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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taught that we must become upright people who, in God’s sight, are blameless and fully keep His commandments.  

We are taught that we must become upright people who, in God’s sight, are blameless and fully keep His commandments.       “In the time of Herod king of Judea there was a priest named Zechariah, who belonged to the priestly division of Abijah; his wife Elizabeth was also a descendant of Aaron. Both of them were righteous in the sight of God, observing all the Lord’s commands and decrees blamelessly” [(Modern Translation: “When Herod was king of Judea, there was a priest named Zechariah of the division of Abijah, and his wife Elizabeth also came from the family of Aaron. They were righteous before God and faithfully kept all the Lord’s commandments and regulations without fault”)] (Luke 1:5–6).   While meditating on this passage, I would like to draw out the lessons given to us:   (1)    The author of Luke’s Gospel, Luke, first wrote to Theophilus about John the Baptist’s parents. The father’s name was “Zechariah” (meaning, “The LORD remembers...

은혜의 말씀

 은혜의 말씀

 


[사도행전 14장 1-7절 말씀 묵상]


 

로기스모이(Logismoi)”란 말은 희랍어로서 사막의 교부들이 사용하였던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죄를 짓게 만들고 절망에 빠트리는 거짓 생각과 욕망을 가리킵니다 로기스모이는 성경에 어긋나는 마귀의 생각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나쁜 일그리고 타락한 말과 행동을 반드시하게 만듭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종종 악한 생각들과 걱정에 억눌려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셔서 말씀을 통해 계시하시고 깨닫게 해주시기를 기도하며 묵상을 시작하는 이유다”(인터넷).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은 어떠하십니까?  혹시니 죄를 짖게 만들고 절망에 빠트리는 거짓 생각과 욕망(로기스모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시지는 않은지요? 

 

오늘 본문 사도행전 143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켜 “은혜의 말씀” 이라 고 저자 누가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핍박을 받아 쫓겨난 바울과 바나바는(13:50) 그들을 핍박한 유대인들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온 것입니다(51).  먼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기본 원칙 따라(박윤선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힘있게 전하였습니다 (박윤선).  그 때 바울과 바나바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성내 무리가 두 그룹으로 나뉘어졌습니다 (4).  그 두 그룹을 묵상하면서 과연 우리는 어느 그룹게 속해 있어야 하는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 번째 그룹은은혜의 말씀을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여기서 은혜의 말씀을 대적하는 자들은 어떠한 자들이였습니까?  첫째로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자들입니다.  다시 말하면은혜의 말씀을 대적하는 이 무리들은 예수님을 불신하는 자들이였습니다.  이 첫 번째 그룹인 은혜의 말씀을 대적한 자들은 바울와 바나바를 통하여 은혜의 말씀인 복음을 듣고 나서도 그 복음의 핵심인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불신은 지나 주일에 묵상한 사도행전 1348절 말씀에 근거해서 생각해 볼 때에 이들 불신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이 아니였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은혜의 말씀인 복음을 대적하는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들이 아니였던습니다.  둘째로은혜의 말씀을 대적하는 자들은 불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4장 4절을 보면 바울과 바나바를 통하여 은혜의 말씀을 듣고 이고니온 성내 무리가 나뉘어졌는데 그 첫 번째 그룹을 가리켜 유대인을 좇는 자들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누구냐면 오늘 본문 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순종치 아니하는”이란 말이란 헬라어 단어는 ‘설득을 당하기 싫은’ 혹은 ‘신앙을 억제하므로 순종하기를 억제하는 것’이란 뜻입니다.  불신앙과 불순종이란 연결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는 것곧 불신앙은 불순종입니다.  순종치 아니하는”이란 말씀은 “복음을 믿지 않고 또한 반역하기까지 하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박윤선).  이들의 반역적인 행동은 무엇이였습니까?  그것은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는 자들인 성도(신자)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였습니다 (2).  마지막 셋째로은혜의 말씀을 대적하는 자들은 주님의 종들을 핍박하는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3장 5절을 보십시오: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믿지 않는 불신자 유대인들의 편에 선 일부 시민들과 유대인들과 관원들은 바울와 바나바를 공개적으로 능욕하고 돌로 쳐죽이려는 음모를 세웠습니다(박윤선).  이들은 공식으로 합작하고 주님의 종인 바울와 바나바를 핍박하였습니다.  핍박하되 바울과 바나바를 돌로 쳐죽이려고까지 하였습니다.  마치 불신자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돌로 쳐죽였던 것처럼 ….  은혜의 말씀을 대적하는 자들은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이요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임을 명심하십시다.  이들을 세 마디로 말하면 ‘불신하는 자들’, ‘불순종하는 자들’ 그리고 ‘핍박하는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이들은 복음과 예수님만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신자들 또한 대적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그룹은은혜의 말씀을 좇는 자들입니다 

 

은혜의 말씀을 쫓는 자들이란 누구입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복음을 좇는 자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믿는 자의 죄를 거저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시는 복음”을 좇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고 하나님께 돌아온 무리들입니다.  오늘 본문 4절 하반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이들은 두 사도인 바울과 바나바를 좇는 자들이였습니다.  이 은혜의 말씀을 좇는 자들을 한 두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이 은혜의 말씀을 좇는 자들은 믿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4장 1절을 보십시오: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이들은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임(13:48).  그러기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믿음을 선물로 받아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그 말씀을 마음에 환영하여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1341절 말씀처럼 도무지 믿지 못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시기에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인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둘째로이 은혜의 말씀을 좇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 좋은 예를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과 바나바에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어떠한 역경과 핍박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히 선포하였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예수님을 믿는 형제들에게 악심을 품게 한 상황에서도(2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오히려 더욱 담대하게 은혜를 말씀을 증거하며 표적과 기사를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능력있는 사역과 말씀의 담대한 선포를 충분한 기간 동안 행하였습니다(유상섭).  그 이유는 그곳에 머물음이 평안한 까닭이 아니고 핍박과 난관이 있었던 까닭이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믿는 형제들이 곤란에 빠진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더 머물러 있으면서 성도들의 돕고자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말하였습니다(박윤선).  그러한 가운데서 능욕을 당하고 생명의 위험을 느꼈을 때 바울과 바나바는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 와 및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6-7).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좇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자라면서 하나님의 계명(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좇으십시다.  은혜를 사모하는 지혜”에 대해 강준민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떻게 우리에게 찾아올까요 하나님의 은혜는 말씀을 통해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은혜를 담아두셨습니다 말씀의 본체는 예수님이십니다.  말씀이신 예수님 안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습니다 곧 말씀 안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입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은 은혜의 원천이십니다 은혜의 샘물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말씀을 충만히 받아 우리 내면에 간직해야 합니다.  말씀은 보배입니다.  말씀은 미래를 창조하는 씨앗입니다.  말씀은 치유하는 능력입니다.  말씀은 능력입니다.  말씀은 지혜입니다.  말씀은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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