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한테는 꾹 참고 며느리한테 하소연하는 시어머니 (6)
- 755
- mrs****
- 2018-07-13
- 조회 2772
- 추천 1
멋진 시어머니를 만나면 누구나 착한 며느리가 되고,
착한 며느리를 들이면 누구나 좋은 시어머니가 될까요?
그러나 우리는 너나없이 이기적인 존재들입니다.
상대가 받아줄수록 나의 기대치는 커집니다.
그러니 곁의 사람이 좋은 사람일수록 스스로를 돌아봐야겠습니다.
상대방의 무던함이 나의 욕심과 기대를 부채질하고 있지는 않은지...
너니까, 너니까 하는 말이야!
시험보고 집에 와있을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싶은 참인데, 휴대폰이 알아서 지잉하고 울립니다.
어이쿠 놀라며 들여다보곤, 한번 더 어이쿠 하게 되네요.
전화를 건 사람은 딸이 아니라 어머님.
며칠 전화를 못 드렸더니, 답답해서 거셨나 봅니다.
죄송한 마음 절반에, 빚 독촉이라도 받는 듯한 기분 절반이랄까요.
애들 기말고사를 치는 주였기에 경황이 없었던 것인데, 이해한다고 하시면서도 아마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시겠죠.
저는 부러 목소리를 한 톤 높여 전화를 받았습니다.
네, 어머니~
그러나 막상 전화를 받고보니 어머님의 용건은 제 예상과 달랐습니다.
한숨 섞인 목소리로 “큰애냐?” 하실 때부터 벌써 심상치 않더군요.
“어머니, 어디 편찮으세요?” 하고 여쭈니, 어머니는 뜻밖의 대답을 하십니다.
“얘, 나, 요 며칠 기분 나빠 죽을 뻔 했다.”
“아니, 무슨 일로요, 어머니?”
“* * 애비 말이다. 어쩌면 걔는 그러니?”
아, 오늘도 역시 문제는 애비!
바로 어머님의 아들이자 제 남편인 그 남자가 또 무슨 말실수를 하여 어머님을 노엽게 했나 봅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어머니는 그 화풀이겸 하소연을 며느리인 저한테 하시려는 참이고요.
“지난 토요일에 애비가 전화를 걸더니, 나더러 뭐랬는지 너도 들었지?
엄마. 우리 오늘 외식할 건데, 오고 싶으면 오시든지.
아니, 세상에 그게 늙은 부모한테 할 말이냐?
그래도 내가 화를 꾹꾹 참고 ‘난 됐으니, 너희끼리 먹어라’ 했지.
그러니까 걔가 하는 말이, 엄마 피곤해?
그래서 내가, ‘그려.’ 했지.
그랬더니 전화 끊으며 이러더라.
‘이따가라도 맘 바뀌면 전화해.’
나이가 이제 곧 오십인 애가 그렇게밖에 말을 못하니?
어디 네가 한 번 말좀 해봐라.”
아들의 무성의한 말투까지 고대로 흉내내시며 어머님은 열을 내셨습니다.
그 말씀 듣고 있자니, 저도 기억이 나더군요.
토요일 오전, 제가 둘째 아이 문제지를 같이 들여다보고 있는데, 남편이 혼자 방에 있다 나오며 말했습니다.
“엄마한테 같이 저녁 먹자고 했더니, 피곤해서 싫으시대.”
그 말 듣고 저는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시험이 이틀 앞이라 집에서 간단하게 먹어야 할 판에 상의도 없이 어머님께 그런 전화를 드렸다니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은 나가기가 좀 그런데.” 했죠.
그러자 남편이 한다는 소리. “안 오신다잖아. 나도 어차피 싫다고 할 거 알고 한 전화야.”
순간 말문이 턱 막히며, 저건 좀 아니다 싶더군요.
차라리 이러저러해서 오늘은 못 모신다 말씀을 드리고, 이 다음에라도 모실 때는 진심으로 모셔야 맞지,
마다하실 줄 알고 그냥 해본 말이라니요.
그러니 말이 정 있게 나갈 턱이 있나요?
그런데, 이제보니 그 정도가 아니었네요.
어머님 말씀대로라면, 남편은 정말 한국말을 가나다부터 다시 배워야 할 사람이네요.
“그이가 마음은 안 그런데, 말을 그렇게 해요, 어머니.
친엄마라 편해서 그러는 거니, 어머님이 너그러이 용서해주세요.”
“그때 너도 옆에서 들었을 거 아니야. 나는 네가 애비한테 알아듣게 일러 줄 알았다.
엄마한테 무슨 말버릇이 그러냐고.”
답답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마누라가 시켰거나 적어도 방조했을 거라 믿는 우리 어머님.
그게 아니면, 며느리가 미리 말리거나 중재를 해 줬어야 한다고 요구하시니 말입니다.
“저는 그 때 옆에 없었어요. 그리고 제가 말한다고 듣나요? 저보다 네 살이나 많은데요.”
“나이가 뭐가 중요해. 철들기로 말하면 네 아들 뻘인걸. 너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다 알아듣잖니.”
저는 전화기를 틀어막고 한숨을 휴 내쉬었습니다.
어머님은 계속 하소연 중이신데 저는 머릿속으로 저만의 말대꾸 원고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님! 저 그렇게 철들고 착한 애 아니에요. 며느리니까 꾹꾹 참는 거예요.
아들은 아들이니까 왁왁 대드는 거고요. 저도 친정 엄마하테는 막 대들어요.
그리고 저는 어머님 리모컨이 아니에요.
어머님 말씀 듣고 제가 집에 가서 전하면 그이는 또 펄쩍 뛰며 화를 내요.
그러다 둘이 싸워요. 그렇게 싸우고도 다음날이면 아범이 어머님께 전화 드려 기분 풀어드리는 거 저 알아요.
그걸 바라시고 저한테 자꾸 이르시는 거죠?
그런데 저, 두 모자분 사이에서 너무 힘들어요.
어머님 아들은 어머님이 직접 야단치시면 안 될까요?
거기까지 생각하다 제가 그만 흥분한 것 같습니다. 머릿속 생각이 입으로 새나오고 말았네요.
“어머님, 그럼 그 날 바로 야단 좀 호되게 치시지 그러셨어요.”
“에휴... 야단치면 순순히 듣니? 걔는 네 말이나 듣지 어미 말은 안 듣는다.
괜히 말 꺼내면 모자간에 큰소리 나. 그러면 저도 스트레스 받을 거고, 일이 손에 잡히겠어?”
“그런데 어머니, 저도 이런 말씀 들으면 스트레스 받아요. 그리고 저도 일하잖아요.”
제가 뱉은 말은 제 귀에도 참 당돌하게 들렸습니다.
내가 미쳤나, 더위를 먹었나. 시어머니한테 막 대드네 싶더군요.
어머님도 당황하셨는지,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다.
그 어색한 침묵이 저를 더 허둥대게 해, 기어이 그 다음 말까지 내놓게 만들더군요.
“저 오늘 아범한테 이 얘기 안 전할래요.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냐고 또 펄쩍 뛸 텐데, 부부싸움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어머님이 그렇게 아끼시는 아들인데 저도 스트레스 주면 안 되죠.”
더욱 무거워진 침묵이 한참 흘렀습니다. 그러다 이윽고 어머님이 한 마디 하시더군요.
“너니까... 너니까.... 내가 믿고 하는 말인데. 미안타. 바쁜데, 그만 들어가라.”
그렇게 전화통화는 어색하게 끝났고, 말없이 불편한 시간이 며칠이나 흘러갔습니다.
곱**을수록,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하더군요.
하지만 어머님의 마지막 그 말씀이 자꾸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너니까!’
그 말을 저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너는 내 아들 차지하고 사는 영원한 빚쟁이 며느리니까 라는 말로 들어야 할까요?
아니면 너는 아들보다 나를 잘 이해해주는 같은 여자이니까로 들어야 할까요?
웬만하면 후자로 듣고, 외로운 어머님의 든든한 말상대가 돼드리고 싶은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네요.
그래도 오늘쯤엔 전화 한 통 드려서 기분을 풀어드려야 할 것 같은데
제 목소리가 어떻게 나올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죄송한 마음 반, 빚잔치 해버리고 홀가분한 마음 반이니..."
[출저: 조선일보,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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