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마십시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8장1절, 8절).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제목들 중 오랫동안 응답 받지 못한 기도 제목은 무엇입니까? 지금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그 응답받지 못한 그 기도제목들은 무엇입니까? 저는 제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지면서 제 나름대로 하나님께 지금도 기도하고 있는 기도 제목들을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제일 근래의 기도 제목은 약 6년전부터 약속의 말씀인 마태복음 16장18절인 “… 내가 … 내 교회를 세우리니…”을 붙잡고 저희 승리장로교회를 위한 기도 제목입니다. 지금도 계속 주님의 몸된 교회인 승리장로교회를 주님께서 세워 주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오래 된 기도 제목은 한 13-14년 전 제가 결혼하기 전부터 결혼을 준비해 오면서 기도를 드렸던 기도 제목입니다. 제 아내가 누가 될지도 모르면서 하나님께 이두 가지 기도 제목을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으로 상대방 배우자를 사랑하게 하옵시고 그 상대방 자매도 저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하옵소서’와 ’그 자매로 하여금 제 안에 예수님을 보게 하옵시고 저 또한 그 자매 안에 예수님을 보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지금 아내를 저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는 가정을 놓고 기도할 때 동일한 기도 제목을 가지고 저희 부부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이제는 좀 더 나아가 자녀들도 생각하며 기도할 때 ‘저희 부부가 사랑하는 세 자녀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하옵시고 그들이 저희 부부의 삶 속에서 예수님을 보게 하옵소서’란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그 다음 제일 오래된 기도 제목은 제 기억으로는 1987년 5월 교회 대학부 수련회 때 요한복음 6장1-15절로 부르심을 받고 시작한 기도 제목입니다. 그 기도 제목은 제 자신을 통하여 주님의 오병이어의 역사가 이뤄주시길 원하는 기도와 사랑하는 저의 친구들의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입니다. 이 기도 제목을 놓고 저는 벌써 22년을 넘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하고 있는 가운데 너무나 많은 때에는 습관적으로 기도하고 있으면서도 저는 가끔 하나님의 기도 응답이 더딤으로 인하여 시편 기자처럼 ‘어느 때까지 리이까?’(How long?)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기도는 하고 있지만 습관적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제 자신을 보기에도 왠지 포기한 사람처럼 손을 내려놓고 기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누가복음 18장 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고 저에게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과연 제가 낙망치 않고 항상 기도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성경 누가복음 18장1-8절 말씀으로 더욱더 교훈을 받길 원합니다.
제 자신이 낙망치 않고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선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교훈을 오늘 본문 누가복음 18장8절 하반절 말씀을 통하여 받습니다: “…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However, when the Son of Man comes, will he find faith on the earth?"). 저는 예수님께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시면서 왜 예수님께서 이 8절 하반절 말씀을 하셨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넘어가곤 했습니다. 저는 그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2절) 불의한 재판관(6절)과 그 재판관이 귀찮도록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3절)라고 했던 한 과부와의 대화에 초점을 맞췄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더 초첨을 맞췄던 점은 예수님께서 하신 7절과 8절 상반절 말씀이였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 불의한 재판관이 귀찮하서라도 자기를 괴롭게 하는 한 과부의 요청을 들어주었다면 하물며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을 저는 주로 갖고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저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이다라는 사실을 믿고 기도해 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 수록 기도하면서 “어느 때까지리이까’라는 기도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는 드리는데 기도 응답이 없어 보인다는 생각과 느낌이 제 자신을 조금씩 조금씩 지배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서도 믿음으로 기도하기보다 자꾸만 의심이 들면서 그저 습관적으로 기도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어제 저녁 누가복음 18장1-8절을 묵상하면서 저의 관심은 1절부터 8절 상반절 말씀이 아니라 8절 하반절 말씀에 초첨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왜 예수님께서는 이 8절 하반절 말씀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까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의문 가운데 오늘 새벽기도회 전 주석들을 좀 뒤져보았지만 썩 그리 마음에 설득력이 있는 해석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새벽기도회 전 본당에 들어가 무릎을 끓고 기도하는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저에게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시길 원하고 계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되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믿음으로 기도해야 하며 또한 하나님의 행하심을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이란 오늘 본문 문맥 말씀인 누가복음 18장 1-8절 중심으로 한 두 가지를 가리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과 사랑의 하나님. 예수님께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6절에 와서는 “불의한 재판관”이라고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the unrighteous judge(NASB)](2절)을 가리켜 말씀하신 후 7절에 와서는 “하물며 하나님께서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대조를 통하여 저는 ‘하나님은 의로우시다’(God is righteous)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 배움은 제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한 재판관은 불의한 재판관으로서 사람을 무시하였지만[“I don’t … cared about men”(NIV), “did not respect men”(NASB)]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가 “택하신 자들”[“his chosen ones(NIV), “His elect”(NASB)](7절) 사랑하시기에 이사야 43장4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한 백성들인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해야 함을 저는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하나님의 사랑(인자하심)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 낙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교훈을 오늘 누가복음 18장1-8절 말씀을 통하여 받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믿음으로 기도해야 함과 더불어 저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믿음으로 기도해야 함을 또한 교훈 받았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행하심이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의로우시고 인자하신 하나님께서는 저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18장8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불의한 재판관은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3절)라고 간청하는 한 과부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욥이 생각났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원수가 바로 사단이고 그 사단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허락 아래서 욥을 공격한 것처럼 지금도 사단은 우리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공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제가 살고 있는 미국이나 고국인 한국이나 종교 자유 가운데 이러한 사단의 역사를 피부로 강하게 느끼지 못할지라도 공산국가나 모스렘 국가에 있는 살아가고 있는 우리 형제, 자매들은 얼마나 이 사단의 공격을 피부로 강하게 느낄까 상상해 봅니다. 많은 억울한 일들을 욥처럼까지는 아닐찌라도 당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의 마음에 억울함을 누구에게 호소할 수 있겠습니까? 의로우시고 인자하심 하나님께 기도로 밤낮 호소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기도를 들으시시 속히 택한 백성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8절) 또한 풀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행하심을 믿음으로 우리의 원한을 하나님께 호소해야 합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은 이렇게 믿음으로 신실하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하나님되심과 하나님의 행하심을 믿음으로 낙망하지 말고 신실하게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이렇게 믿음으로 신실하게 기도하는 기도자들이 몇 명이나 우리 교회에 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성령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누가복음 2장36-38절에 나오는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여선지자”(36절)를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그녀는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36절) 과부가 되어 팔십 사년 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심하며 기도함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37절). 마리아와 요셉이 할례 할 팔일이 되어(21절)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22절) 성전에 들어갔을 때(27절) 의롭고 경건하며(25절)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전에 죽지 아니하히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은(26절) 시므온이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갔을 때(27절) 마리아와 요셉도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데리고 들어온 것입니다(27절). 그 때 시므온이 아기 예수님을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28절). 그 때 성전 안에 있었던 여선지자 안나가 아기 예수님을 보고 그의 부모님과 시므온에게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아기 예수님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38절). 상상히 안됩니다. 과부로 84년 동안, 그것도 성전에 있으면서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는 안나의 모습이 여러분들은 상상이 되십니까? 과연 예수님의 재림 때에 여선지자 안나처럼 성전에서 믿음으로 신실하게 기도하는 기도자들이 우리들 가운데 몇명이나 될까요?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구속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2:38)로서 성전에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과 하나님의 행하심을 믿음으로 신실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1.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
이 세상 근심 걱정에 얽매인 나를 부르사
내 진정 소원 주 앞에 낱낱이 바로 아뢰어
큰 불행 당해 슬플 때 나 위로 받게 하시네
2. 내 기도하는 그 시간 내게는 가장 귀하다
저 광야같은 세상을 끝없이 방황하다가
위태한 길을 떠나서 주께로 내가 이끌려
그 보좌 앞에 나아가 큰 은혜 받게 하시네
3. 내 기도하는 그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
이때껏 지은 큰 죄로 내 마음 섧고 아파도
참 마음으로 뉘우쳐 다 숨김없이 아뢰면
주 나를 위해 복빌어 새 은혜 부어 주시네
4.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
주 세상에서 일찌기 저 요란한 곳 피하여
빈 들에서나 산에서 온 밤을 새워 지내사
주 예수 친히 기도로 큰 본을 보여 주셨네.
아멘.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리는 자,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09년 10월 31일, “마라나타” – 아멘, 주 예수여 오서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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