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미치게 하는 남자의 행동 (7)
“왜 남자는 야비한 농담을 즐길까?” [앨런 피즈 • 바바라 피즈, "거짓말을 하는 남자 & 눈물을 흘리는 여자"]
나는 개인적으로 농담을 잘 할줄 모릅니다. 그래서 한동안 대학교 때 후배에게 배운 농담 하나를 계속 써먹었습니다. ‘당신은 짧은 농담(short joke)를 듣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긴 농담(long joke)를 듣고 싶으십니까?’라고 물은 후 상대방이 ‘짧은 농담’이라고 말하면 나는 “쪽”(jok)라고 대답하고 만일 상대방이 ‘긴 농담’이라고 말하면 나는 “조~~크”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제가 봐도 참 유치한 농담입니다. 제가 농담을 할 줄 모르는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제 주위엔(특히 여기 미국에서 태어난 2세들) 농담을 잘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잘 듣지 못하지만 전에 이들이 농담할 때 보면 다들 낄낄거리며 웃곤했습니다. 특히 그 중에 한 사람은 농담을 할 때 인종적인 농담(racial joke)을 한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그는 좀 심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농담을 했던 것 같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특히 여기 미국 사람들은(주로 남자들) 농담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유머(humor)를 잘해야지 주위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좋은가 봅니다. 또한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유머로 쓰~윽 넘어가든지 또는 분위기를 좀 밝게 하는 모습도 봅니다. 저는 이러한 유머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잘은 모르지만 직장에서 남자들이 여성 동료 직원들에게 성적 농담을 하므로 그녀들을 힘들게 하며 모욕감까지 느끼게 하는 농담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농담들 중 앨런 피즈 • 바바라 피즈에 의하면 “남성 성기와 관련된 농담”이 있다고 합니다(여성의 유머는 주로 사람, 인간관계, 남성을 대상으로 함) (p.169). 이것을 “성희롱(sexual harassment)”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즉, “상대의 뜻에 반한 성적언동을 행하여 직장 내에서 일정한 불이익을 주거나, 그것을 되풀이함으로써 취업환경 등을 현저하게 악화시키는 행위”를 말합니다(야후 인터넷 사전). 왜 남자들은 이러한 행위를 서슴없이 하는 것일까요? 아니 왜 그들은 이러한 성적 농담을 즐기는 것일까요?
앨런 피즈 • 바바라 피즈에 의하면 농담은 남자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사소통의 수단입니다. 특히 남자들은 정서적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여자와 달리(여자는 재앙이나 비극을 당하면 남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함)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면서(자신의 나약함의 표시로 간주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자) 농담을 함으로써 자시의 비극적인 사건에 대하여 간접적으로 발언을 합니다(피즈, p.170). 이러한 남자들의 의사소통 방법을 생각해 볼 때 여자들은 왜 남자들이 자꾸만 농담을 하려고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될 것입니다. 물론 여자들 입장에서는 자기들처럼 남자들도 힘들 때 마음의 생각들과 감정들을 나누기를 원할 것입니다. 특히 부부 관계에서는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아내라면 그녀의 남편이 눈물을 흘려야 할 상황에서도 농담으로 웃으면서 넘어가려고 할 때 그의 마음을 읽고 함께 웃어줄 수 것입니다(물론 미련한 아내는 그런 상황에서 남편을 속으로든 겉으로든 이해 못하겠다고 말하면서 없신 여길 수 있을 것임). 그리고 지혜로운 아내는 남편과 함께 웃음으로 그의 마음을 위로해 줄 것입니다.
앨런 피즈 • 바바라 피즈에 의하면 “웃음과 눈물은 두뇌를 자극하여 혈액 속에 엔돌핀을 분비시킨다”고 합니다. 이 엔돌핀은 “몰핀과 헤로인 비슷한 성분을 가진 화학물질”로서 “신체를 안정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으며 동시에 몸의 면역체계를 강화시킨다”고 합니다(피즈, p.170). 그래서 우리가 한바탕 크게 웃고 나면 종종 눈물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눈물 나올 정도로 크게 웃는 것은 우리 건강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 이유는 “눈물은 엔세팔린의 분비를 동반하는데, 이것은 신체의 아픔을 완화시키는 진통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피즈, p.171).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셋째 삼촌이신 고 김창혁 목사님 살아계실 때 어느 날 찾아갔더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저를 보면서 “엔돌핀”(왔네)라고 말하신 기억이 납니다. 저는 김 목사님이 대장암이 다 퍼져서 병원에 입원하신 후 그 다음 날 찾아가 뵈었을 때도 목사님과 웃으면서 농담을 많이 하였습니다. 물론 대화 속에서는 진지한 대화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목사님은 입관식, 장례식, 하관식 예배에 대해서 저에게 다 말해 주셨습니다. 특히 그 분은 저에게 입관 예배 인도를 부탁하시면서 설교 본문과 더불어 입관식에 참여하시는 분들을 위로해 주시길 부탁하셨습니다. 이렇게 목사님하고 유머스럽게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은 목사님은 유머를 하므로 상대방에게 웃음을 선사하려고 노력하셨던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목사님은 신년 초하루 온 가족, 친척들이 모일 때마다 농담할 것을 준비해서 오셨다고 합니다. 그 분은 우리 가족 식구들의 “엔돌핀”이셨습니다. 부족하나마 저는 농담할 줄을 잘 모르지만 적어도 목사님과 마지막 떠나시는 그 때까지도 가볍게 농담하며 웃으면서 시간을 함께 했었습니다. 이렇게 엔돌핀을 분비시키는 농담은 유익합니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며 모욕감을 주는 농담들은 피해야 하며 또한 중단해야 합니다.
성경 골로새서4장6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우리의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자신들이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은혜 가운데 있지 못하면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들도 은혜스럽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대화하는 상대방에게 은혜를 끼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는 우리의 말을 통해서 상대방에게 은혜를 끼치도록 힘써야 합니다. 특히 부부 관계에 있어서 서로에게 은혜를 끼치고자 애쓰는 가운데 농담도 유익한 농담을 하므로 말미암아 서로에게 은혜를 끼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엔돌핀을 분비케하는 농담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아내보다 남편이 그러한 농담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남편들은 농담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유머 센스를 길러야 합니다. 물론 저 같이 농담을 잘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겐 이것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아내를 사랑한다면 충분히 노력할 수 있습니다.
엔돌핀을 돌게 하는 유머를 배우고 싶습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진정으로 (크게) 웃게하므로 말미암아 엔돌핀을 분비케 하므로 고통중에서도 아픔을 완화시키는 유머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할 줄 아는 유머의 감각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함께 아내와 크게 웃는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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