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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요나와 내려가시는 예수님

내려가는 요나와 내려가시는 예수님       내려가는 요나 :   하나님의 명령은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서 상달되었음이니라”였습니다 (1:2)   그러나 요나는 욥바로   내려가고 , 다시스로 가는 배로   ‘내려가고 ’ (3 절 ), 더 나아가서 배 밑층으로   내려갔을   뿐만 아니라 (5 절 ), “깊은 속 바다” (2:3) 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6 절 ). 이렇게 교만한 불순종의 길은 내리막 길입니다 .     내려가시는 예수님 : 허나님의 명령은 하늘의 영광스러운 보좌에서 일어나 저 죄악된 세상으로 가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 사랑하신 ) 자들 그리고 미리 작정 ( 예정 , 선택 ) 하신   자들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대속 죽으라 였습니다 .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으로 내려가셨고 , 베들레헴 마구간 구유에 내려가셨고 , 하류계층만 처형당한 십자가까지 내려가셨고 , 땅 깊은 속에까지 내려가셨고 , 지옥까지 내려가셨습니다 [“he descended to hell”( 영어 사도신경 )]. 이렇게 겸손하신 예수님은 낮아지시고 낮아지시면서 순종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

짧은 말씀 묵상 (2023년 5월 26일)

짧은 말씀 묵상

 

 

 

히스기야는 그의 조상 다윗 왕을 본받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행했는데(역대하 29:2, 현대인의 성경) 그의 아들 므낫세는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고 바알 제단들을 쌓으며 아세라 여신상을 만들고 해와 달과 별들을 숭배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께서 영원히 경배를 받으시겠다고 말씀하신 바로 그 성전에 이방 신의 단들을 쌓고 성전의 두 뜰에도 하늘의 별들을 숭배하는 단들을 쌓았으며 힌놈 골짜기에서 자기 아들들을 산 채로 불에 태워 이방 신에게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는 또 점을 치고 마술과 요술도 행하며 영매와 점쟁이를 찾아다니는 등 온갖 악을 행하여 여호와를 몹시 노하게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므낫세 왕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쫓아낸 이방 민족의 더러운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33:2-6, 현대인의 성경).  아버지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행했는데 아들 므낫세 왕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이 정 반대일 수가 있을까요?  부모 마음대로 잘 안 되는 것이 자식 농사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자녀들을 양육해 주시사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행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어떻게 므낫세 왕은 하나님께서 경배 받을 곳으로 택한 장소하나님의 성전”(예루살렘 성전)에 자기가 직접 새겨서 만든 우상을 세워놓을 수 있었을까요? (역대하 33:7,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지금도 므낫세 왕과 같은 목사들은 하나님께서 경배 받을 곳으로 택하신 하나님의 성전에서 자기 자신을 우상화하여 성도들에게 숭배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갖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몹시 노하게 하였던 므나셋 왕은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꾀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멸망시킨 이방 민족들보다 그들이 더 많은 악을 행하도록 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므낫세와 그의 백성들에게 여러 차례 경고하셨으나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역대하 33:6, 9-10, 현대인의 성경).  므낫세와 같은 목사 한 명이 온 교인들을 꾀어 그들로 하여금 세상 사람들보다 더 많은 악을 행하도록 하고 있는 교회가 있지 않나요?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 목사와 그의 교인들에게 여러 차례 경고하실 텐데 그들이 들을까요?  거짓 목사의 거짓 복음과 거짓된 가르침은 충분히 교인들을 꾀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악을 행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교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악을 행하고 있지 않나요?

 

하나님께서 여러 차례 경고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악을 행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치시사 우리로 하여금 고통을 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고통을 안 당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당해서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앞에서 크게 겸손하여 회개 기도하는 것입니다(참고 역대하 33:9-13, 현대인의 성경).

 

므나셋 왕은 고통을 당하므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자신을 낮추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하여 다시 나라를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제서야 므낫세는 여호와께서 정말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역대하 33:12-13,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있을 때 아무 고통 없이 무병장수하기 보다 우리는 고통을 통해서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며 회개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회복의 은총을 받아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깨닫게 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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