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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찬양대 찬양 (2025. 8. 24.)

  https://youtu.be/sQ2wxk6a8MU?si=AZ-4OEU-ZJTVVluc

헛된 세상

 헛된 세상

 


[전도서 1장 1-11절 말씀 묵상]

 


여러분들은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인생을 생각할 때 인생은 덧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인생을 논할 때 덧 없는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덧 없는 인생에서 의 사전적 의미를 아시는지요?  인터넷을 뒤져보니 여기서 이란 의미는 사이” “동안()”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덧없다는 말은 사이가 없다” “동안이 없다로서 상주함이 없다”, “빨리 변한다는 뜻에서 무상하다”(vanity)의 의미로 쓰여졌다고 합니다(인터넷).  이 단어를 인터넷에서 뒤져보다가 저는 일장춘몽이란 단어를 보게되었습니다.  그 의미는 한바탕의 봄꿈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헛된 영화나 덧없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인터넷).  그래서 사람들이 흔히 일생을 일장춘몽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 모세가 시편 90 12절에서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소서’(Teach us to number our days)라고 기도한 것처럼 우리 또한 기도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기도에는 두 가지 기도 내용이 내포되었다고 우리가 이미 묵상하였는데 그 두 가지 의미란 인생의 허무함을 가르치소서”(Teach us the sense of vanity)와 인생을 가치 있게 지내야 할 것을 가르치소서”(Teach us how to live a valuable life)입니다.  여기서 인생의 허무함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세 가지로 묵상했었습니다: (1) 첫째로인생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기에 허무합니다.  시편 90편 3절을 보십시오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2) 둘째로인생은 잠깐이기에 허무합니다.  시편 90편 4-6절을 보십시오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  (3) 셋째로인생은 일평생 수고와 슬픔 뿐이기에 허무합니다.  시편 90편 10절을 보십시오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오늘 본문 전도서 11-11절은 전도서 전체에 대한 서론 부분입니다.  이 서론 부분을 두개로 나눌 수 있는데 1절은 전도서의 저자가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인 솔로몬이 전도서를 기록한 전도자”(the Preacher)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고 2-11절은 세상이 헛되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이 두 번째 부분인 세상이 헛되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부분에서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말씀이 바로 2절 말씀입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Meaningless! Meaningless! says the Teacher.  Utterly meaningless!  Everything is meaningless.”).  이 고백은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가져보고 누려보았던 전도사 솔로몬 왕의 경험 속에서 나온 고백으로서 그의 결론적 고백은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 전도자 솔로몬 왕이 말하는 헛되다라는 말의 히브리어 원어 의미는 바로 입김”(breath)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견고하고 지구성 있는 것과 반대되는덧없는 것을 비유합니다(90:9)(박윤선).  Grace Community Church의 담임 목사님이신 John MacArthur 목사님은 전도서 전체에서 이 헛되다라는 단어는 적어도 한 3가지 의미로 전도자 솔로몬 왕이 사용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의미는해 아래 사람들이 행하는 것이 fleeting”, 즉 덧없는” 것을 의미함.  야고보서414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우리 인생이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기에 인생은 헛되다는 것입니다[”fleeting,” which has in view the vapor-like (cf. James 4:14) or transitory nature of life].  (2) 둘째 의미는해 아래 사람들이 행하는 것이 futile”(무익함혹은 meaningless”(무의미함)을 의미합니다이것은 전 우주의 저주받은 상태에서 사람의 이 지구 상에서의 경험에 끼친 약하게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futile” or “meaningless,” which focuses on the cursed condition of the universe and the debilitating effects it has on man’s earthly experience), (3) 셋째 의미는해 아래 사람들이 행하는 것이 incomprehensible” (이해할 수 없는혹은 enigmatic” (불가사의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심사 숙고한 가운데 내리는 결론입니다 (“incomprehensible” or “enigmatic,” which gives consideration to life’s unanswerable questions)(MacArthur).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헛된 세상이란 제목 아래 왜 저와 여러분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헛된지 한 4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바라기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이 세상의 헛됨을 좀 더 철저히 깨닫게 되길 원합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말미암아 이 헛된 세상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기억된 바 되는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헛된 세상입니까?

    

첫째로이 세상이 헛된 이유는 아무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이 세상이 헛된 이유는 아무 남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1장 3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What does man gain from all his labor at which he toils under the sun?).  이 말씀은 해 아래서 우리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행하는 모든 수고가 아무 유익도 없고 남는 것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시편 90 10절 말씀이 생각남: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팔십 사는 인생그것도 신속히 날아가는 인생그 년수의 자랑이 수고와 슬픔 뿐이라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90편 superscript)는 말씀하고 있는데    그 칠팔심 인생을 뒤돌아 보면서 모든 수고를 통해서 무엇을 남겼는가 생각해 볼 때 과연 여러분들은 뭐라고 말하실 수 있으십니까?  전도자 솔로몬 왕은 전도서 515-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것도 폐단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가 저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하나님을 떠나서 이 세상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는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람을 우리가 어떻게 잡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우리에게 아무 유익이 없는 헛된 수고인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자 솔로몬 왕은 오늘 본문 3절에서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업적은 그의 사후에 남을 것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박윤선).  그러므로 전도자는 이 세상은 헛되고 헛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이 세상이 헛된 이유는 한 평생 사는 인생은 결국 별 수 없이 티끌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1장 5-6절을 보십시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Also, the sun rises and the sun sets; And hastening to its place it rises there again.  Blowing toward the south, Then turning toward the north, The wind continues swirling along; And on its circular courses the wind returns).  이 말씀은 세상 사람들이 의기 양양하여 한평생 활동하지만 별 수 없이 티끌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박윤선).  아무리 젊었을 때 혈기가 왕성하고 든든히 보일 때가 있을찌라도(39:5) 결국 사람은 흙으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24-25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우리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All men are like grass, and all their glory is like the flowers of the field)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결국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the grass withers and the flowers fall).  또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바로 시편 39 6절 말씀입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지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결국 우리 인생은 바람과 같습니다.  마치 바람이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결국 돌아가는 것처럼(6흙으로 온 우리 인생들도 결국 나중에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이 세상은 헛되고 헛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이 세상이 헛된 이유는 인간의 욕심에는 만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1장 8절을 보십시오: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All things are wearisome; Man is not able to tell it.  The eye is  not satisfied with seeing, Nor is the ear filled with hearing).  눈이나 귀가 보고 또한 들어도 족함이 없다는 이 말씀은 마치 바다가 언제가 흘려오는 물로 차지 못함 같이(7사람의 욕심도 만족을 모른다는 의미입니다(박윤선).  우리가 알고 있는 요한일서216절 말씀을 보면 우리 사람들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참으로 끝이 없는 것 같음.  참으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가 봅니다.  그 끝없는 욕심을 만족시키고자 이 헛된 세상에서 이것 저것을 추구해 보지만 결국은 만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전도자 솔로몬 왕은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전도서210절을 보면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고 마음이 원하는 것을 다 누려보았던 솔로몬 왕자신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라고 말하였지만(2:10) 또한 그는 11절에 가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11).  또한 전도서48절을 보면 전도자 솔로몬 왕은 부를 눈에 족하게 여기지” 못한다(yet his eyes were not content with his wealth)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지혜자는 잠언272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제 개인적인 생각은 요즘 과학이 발달하면서 이런 저런 새로운 기계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과연 그러한 새로운 기계들이 우리 사람들의 마음을 만족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볼 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새로운 것들이 세월 지나갈 수록 나올텐데 나오면 나올 수록 계속 살 것인데 사도 사도 우리 마음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생각해 볼 때 전 개인적으로 만족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이유는 전도서 311절에서 찾아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에 우리는 이 세상에 순간적인 것들로 절대 만족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순간적인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은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이 아무 유익이 없는 무익한 일인 것입니다.  참으로 이 세상은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마지막 넷째로이 세상이 헛된 이유는 후세의 사람들이 이 시대 사람을 기억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1장 11절을 보십시오: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There is no remembrance of earlier things; And also of the later things which will occur, There will be for them no remembrance Among those who will come later still).  전도자 솔로몬 왕은 오늘 본문 9-10절에서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이 세상에는 새 것이 없고 이전 것을 거듭하는 것 뿐이기 때문데 사람이 만족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박윤선).  그러한 가운데서 전도자 솔로몬 왕은 오늘 본문 11절에서 후세의 사람들이 이 시대 사람을 기억함이 없기때문에 이 세상은 헛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박윤선).  아무리 지금 현재 사람의 부와 권력과 힘 등이 많다고 할지라도 죽으면 무엇이 남습니까?  죽어서 세월이 흘러가면 다 잊혀지는 것을   오늘 본문 3절 말씀처럼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나간 세대는 기억함이 없기 때문에 이 세상은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사자가 살았을 때에는 산중의 왕이지만 죽은 다음에는 그 뼈를 개까 물고 다닌다고 합니다(박윤선).  죽으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죽은 사자보다 살아있는 개가 더 나은 것입니다.  아무리 살아있을 때 이런 저런 것들을 다 누려보았다 할지라도 죽음은 막을 수 없는 것죽은 후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가면 잊혀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헛되고 헛된 세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과연 이 헛된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첫째로이 헛된 세상에서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업적은 그의 사후에 남을 것이 없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로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하니님깨서 주시는 지혜로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전도서 1010절 하 반절에서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but sill will bring success).  우리는 지혜를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1:5) 하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이 헛된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이 헛된 세상을 우리는 어떻게 지혜롭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참된 성공한 인생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인생의 업적을 남기는 의미있는 인생을 살아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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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로 우리는 시편 기자 다윗이 시편 39 4절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드려야 합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께 우리 인생의 종말과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흙으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인생이 헛된 세상에서 주어진 짧은 칠팔십 인생과연 우리는 어떻게 지혜롭게 살아드려야 하는 것입니까?  전도서 72절 말씀에서 그 답을 찾아보는 것임: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우리는 죽음의 관점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모세가 시편 9012절에서 기도한 것처럼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인생주어진 값진 시간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로우리는 욕심을 버리고 예수님 한분 만으로 만족하며 자족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시편 기자 아삽은 시편 73 25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자 없나이다”(Whom have I in heaven but you?  And earth has nothing I desire besides you).  이 헛된 세상에 살아가면서 우리의 영혼을 만족케 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만이 우리의 영혼을 만족케 해주실 수 있으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영혼은 영원을 사모하기 때문에 영원한 예수님만이 우리의 영혼을 만족케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풍부함과 궁핍함 가운데서즉 어떠한 형편에든지” 우리는 자족하기를 배워야 합니다(4:11).  우리는 예수님 한분으로만 만족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한분으로 만족하면서 그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영원한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마지막 넷째로우리는 하나님께서 기억하신 바가 되는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이 헛된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죽은 후 아무도 우리를 기억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자녀들과 손주들까지는 모르곘지만 지나면 지날 수록 사람들은 저와 여러분들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보배롭고 존귀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느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고넬료처럼 하나님께서 기억하신 바가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행전 104절을 보십시오: “…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기도와 구제의 삶을 살았던 고넬료처럼 우리 또한 이 헛된 세상을 하나님 보시기에 의미있게 고넬료처럼 살아가므로 하나님께서 기억하신 바 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헛된 세상입니다.  아무 유익이 없는 세상다시 티끌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는 이 헛된 세상에서 욕심을 부려보지만 만족함을 누리지 못하기에 이 세상은 헛된 세상입니다.  그리고 후세의 사람들이 이 시대 사람을 기억함이 없기에 이 세상은 헛된 세상입니다.  이러한 헛된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이 헛된 세상에서 유익하게 살아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죽음의 관점으로 주어진 기간 동안 욕심을 부리지 않고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가므로 하나님께 기억된 바 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야 할 것입니다.

 

 

 

헛된 세상에서 지혜롭게 살다가 주님 앞에 설 때에 잘했다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 받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09 10 7,  42세의 생일 그 다음 날 수요 기도회 후 목양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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