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말씀 묵상
세례 요한은 헤롯왕이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한 것에 대해 “당신은 그 여자와 결혼한 것은 잘못입니다”하고 말했었습니다. 그 일로 헤롯왕은 세례 요한을 죽이고 싶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고 있었기에 그들을 두려워하므로 옥에 가둔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헤롯의 생일날,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였으므로 그녀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고 그녀에게 맹세하며 약속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어머니인 헤로디아가 시키는 대로 “세례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제게 주십시오”하고 요구했습니다. 헤롯왕은 몹시 괴로웠으나 자기가 한 맹세와 잔치 자리에 앉아 있는 손님들 때문에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명령하고 사람을 보내 갇혀 있는 요한의 목을 베어 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소녀에게 주자 그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인 헤로디아에게 가져갔습니다(마태복음 14:3-11,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몇 가지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1) 자기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한 헤롯 왕에게 ‘그것은 잘못입니다’하고 말했다고 세례 요한을 죽이고 싶어한 헤롯 왕을 생각할 때 우리도 세례 요한처럼 세상적으로 우리 보다 권력이 있어 힘이 센 사람에게 그가 잘못한 것에 대해 ‘그것은 잘못입니다’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 헤롯 왕은 세례 요한을 죽이고 싶었지만 많은 사람들을 두려워해서 그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결혼한 헤로디아는 자기 딸을 통해 결국 세례 요한을 죽였습니다. 그녀는 세례 요한의 목을 베어 죽이게 하였습니다. 참으로 잔인한 여자라 생각합니다. 아합 왕의 아내인 이세벨 여왕이 생각납니다. 그 이유는 이세벨은 나봇을 잔인하게 죽였기 때문입니다. (3) 세례 요한의 죽음을 생각할 때 참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기에 그의 죽음은 귀중한 것이라 믿습니다(시편
116:15).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요한의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예수님께 가서 이 일을 알렸습니다. 예수님은 그 말을 들으시고 혼자 배를 타고 조용한 곳으로 가셨습니다(마태복음
14:12-13, 현대인의 성경). 요한의 제자들이 머리와 몸이 분리되 있었을 자기들의 스승인 세례 요한의 지체를 가져다가 장사했었을 때 그들의 심정은 어떠하였었을까요? 혼자 배를 타고 조용한 곳으로 가신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 셨었을까요?
배에서 내리신 예수님은 많은 군중을 보시고 불쌍히 여겨 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와서 “사람들을 마을로 보내 각자 음식을 사 먹게 하십시오”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갈 것 없다. 너희가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셨고 제자들은 “우리가 지금 가진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것을 이리 가져오너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군중들을 풀밭에 앉히시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아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셨고 제자들은 그것을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여자와 아이들 외에 남자만 약
5,000명)은 모드 실컷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광주리나 거뒀습니다(마태복음
14:14-21,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두 가지 생각이 듭니다:
(1) 저 같이’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안 되는 인생을 통해서도 전능하신 주님은 충분히 남자만 약
5,000명이 되는 사람들에게도 생명의 빵이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나누게 하시사 영의 양식을 먹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2) 보잘 것 없는 제 인생을 주님께 받치면 주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드리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십니다.
군중을 다 보내신 후에 기도하시려고 혼자 산에 올라가셔서 날이 저문데도 그곳에 홀로 계셨던 예수님을 생각할 때(마태복음
14:23, 현대인의 성경)
저는 사람들과 분리하여 홀로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금 받습니다. 저의 사역의 중추(backbone)는 주님과 홀로 교제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여야 합니다.
왜 사도 베드로는 바다 위로 걸오시는 예수님에게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를 물 위로 걸어오라고 하십시오”하고 말했을까요?
(마태복음
14:25, 28,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오너라”하시자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님을 향해 갔습니다(29절, 현대인의 성경).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어떻게 베드로는 배에서 내릴 수 있었을까요? 분명히 그는 배에서 내리면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과연 베드로는 물 위를 얼마나 걸었을까요?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등등? 그러나 베드로는 파도를 보고 무서워하다가 물에 빠져들어가자 “주님,
살려 주십시오!”하고 소리쳤습니다(30절, 현대인의 성경). 저도 주님께 제 사랑하는 딸을 위하여 “주님,
살려 주십시오!”하고 간절히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물에 빠져들어가는 베드로를 붙잡으시며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느냐?”하셨습니다(31절, 현대인의 성경). 믿음이 적은 자도 즉시 손을 내밀어 건져주시는 주님은 저의 간구를 들어 응답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의 주님은 저에게 주신 약속인 베드로전서
5장 10절 말씀을 성취해 주셨고 지금도 성취해 주고 계십니다:
“얼마 동안 여러분이 고난을 겪고 나면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불러 영원한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하신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 여러분을 친히 완전하게 하시고 굳세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며 튼튼하게 세워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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