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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아들을 내주신 이 (롬8:32)

  https://youtu.be/9tJxsCkB1dc?si=yoecT3l2ALBPh1Wa

우리의 소망 (로마서 8장 23-25절)

우리의 소망

 

 

 

 

[로마서 823-25]

 

 

 

 

여러분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저는 지난 주일에 히브리서 1111-12절 말씀 중심으로 사라의 믿음이란 제목 아래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후 월요일 오후에 저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신 후 나중에 장로님까지 되셔서 섬기시다가 동부로 이주하여 은퇴 후 선교사님으로 헌신하신 서 진구 선교사님을 통해 부인되시는 선교사님께서 임종 예배 후 네 아들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숨을 거두시고 평안이 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카톡 메시지를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11월 달은 10월 말까지 강해 설교하던 골로새서 말씀을 전하기보다  지난 주에는 (사라의)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묵상하여 선포했고, 오늘은 (우리의) “소망에 대해서 말씀을 선포하고, 다음 주일 추수 감사 주일에는 감사에 대한 설교를 하고, 마지막 주일에는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준비하여 선포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믿음, 소망, 감사, 사랑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사모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셨습니다(살후2:16).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우리가 동서남북 갇혀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소망을 품은 자들입니다(스가랴 9:12; 참고 출14, 2).  그리고 우리가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려 영광스럽게 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믿음으로 된 것입니다(벧전1:21, 현대인의 성경).

 

저는 작년 20217월 중순에 전신마비로 소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 있는 어느 분을 생각하면서의학적으로 소망이 없다 할지라도라는 제목 아래 이러한 짧은 글을 적었었습니다: “의학적으로 소망이 없는 가운데서도 주님께 소망을 가지고 "구원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것"임을 믿고(요나 2:9) 그 죽어가는 영원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그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십시다.”  그리고 저는 금년 20224월 말에 원로 목사님께서 수요 예배 때 선포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후 이러한 짧은 글을 적었었습니다: “만일 주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사랑하는 형제가 부르심을 받아 주님 안에서 잠자는 것이라면 주님의 말씀처럼 그의 죽음을 무서워하지 말고 부활의 믿음으로 떠나 보내며 또한 부활의 소망으로 천국에서 재회하여 영원히 함께 살 것을 간절히 기대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원로 목사님께서 작년 202123일 수요 예배 때 본문 로마서 823-25절 말씀 중심으로우리의 소망이란 제목 아래 선포하신 설교 말씀을 다시 한번 묵상하므로 우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다시 상기되길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824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입니다.  로마서 823절 말씀입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여기서 양자란 무엇입니까?  양자의 의미는 죄 아래 매였던 사람을(3:7;8:44;2:3)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확고한 지위와 특권을 주시는 것입니다(1:12;8:17).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34 질문를 보면 양자로 삼으심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고 있고 답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정하신 것인데 이로써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의 수효 중에 들게 하시고 그 모든 특권을 누리게 하시는 것이다(요일3:1,2; 1:12; 8:17)”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게 되는 특권이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8:15; 3:12; 5:2).  (2)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4:6).  (3) 불쌍히 여김을 받으며(103:13), 보호를 받습니다(14:26; 27:1-3).  (4) 모든 필요한 것의 공급(供給)을 받게 됩니다(6:32; 벧전5:7).  (5) 징계를 받으나(12:6), 결코 버림을 당하지 않습니다(3:31; 13:5).  (6) 율법과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안을 누립니다(8:15).  (7) 하나님을 섬길 특권과 그리스도와 성도간의 영적 교제의 특권을 지닙니다(15:5).  (8) 장차 부활의 영광과 영생을 얻음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1:4,5; 6:12) (인터넷).  우리는 “이미”(Already) 양자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815-16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그리고 우리는 장차[“아직도”(Not-yet)] 양자가 될 것입니다.  로마서 823절 말씀입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그러면 오늘 본문 로마서 82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몸의 속량”이란 무엇입니까? “몸의 속량이란 우리가 주님의 재림 때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으로서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18)입니다.  로마서 818절을 보십시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비록 우리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지만 영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났기에(중생했기에) 우리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로마서 810절 하반절에서 11절 말씀입니다: “…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리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릴 때”(고전15:52, 현대인의 성경), 즉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는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어(51)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52).  데살로니가전서 416-17절 말씀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빌립보서 320-21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요한일서 32절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지금 우리는 “우리 몸의 속량”인 미래의 장차 나타날 영광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8:23).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요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24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우리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소망이 이 세상에 너무나 많은데(: 부자가 되는 소망, 건강을 소망, 권력과 명예를 소망 등등) 성경은 이러한 보이는 것은 소망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4).  그러므로 우리는 보이는 것을 소망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을 더 소망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인 진정한 소망입니다(25).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살고 있기”에(고후5:7, 현대인의 성경)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하는 소망자로서 장차 나타날 영광을 더욱더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지금 성령님으로 인해 이 영광을 부분적으로 누리고 있기에 더욱더 사모하고 추구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처럼 우리는 믿음으로 “하늘에 있는 것”인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해야 합니다(11:16).  그러며 우리는 어떻게 “소망”을 해야 할까요?  (1) 우리는 “속으로 탄식하”면서 소망해야 합니다(8:23).  자녀를 해산하는 산모는 임신해서 산기가 다 되었을 때 장차 태어날 귀한 생명인 아기를 소망하기에 해산하는 고통과 수고를 하면서 신음하고 탄식합니다.  이와 같이 장래의 영광을 참으로 믿는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가까우면 가까울 수록 더욱더 속으로 신음하고 탄식하면서 소망을 해야 합니다.  (2) 우리는 “참음으로” 소망해야 합니다(8:25).  히브리서 122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 믿음의 근원이시며 우리 믿음을 완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은 장차 누릴 기쁨을 위하여 부끄러움과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셨으며 지금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장차 누릴 기쁨을 위하여” 어떠한 “현재의 고난” (8:18)도 그리스도와 함께 참고 견디되 끝까지 참음으로 소망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022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리고 너희가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서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태복음 2413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우리는 주님 오실 때까지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견디므로 주님과 함께 소망의 나라요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 영원히 영광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참 소망이심을 믿는,

 

 

제임스 김 나눔 (20221113,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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