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복하는 것과 마음을 자제해야 합니다.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이 흐려짐과 샘이 더러워짐과 같으니라 …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잠언 25장 26, 28절).
우리는 굴복하는 것을 자제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5장 26절을 보면 잠언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이 흐려짐과 샘이 더러워짐과 같으니라”. 여기서 ‘굴복하다’라는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는 ‘실패하다’(fail), ‘넘어지다’(fall) 혹은 ‘비틀거리다’(stagger)이란 뜻입니다. 비틀거리고 넘어지되 그 이유는 불충분한(부족한)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be in an inadequate state)(히브리어 사전).
여러분, 우리가 영적으로
부족한 상태에 있을 때, 특히 믿음이, 이런 저런
신앙의 어려움가 역경을 만날 때 흔들리다가 결국에는 넘어지지 않습니까? 시편 기자는 이러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시편 13편 4절을 보십시오: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현대인의 성경) “내 원수들이 ‘우리가 너를 이겼다’하고 말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들이
내가 넘어진 것을 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 시편 기자는 그의 원수가 이겼다는 것과 자기가 흔들릴
때에 그의 원수가 기뻐할까봐 두려워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 우리는 실패하고 넘어질 위험이 많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한 가운데서 믿음이 흔들려 마지못해 우리는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에게 동의하며 또한 그들의 것을 받아들일 위험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우리의 짐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시55:22).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22절).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하심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굴복해야
하지 말 것과 굴복해야 할 것을 분명히 구분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무엇에 굴복해야
합니까? 로마서 8장 7절을 보십시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이 말씀을 보면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반대로 생각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케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법(말씀)에 굴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에 굴복해야 하지 말아야 합니까? 오늘 본문 잠언 25장 26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우리는 악인 앞에 굴복해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믿지 아니하는 악인들에게 박해를 받아 고난을 당할 때에 우리는 그들에게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악인들에게 굴복하는 것은 “우물을 흐리게 하고 샘을 더럽히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26절하, 현대인의 성경). 상상이 좀
되십니까? 깨끗한 우물에서 물을 길러다 마시는데 그 물에 더러운 물질이 들어가 그 우물이
더럽혀 졌다면 어느 누가 그 우물에서 다시금 물을 길러다 마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 우리 한국 교회 역사에도 일어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일이란 바로 일제 시대
때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신사참배를 한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악인에게 굴복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결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실망을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악인에게 굴복하는 것은 결코 후세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본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악익들에게 굴복해서는 아니됩니다. 우리는 악인들에게
굴복하는 것을 자제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을 자제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5장 28절을 보십시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현대인의 성경) “자제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성벽이 무너진 무방비 상태의 성과 같다”]. 여러분, 무너진 성읍과 성벽이 없는 성읍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데 적군이 공격해
오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무너진 성읍과 성벽이 없는 성읍에 사는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매우 취약한(vulnerable) 상태에서 적군의
공격에 무방비(방어할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전쟁에서 패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바로 자기의 마음을 자제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이와 같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절제력이 없고 통제가 안되는 사람은 문제(trouble)와 유혹(temptation)에 취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분노를 절제할 수 없는 자, 즉 노하기를 속히하는 자는 문제와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성경 잠언 14장 17, 29절을 보십시오: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노하기를 자제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어리석은 일을 행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미가 급한 사람은 자기의 어리석음을 나타낼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 잠언 29장 11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여러분, 우리는 분노를
자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분노를 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 잠언 16장 32절을 보십시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우리는 우리 마음을 다스리는 자들이 되야 합니다. 우리는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 분노를 자제하는 자가 되야 합니다.
마음을 자제하며 하나님의 명령에 굴복하는 삶을 사모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5년 3월 4일, 하나님께 성령의 열매 중 하나인 “절제”를 구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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