의 안녕과 질선을 위하여 대소동을 일으키는 무리들을 안돈시키므로 말미암아 대소동을 막았습니다 (35-41).  한 마디로 이 대소동의 원인은 오늘 본문 23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이 도”즉 복음으로 인하여 일어났던 것입니다.  복음을 대적하는 우상숭배자들우상과 관련하여 돈을 벌어 유족한 생활을 하던 데메드리오와 같은 사람들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적하여 대소동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서 이러한 적지 않는 어려움을 예상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이 주님 오시기 전까지는 항상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 대적자들로 인하여 낙심하고 좌절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인 오히려 우리가 바로 복음을 전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해야 합니다(1:28).  그 이유는 복음 대적 자들에게는 멸망의 빙거(a sign of destruction)이요 우리 예수님을 믿는 복음 전파 자들에게는 구원의 빙거(a sign of salvation)이기 때문입니다(1:28).  우리는 요한복음1633절 하 반절 말씀처럼 우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경영함에 있어서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 목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경영함에 있어서 신뢰할 만한 돕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경영함에 있어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예상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에게로 부터 환난과 핍박이 있을 것을 예상해야 합니다.  예상하되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셨기에 우리도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복음 전파에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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