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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pt God’s Invitation to Rest

  https://www.thegospelcoalition.org/article/gods-invitation-rest/ Accept God’s Invitation to Rest August 24, 2025   |    Scott W. Kay © iStock.com/nullplus Share Post Email Advertise on TGC “It feels so nice to finally stop and catch my breath.” Can you remember the last time you had a moment like that? For some of us, it’s been a while. In our hard-working, highly productive culture, we can sometimes feel like exhausted swimmers swept downstream in a fast-moving river, fighting to keep our heads above water, gasping for air. We get up early and stay up late. We never waste a minute. Our schedule is full, running here, running there, running late, running to catch up, running on empty, until we collapse in utter exhaustion. Underneath the satisfaction of being hard-working, hard-playing people is a weariness that’s desperate for the pace to relent so we can rest and recharge. Deep down, we’re  dying  to slow down and take a break. We keep telling ours...

예배-증인들

 예배-증인들


 

[로마서 12장 1-2절 말씀 묵상]


 

여러분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위해서 여러분들은 살아가고 계십니까?  새들백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신 릭 워렌 목사님이 쓰신 목적이 이끄는 삶”(The Purpose Driven Life)란 책을 보면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 때 5가지 유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워렌): 첫째 유익은목적을 아는 것은 삶에 의미를 부여해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면 삶에는 어떤 목적도 있을 수 없고목적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습니다.  의미가 없다면 중요함이나 소망도 없습니다.   20대 청년이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나는 무엇이 되려고 발버둥치고 있지만 진정으로 무엇이 되려고 하는 줄 모르기 때문에 실패자임이 틀림없다.  오직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대충 살아가는 것뿐이다.  언젠가 내 삶의 목적을 발견할 때에야 비로서 나는 살기 시작한다고 느낄 것이다.”  과연 저와 여러분들은 삶의 의미를 느끼시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둘째 유익은목적을 알면 삶은 단순해 집니다.  왠지 우리 사람은 단순한 것도 좀 복잡하게 만들 때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우리는 단순한 것도 복잡하게 만들면서 살아갈 때가 있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삶의 목적인 혼동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에 목적인 분명하면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무엇을 해야 하지 말아야 할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목적은 우리의 삶에 기준을 제공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목적이 분명하면 일을 하기 전에 과연 이 일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될까 아니면 안될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목적 달성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도움이 안되는 일은 하지 않으로 삶을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삶에 목적인 분명하지 않으면 우리는 왜 그런 결정을 내렸으며어떻게 시간을 투자하고 자원을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근거를 잃게 됩니다.  그저 상황압력 그리고 그 순간 우리의 기분에 따라 결정을 내릴 뿐입니다.  워렌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자신의 목적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은 것을 하려하고또 이 때문에 스트레스피로 그리고 관계에 있어서 갈등을 겪게 된다.”  셋째 유익은목적을 알면 초점을 맞춘 삶을 살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우리가 삶의 목적을 알면 우리의 노력과 에너지를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왠지 우리는 복잡한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우리의 삶의 목적에 대한 혼동 속에서 우리의 노력과 에너지를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분산 시키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 결과 삶을 뒤돌아 볼 때 이것 저것 다 해본 것 같은데 이루어 놓은 것은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가리켜 릭 워렌 목사님은 목적 없는 산만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명확한 목적 없이 계속 방향을 전환하고직업관계교회 그리고 그 외의 외부적인 것들을 끊임없이 바꾸는 삶그것이 우리 마음의 혼란스러움을 안정시켜주며 공허감을 채워주길 바라지만 더 혼란스럽기만 하고 더 공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목적에 이끌림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리 유익한 것이라도 가장 중요한 것들을 먼저 행하는 것입니다.  넷째 유익은목적을 알 때 삶의 동기가 유발됩니다.  우리가 삶의 목적이 분명하면 우리는 그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열정으로 불 태우게 됩니다.  그 이유는 목적은 열정을 낳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한 미국 잡지에서 영화 배우이자 감독인 Clint Eastwood에 대한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이젠 그 분의 나이가 팔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아직도 영화를 만들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왜 그는 은퇴를 하지 않고 그렇게 영화를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이는가 하면 그는 아직도 영화 세계에 배울게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좀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팔십된 어르신도 그렇다면 아직 40대 밖에 되지 않는 제가 얼마나 더 배우려는 자세로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목적을 향하역 달려 가야 하는가라는 도전을 받았습니다.  성경을 보아도 모세나 갈렙 같은 사람을 보면 팔십 때에도 하나님께 쓰임 받는 모습을 보면 참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그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열정이 불타오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 다섯째 유익은목적을 앎으로써 영생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들이 죽은 후 사람들은 저와 여러분들의 장례식에 와서 어떻게 평가하실 것 같습니까?  더 중요한 질문은 과연 죽은 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의 삶을 어떻게 평가하실 것 같습니까?’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은 이 세상에서 기억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영생을 준비하기 위해 이 땅에 보내졌습니다.  과연 영생을 준비하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릭 워렌 목사님은 영생을 준비하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던지실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면서 이 땅에서 살아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두 가지 질문은 첫째, “너는 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무엇을 하였느냐?”고 두 번째 질문은 내가 너에게 준 것들로 너는 무엇을 했느냐?”입니다.  과연 여러분들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위해 여러분들은 살아가고 계십니까?

 

우리 승리 장로교회에는 삼대 목표가 있습니다.  그 삼대 목표란 (1) 진정한 예배자를 세우는 것, (2) 신실한 제자를 세우는 것, (3) 영혼을 사랑하는 전도자와 겸손한 봉사자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 삼대 목표의 근거하여 우리 교회는 삼대 목적 진술이 있음.  그 중에 첫 번째 목적 진술은 이렇습니다: “주님을 모시는 교회예배-증인들”.  이 첫번째 목적 진술에 대한 구절은 고린도전서 1425절 말씀입니다: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이 말씀은 제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다닐 때 밑에서 배운 John Frame 교수님이 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라는 책에서 도전을 받고 우리 승리장로교회가 우리에게 제일 원하고 계시는데 예배요 그 예배는 증거의 역활 또는 전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므로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서 종 노릇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요한복음 4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시기에 우리 모두가 예배의 우선순위를 두고 거기에 심혈을 기울여 하나님께 바른 예배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우리 교회는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의 예배를 통하여 우리 가운데 있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조차도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라고 선포하는 역사가 일어나길 간절히 기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승리장로교회 첫 번째 목적 진술을 주님을 모시는 교회예배-증인들이라고 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 이주전 저는 이 고린도전서 14 25절 말씀을 읽다가 다시 곰곰히 이 말씀을 좀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이 말씀의 문맥을 통하여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깨달음이란 예배 가운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나 믿는 자들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책망과 판단을 받으므로(24죄를 깨달아 회개하여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우리 예배 가운데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깨달음에 근거는 고린도전서 14 24절 말씀임: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주님께서 저에게 이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음성은 승리장로교회 목사로서 선지자적 말씀 선포 책임을 신실하게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므로 말미암아 그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죄가 들춰지므로 우리가 죄인임을 깨달아야 그 때서야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여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돌이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 로마서 12 1-2절 말씀 중심으로 예배-증인들이란 제목 아래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담대히 선포하길 원함.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전파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 영적 예배를 드리십시오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 교리(doctrine)를 말씀한 후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부터 그 교리에 대한 적용(application)을 말씀하면서 제일 먼저 하나님께 영적 예배를 드리라고 권면하고 있음.  다시 말하면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젠 구원을 받은 자들로서 참된 믿음의 삶을 사십시오.  그 참된 믿음의 삶이란 제일 먼저 하나님께 영적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들이나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들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므로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삶을 살아드려야 하지 않습니까?  그 신실한 삶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영적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고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배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예배란 존경과 경배입니다.  예배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우리가 영광 돌리려는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최고의 기쁨을 드리기 위해 예배하는 것이며그를 기쁘게 해드리는 일 속에서 우리의 최고의 기쁨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워렌).  그러면 오늘 본문 로마서 12 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영적 예배란 무엇입니까?  영적 예배란 구약에서 유대인들이 드렸던 외부적인 의식적 예배가 아니라 영적 예배즉 성령님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것을 가리킵니다(4:24)(박윤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렸던 구약의 외부적인 의식적 예배는 이사야 1 11절부터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보이려고(12무수한 제물을 희생 제물로 받치는 것 (11)으로써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외부적인 의식적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며(11아무 유익이 없으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1).  더 나아가서 이러한 외부적인 의식적 예배는 하나님께서는 견디실 수 없을 정도로(14가증히 여기시며(13싫어하신다(14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치는 물질들이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에게 무거운 짐이여 곤비케 하는 것입니다(14).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 예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요한복음 4 24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영적 예배란 성령(“신령”)과 진리(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진정한 영적 예배자는 진리의 성령님과 복음의 진리(예수님 안에 있는 구원의 좋은 소식)에 이끌림을 받아 예배를 드립니다.  결국 영적 예배란 하나님 중심의 예배요 하나님의 중심의 예배란 항상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성령님에 의해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한 마디로영적 예배란 삼위일체적 예배입니다(Frame).  우리 구원을 위하여 성부 하나님성자 예수님성령 하나님께서 행하신 독특한 사역을 인지하여 하나님께 감사찬양경배헌신하는 예배가 영적 예배인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 예배를 드리는 영적 예배자들이 추구하는 것 세 가지가 오늘 본문 로마서 12 1-2절에 기록되 있음 우리 또한 이 세 가지 요소를 추구하므로 참된 영적 예배자로서 더욱더 세움을 받을 수 있길 기원합니다:

 

첫째로영적 예배자는 자신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립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는 거룩한 산 제사입니다 다시 말하면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옛날 구약 시대 때처럼 제사장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 동물을 잡아 제단이 올려 놓고 드리는 것을 말씀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돌아가셨기에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나 저와 여러분들에게 권면하고 있는 영적 예배자로서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은 거룩한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거룩한 삶을 살라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로마서 612-13절에서 이미 바울이 우리에게도 말씀해 주었듯이 몸의 사욕을 순종치 않으며 또한 우리의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가리킵니다.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참된 영적 예배자는 하나님을 향하여 바른 삶을 살아드립니다.  영적 예배자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갑니다.  참된 영적 예배자는 복음에 합당한 삶특히 거룩한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 증인들의 삶입니다.

 

둘째로영적 예배자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추구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2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  참된 영적 예배자는 이 세대를 본받지 않습니다.  이 세대가 어떠한 세대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2 39절에서 이 세대를 가리켜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대는 악한 세대요 음란한 세대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세상은 죄악과 음란이 가득찬 세상임.  이 죄악과 음란의 물결이 풍랑처럼 우리 삶에 불어 닥치고 있는 이 때에 과연 저와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그저 외부적인 변화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근본적이고 내부적 변화를 말함.  이것은 내세의 표준에 맞는 깊이 있는 생활을 말씀합니다(박윤선).  이것이 바로 영적 예배의 삶에 핵심임.  영적 예배의 삶에 핵심은 바로 변화입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들은 변화되어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는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까?  참으로 놀라운 것은 예배를 수백번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고 수없이 말해도 변화되어가지 않는 우리 크리스천들의 삶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입니까?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인 목사님들조차 변화되어가지 않는 성도들의 모습에 한탄하며 포기한 듯 느껴지며 말씀을 듣는 성도님들의 입장에서는 변화되어가지 않는 설교자의 모습에 비판과 불만이 끊여지지 않는 듯 합니다 종교적 예식인 예배는 습관적으로라도 신실하게 잘 감당하는 듯 하지만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변화되어가지 않는 우리 크리스천의 모습은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이것은 우리의 예배의 삶에 문제가 있다는 것임.  성경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고 또한 바른 교리를 아무리 많이 알고 예배를 수 없이 드렸었을지라도 왜 우리는 변화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고 오히려 변질되어가는 것입니? 

 

변화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어느 방향으로 변화는가가 중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악한 방향으로 변화되든지 아니면 선한 방향으로 변화되든지 둘 중에 하나 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악한 방향으로 변화되던지(변질) 아니면 선한 방향 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의아하게 들리실 수 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하나 님의 말씀을 우리는 예배 가운데 설교자인 목사님을 통해서 듣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방망이와 불 또는 성령의 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설교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진정으로 은혜를 받는 설교자 자신이나 성도들은 강팍한 마음이 부서지며 차가운 마음이 녹아지며 마음과 양심에 찔림과 더불어 진정한 회개의 역사와 더불어 세워지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강퍅케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바로는 마음을 강팍하게 하였습니 다이와 같이 설교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데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오히려 말씀을 들으므로 마음이 강팍게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순종은 축복이지만 불순종은 저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저와 여러분은 지금 어느 방향으로 변화를 받고 있는 것입니까?  주일 예배를 통하여 악한 방향으로 변화를 받는 성도들은 세상에 나가서도 "이 세대를 본"받을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교인이요 크리스천이요 예배자라고까지 자칭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크리스천인 것입니다.  그러한 크리스천의 숫자를 늘려 교회를 성장시키려는 욕심과 야망은 사람보기에는 어떨런지 모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증한 일이요 싫어하시는 일일 뿐입니다( 1:13, 14).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변화는 우리가 참된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세움을 받는 것입니.  그리고 참된 예배자의 삶은 예배와 삶이 일치되어 변화를 받는 가운데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비록 숫자가 많치 않을지라도 기드온의 300명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과 죄악과 세상과 싸워 승리하는 영적 예배자들로 세움을 받아가는 공동체예배의 변화를 통하여 전 사역의 영역에 참된 변화를 가져 오는 공동체 저는 그런 승리장로교회 공동체를 꿈꾸며 하나님께 기원하고 있습니 사랑하는 여러분우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변화를 받으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우리의 가정을우리의 직장사업을우리의 이웃과 사회와 나라를세계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바로 예배 증인들의 삶입니다.

 

셋째로영적 예배자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2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가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우리의 몸을 바치고 또한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을 때에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이 생기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영적 예배를 드리는 자들은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을 때에 영적 분별력이 생기게 됩니다.  그 결과 참된 영적 예배자는 영적 분별력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후 영적 예배자는 어떻게 합니까?  그는 분별한 주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박윤선 박사님의 말씀입니다: “진심으로 순종할 마음이 없는 자에게는하나님의 뜻이 알려지지도 않는다( 7:17)"(박윤선).

 

 2주전수요기도회 때 우리는 전도서 3 1-14절 말씀 중심으로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이란 제목아래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목적 또는 그의 뜻을 이루시므로 때를 따라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신다고 배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태어날 때나 죽을 때나징계할 때나 회복할 때나울을 때나 웃을 때잠잠할 때나 말할 때또는 사랑할 때나 미워할 때온전히 자신의 주권적인 뜻을 이루시므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후 우리는 찬송가 431장 내 주여 뜻대로를 하나님께 함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찬송의 해설을 알고 계십니까?  루터가 종교개혁을  몇몇 루터파 개혁교회가 있었으나 날로 쇠퇴해졌고 그나마도 로마 카톨릭의 세력에 의해 멸절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1648 웨스트 페일리아의 로마 카톨릭교와의 평화조약(The peace of  Westpholia덕분에 슈바이드닛츠에  하나의 루터교회가 잔존케 되었고  루터파 교회를 슈몰크(Benjamin Schmolck, 1672-1737) 목사가 담임하게 되었다 36개의 부락이나 되는 광활한 지역에서  한군데 루터교회의 담임 교역자로서 슈몰크 목사 내외는 대단히 어려운 목회 생활을 했다 한번 심방을 나가면  온종일이 걸려 밤중에 오기가 일쑤였고어떤 때는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했다   집에는 어린 아이들 밖에 없었다.  1704 어떤  슈몰크 목사 부부가 심방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집은 불이 나서 온데 간데 없고 폐허가  잿더미 속에서 소사(燒死) 어린 아들 형제가 나란히 누워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충격을 받은 슈몰크 목사 부부는 한순간 정신을 잃었으나 이내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때의 기도 내용이 바로 우리의 찬송가 431장의 가사이다: (1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몸과 영혼을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인도 하시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2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3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이렇게 슈몰크 목사님 부부처럼 진정한 영적 예배자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지길 원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영적 예배자들로 세움을 받아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며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으며 그리고 온 맘과 정성 다해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참된 예배 증인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오직 주님의 뜻이 이뤄지길 간절히 기원하면서,

 


제임스 목사 나눔 (2009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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