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을 완성하라!
[사도행전 14장 19-28절 말씀 묵상]
“사명”이란 무슨 말입니까? 사명(使命)이란 말은 (1) 맡겨진 임무 (2) 사신(使臣)이 받은 명령이란 뜻입니다. 그러면 과연 저와 여러분둘의 공통된 사명은 무엇입니까? 과역 우리는 사명을 자각하고 있습니까? 미국 소매상 협회의 조사 통계가 있습니다. 판매원의 48%가 한 번 전화하고 포기하고, 25%는 두 번 전화해보고 포기하고, 15%는 세 번 전화해보고 포기한다고 합니다. 즉 88%의 세일즈맨이 한 통 내지 세 통의 전화를 해보고 판매를 포기한다는 결론입니다. 그런데 나머지 12%는 끈질기게 전화를 해서 결국 판매를 하게 되는데 놀라운 것은 그 12%가 전체 판매량의 80%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의 전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소수의 몇 사람이 전체 교회의 전도 실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복음 전도의 사명을 자각하고 반드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결단을 가져야 전도 할 수 있습니다(인터넷).
오늘 본문 사도행전 14장 19-2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해 나아가는 사도 바울과 바나바의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완수한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한 4가지로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을 듣고 우리 또한 주님의 일을 완수하는데 전심전력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일이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4장 21절을 보십시오: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앉은뱅이되어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으킨 바울은(8-10절)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원정온 유대인들은 결국은 루스드라 사람들을 설득하여 바울을 돌로 치는데 개입하지 못하게 한 후 바울을 돌로 쳤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죽은 줄로 알고 유대인들은 바울을 성밖으로 끌어냈습니다(19절). 그러나 바울은 죽은 것이 아니라 돌에 난타를 받은 충격 때문에 일시적으로 졸도 상태에 들어간 것입니다(유상섭). 그 때에 아마도 루스드라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통하여 복음을 받아들인 제자들이 성밖에서 ‘바울의 시체를 장사하려고 바울을 둘러 섰을 때에’(박윤선) 기적적으로 바울이 스스로 일어나 다시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20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21절). 놀라운 사실은 설상 바울이 돌에 맞아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가 치료 받은 일도 없이 그냥 스스로 일어나 여전히 전도 사업에 종사하게 된 것은 이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박윤선).
하나님의 일이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탄의 역사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탄의 역사는 끊임없이 복음을 대적하고 또한 복음 전파자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도 보시다시피 사탄의 종들인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2절)은 이고니온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돌러 쳐죽이려고 계획했는데 두 사람이 이를 알고 피신하는 바람에 실현하지 못해서(5-6절) (유상섭) 결국은 루스드라에까지 원정을 와서 결국은 바울을 돌려 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끊질긴 사탄의 역사입니까? 이러한 와중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감당해야 할 책임은 하나님의 일인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사명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일이란 제자를 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4장 21절을 보십시오: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 바나바와 함께 더베 성으로 갔던 바울은 거기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았다고 사도행전 저자 누가는 오늘 본문 21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아무리 사탄의 역사가 끊질기고 강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역사를 이길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바나바를 계속 사용하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결국은 더베 성에서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게 하셨습니다. 이 사실이 바울과 바나바도 마태복음 28장19-20절에 적혀있는 예수님의 대계명 (Great Commission)인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Go therefore and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는 말씀을 순종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이 예수님의 대계명 우리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이 대계명을 완성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과 바나바처럼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서 예수님의 제자를 삼아야 합니다.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님은 그의 책 “제자입니까?”란 책에서 교회 회원과 제자의 다른 점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인터넷). 오늘날 교회의 회원자격은 거의 모든 지역 교회는 3가지 요건을 내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1) 집회에 참석해야 합니다. (2) 헌금을 내야 합니다. (3) 인격적으로 성숙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제자란 무엇입니까? 제자는 회원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제자란 그의 스승의 삶을 살도록 요구받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점차로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삶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도(discipleship)는 지식의 전달이나 홍보가 아닙니다. 이것은 생명의 교류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제자도란 스승이 알고 있는 것을 알아가는 것 이상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일이란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4장 22절 하반절부터 23절을 보십시오: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바울과 바나바는 더베에서의 성공적인 사역을 마친 후 그 곳을 떠나서 사도행전13-14장에 기록된 선교지 방문의 역순으로 루스드라, 이고니온, 그리고 안디옥 순으로 다시 재방문하면서 제자들의 마음(신앙)을 굳게 하여 주었습니다. 이 일이 그리 쉽지 많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복음을 대적하고 복음 전파자를 대적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바울과 바나바가 재방문하는 선교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면으로 생각해보면 지금 마음을 굳게 함을 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통하여 복음을 듣고 제자가 된 자들보다 바울과 바나바 자신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핍박과 죽음의 위협까지 받는 바나바와 바울, 더 나아가서 바울은 죽을 뻔하기까지 하면서도 이들의 복음 사역과 제자 삼는 사역, 그리고 목회는 중단하지 않게 하시는 것을 보면 바울과 바나바는 고통과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친히 굳게 하시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그러기에 바울과 바나바는 그 위험한 선교지를 다시 방문하면서 오히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지를 다시 방문하면서 제자들에게 권고한 말씀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1) 첫째로, 바울과 바나바는 제자들이 믿음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은 권고했습니다. 믿음은 한번 시작되어 과정에서 중단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되어야 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2) 둘째로,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주님을 믿는 제자들이 많은 환난을 반드시 받아야 할 것이라고 교훈했습니다. 제자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은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이 교훈은 가슴에 현실적으로 와 닿았을 것입니다(유상섭).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바울과 바나바의 이 두 권고의 말씀을 겸손히 받아야 합니다. 결코 믿음 생활 잘 하다가 과정에서 중단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믿음 생활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시작도 믿음으로, 끝나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믿음을 저버려서는 아니됩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로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필수과목인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결코 쉽게 생각해서는 아니됩니다. 고난의 통로를 피하면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아니될 것임. 결코 미꾸라지 신앙인이 되서는 아니됩니다. 환난과 고난은 당연히 예수님을 쫓는 제자로서의 필수과목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마지막 넷째로, 하나님의 일이란 교회에 지도자들을 세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4장 23절을 보십시오: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 바울과 바나바는 선교지를 재방문하면서 교회를 견고히 세우고자 교회를 다스리며 가르치게 하려고 장로들을 선택하여 각 교회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기도와 금식으로 이 장로들을 주님께 의탁하였습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이렇게 선교지를 재방문하면서 각 교회에 말씀을 가르치는 장로(지금 말로 하면 ‘목사’)와 다스리는 장로 (지금 말로 하면 ‘장로’)를 세운 것은 물론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사용하셔서 교회를 세우게는 하셨지만 각 지역에 있는 교회들을 두 사도가 다 목회하면서 돌볼 수가 없었기에 두 지도자가 다른 지도자를 선택하여 세움으로 말미암아 각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2장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교회가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일중에 하나는 충성된 일꾼을 세우는 것입니다. 신실하고 믿음이 성장하는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 교회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일입니다. 특히 추수할 곡식은 많지만 일꾼이 부족한 이 때에 교회가 시급하게 이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결국 바나바와 바울은 처음 파송받았던 안디옥으로 다시 돌아와서 교회를 소집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모든 일들을 보고했습니다(27절).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이 감당한 복음 전파 사역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먼저 고백하였습니다(26절). 또한 그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인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파하여 제자를 삼고 또한 각 교회에 지도자들인 장로들을 세워서 교회를 견고케 한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완성하고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감당했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우리는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7장10절을 보십시오: “이와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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