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Abandon religious formalism and be cleansed from within!

Abandon religious formalism and be cleansed from within!             “When Jesus had finished speaking, a Pharisee invited Him to eat with him. So He went in and reclined at the table. But the Pharisee was surprised to see that Jesus did not first wash before the meal. Then the Lord said to him, ‘Now you Pharisees clean the outside of the cup and dish, but inside you are full of greed and wickedness . You foolish people! Did not the One who made the outside make the inside also? But give what is inside the dish to the poor, and everything will be clean for you’” ( Luke 11:37–41 ).       (1)    As I meditated on today’s passage, Luke 11:37–41, my attention was drawn to the phrase, “the Pharisee was surprised” (v. 38).     (a)     Why was the Pharisee surprised that Jesus did not wash before eating?   (i)      The Greek word translated as “wash” here is ἐβα...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속에나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몸의 등불은 눈이라 눈이 성하면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몸도 어두우리라 그러므로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1:33-36).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1 33-36 말씀을 묵상할 몸의 등불은 눈이라”[“눈은 몸의 등불이다”(현대인의 성경)]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a)    저는 먼저 묵상할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그의  영적 광명에서 눈에 대해서 말이 생각났습니다: “여러분의 눈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것을 보면, 마음도 그것을 따라갑니다. ...  만일 여러분으로 하여금 유혹을 받게 하는 것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러한 것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  여러분의 눈이 어떤 것들을 탐하지 말게 하십시오.  똑바로 앞만 바라보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십시오. ...  여러분은 눈과 언약을 맺고 앞만 똑바로 바라보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이 지시하는 방향, 거룩과 하늘만 주목하고 나가십시오”(존스).

 

(i)                      사탄은 우리 눈의 욕심을 알고 있습니다.  사탄은 사람의 눈은 만족할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27:20, 현대인의 성경).  사람의 눈은 음란으로 가득 차서 끊임없이 죄를 짓습니다(밷후2:14).

 

·       마귀가 예수님을 이끌고 아주 높은 산으로 올라가 세상의 모든 나라와 영광을 보여주었다(4:8, 현대인의 성경; 참고: 4:5)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말씀을 묵상할 창세기 3 6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여자가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  가장 간교한 (1) 여자를 유혹했을 여자는 선악과를 “본즉” “보암직도 하”였다(6) 것은 사탄은 여자의 “안목의 정욕”(요일2:16) 자극하는 유혹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전략입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만족할 모르는 눈의 욕심을 경계해야 합니다(참고: 요일 2:16, 현대인의 성경).  그렇지 않으면 사탄이 수시로 우리에게 보악직도 선악과 같은 것을 보여주면서 우리의 눈의 욕심을 자극하여 범죄케 만들 것입니다.

 

n  욥기 31 1 말씀입니다: “내가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b)    저는 등불 묵상할 이미 묵상한 말씀 묵상 글들을 다시금 읽게 되었습니다:

 

(i)                      나의 등불이 되시는 주님”: 주님은 나의 등불이 되셔서 나의 어두움을 밝혀 주십니다(사무엘하 22:29, 현대인의 성경).

 

(ii)                    주님의 나의 등불이십니다”: “… 우리의 등불이신 주님은 우리를 우리의 어둠을 밝히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의 어둠에서 건지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님의 등불로 삼으시고 세우시사 어두운 세상을 밝히시길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우리의 어둠에서 건지시사 어두운 세상의 빛으로 삼으신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예수님의 빛을 비추길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어 두거나 침대 아래 두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것을등잔대 위에 올려 놓아 들어오는 사람이 빛을 있도록해야 합니다(8:16, 현대인의 성경).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야 합니다(13:9).  우리는 등불인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6:23).  그러므로 우리는 어둔 세상의 하나님의 영광을 비춰야 합니다(21:23)”[참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0681927939].

 

(iii)                 안내하는 등불”: 주님의 말씀을 우리를 안내하는 등불이며 우리의 길을 비춰 주는 빛입니다(참고: 119:105, 현대인의 성경).

 

(iv)                 여러분은 어두움을 밝혀 주는 등불과 같은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 "날이 새어 샛별이 여러분의 마음에 떠오를 때까지 여러분은 어두움을 밝혀 주는 등불과 같은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벧후 1:19, 현대인의 성경).

 

(v)                    타면서 빛을 내는 등불”: 마치 양초가 녹으면서 불을 비추는 것처럼 우리는 타면서 빛을 내는 등불입니다( 5:35, 현대인의 성경).

 

(vi)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진리를 전하시는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며 의로운 심판을 성실하게 베푸실 것입니다(참고: 42:3, 현대인의 성경).

 

(vii)               흥미로운 점은 오늘 본문 누가복음 11 33(“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속에나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누가복음 8 16(“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       ‘등불 비유’는 예수님의 가르침(말씀)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이므로 숨기지 말고 드러내야 한다는 의미와, 믿는 자의 삶이 다른 이들에게 빛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는 가지 주요 의미로 해석됩니다.  , 등불은 하나님의 말씀, 복음, 혹은 빛을 나타내는 존재나 행위를 상징하며, 아래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두어 비추어야 하듯, 말씀을 듣고 삶으로 실천하여 세상에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인터넷).

 

-            하나님의 말씀/복음: 등불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담은 예수님의 말씀이며, 말씀은 숨겨지기보다 드러나서 세상을 비춰야 빛이라고 강조합니다 ( 13:21-23; 4:21-25).

 

세상 속의 : 등불이 어둠을 밝히듯, 그리스도인(혹은 그의 가르침) 세상 속에서 어둠을 밝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나눔과 섬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 자신의 재능이나 선한 영향력을 나누는 자체가 자신을 빛나는 등불로 만들고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인터넷).

 

n  등불이란 헬라어 단어 “λύχνον”(록논) 등불 비유 오늘 본문 누가복음 11 33절과 8 16 외에 누가복음 15 8절에도 나옵니다: “어떤 여자가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   말씀은 누가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3가지 비유들 중에 “잃은 드라크마 비유”로서 어떤 여자가 드라크마 하나를 잃어버렸을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는다는 말씀의 의미는 잃어버린 영혼,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죄인 사람의 소중함을 알고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영혼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간절히 그리고 끝까지 찾으시는 사랑과 노력과 열정을 의미합니다(참고: 인터넷).  여기서 등불의 빛이란 영적으로 어두운 곳을 비추는 말씀(진리의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진리를 의미합니다(인터넷)(참고: “숨겨질 없는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4148355748).

 

(2)    예수님께서는 몸의 등불은 눈이라하고 말씀하신 눈이 성하면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몸도 어두우리라”(11:34)하고 말씀하셨습니다.

 

(a)    여기서 몸은 전체적인 인격을 뜻하나 등불에 비유된 눈은 진리를 분별하고 받아들이는 통로에 해당합니다(호크마).

 

(i)                      그리고 여기서 눈이 성하면이란 말씀에서 성하면이란 헬라어 πλος”(하플루스) 본래적 의미는 주름이 없는”, “단순한”, “진실한으로 영적 안목이 단순하고도 진실되게 진리에만 고정되어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호크마).

 

·       혹자는 단어에 '일편 단심'이라는 은유적 의미가 있다고 보아 " 몸이 밝을 것이요"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눈이 건강해서 빛을 받아들인다면 영적인 눈이 일편 단심으로 복음의 빛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존재는 빛으로 가득할 것입니다(호크마).

 

-            우리의 마음이 나누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 분만을 향해 고정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빛이 우리 삶에 온전히 들어와 (삶의 모든 영역) 밝아지게 것입니다(참고: 인터넷).

 

(ii)                    그리고 여기서 만일 나쁘면이란 말씀에서 나쁘면이란 헬라어 “πονηρς”(포네로스) 단순히 나쁘다 도덕적 의미를 넘어, 본질적인 악함 부패함 뜻합니다. 

 

·       그래서 "눈이 나쁘면(포네로스)" 눈의 시력이 낮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 받아들이지 못하는 영적 왜곡이나 불신의 상태를 의미합니다(인터넷).  이러한 눈은 시선이 악한 것에 맞추어져 있으므로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진리와 복음을 거부하는 눈입니다(호크마).

 

-            , ‘눈이 나쁘다(포네로스)’는 것은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세속적이거나 악한 의도에 사로잡혀 있어, 하나님의 계시를 올바르게 분별하지 못하는 상태를 경고하는 것입니다(인터넷).

 

n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탐욕, 시기, 세상적 욕심) 시선을 뺏겨 초점이 흐려지면 (마치 눈이 병들어 빛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첢) 우리의 가치관과 삶은 어둠(영적 무지나 ) 빠지게 것입니다(참고: 인터넷).

 

(3)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그러니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가 살펴보아라”(현대인의 성경)](11:35)하고 말씀하십니다.

 

(a)    말씀( 11:35) 앞선 눈과 등불 비유의 최종 결론이자 강력한 경고입니다.  직역하면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빛이 사실은 어둠이 아닌지 주의 깊게 살펴라 뜻입니다.  핵심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착각’에 대한 경고 (자기 기만 방지)

 

사람은 누구나 자기 스스로를 나는 옳다’, ‘나는 가운데 있다 믿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진리라고 믿고 있는 지식, 신념, 종교적 열심이 사실은 '어둠(자기 , 고집, 편견)' 있음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2.       영적 분별력의 중요성

 

속의 : 네가 가이드로 삼고 있는 가치관, 양심, 종교적 확신을 의미합니다.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빛에 비추어 진짜 ''인지, 아니면 나를 속이는 '어둠'인지 끊임없이 자기 점검(Self-examination) 하라는 뜻입니다.

 

3.       바리새인들을 향한 일침

 

당시 율법을 안다고 자부했던 바리새인들은 스스로를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눈앞에 계신 메시아(예수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 그들이 가진 '율법 지식' 오히려 예수님을 거부하는 '어둠' 되어버린 상태를 꼬집으신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구절은 네가 옳다고 믿는 생각이 하나님 앞에서도 진짜 빛인가?’ 묻는 말씀입니다.  스스로 빛이라 여기는 교만을 버리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면을 비추어 보라는 권고입니다”(인터넷).

 

(i)                      저는 말씀을 묵상할 제가 전에 요한일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대조하게 어두움 관한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말씀이란 바로 요한일서 1 5 있니다: “우리가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       말씀은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들은 말씀으로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에 대하여 부분으로 진리(twofold truth) 말하고 있습니다.  부분으로 진리란 (1)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말씀과 (2) ‘빛이신 하나님에게는 어둠이 조금도없으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빛이신 하나님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도 요한은 빛과 어두움을 대조하면서 빛이신 하나님에게는 결코 어두움이 조금도 있을 없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빛은 무엇이고 어둠은 무엇일까요?

 

-            먼저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1 4절에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했고 요한일서 1 1, 2절에서는 “생명의 말씀”과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말한 것을 보면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라는 말씀에서의 빛과 어둠은 빛은 생명(Life) 또는 영원한 생명(eternal life) 가리키고 어둠은 반대로 죽음(death) 또는 영원한 죽음(eternal death)이라 생각합니다.

 

-            또한 빛과 어둠이란 요한일서 1 6절인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 이거니와”란 말씀에 근거해서 생각해 빛은 “진리”(truth) 어둠은 거짓(lie)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거짓말을 하는 자란 요한일서 2 22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예수님) 부인하는” 자라고 사도 요한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            또한 요한일서 2 9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있는 자요”라고 말한 것을 보면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말씀에서 빛은 “사랑”(love) 의미할 있고, 반대로 어둠은 ‘미움’(hate)이라 생각합니다.  요한일서 29절과 11 말씀입니다: “빛 가운데 있다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자는 어둠에 있고 어둠에 행하며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n  여기서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 어둠에 행한 자에 대한 예를 든다면 우리는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3 12절에서 말한 가인을 수가 있습니다: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말씀에 근거해서 빛과 어둠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면 빛은 “의로움”(righteous)이고 어둠은 “악”(evil) 또는 요한일서 1 9절로 말한다면 “불의”(unrighteous)라고 말할 있을 것입니다.

 

#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빛이신 하나님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 우리는 빛의 자녀들입니다.  빛의 자녀들인 우리는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당연히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또한 빛의 자녀들인 우리는 죄가 없다고 말하면서 우리 자신을 스스로 속이지 않습니다.  만일 빛의 자녀들인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 어둠에 행하면 그것은 우리가 거짓말을 하는 죄요 또한 진리를 행하지 않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빛의 자녀들인 우리는 죄를 하나님께 자백합니다.  이유는 빛의 자녀들인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자신들의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줄을 믿기 때문입니다.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들 답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4)    예수님께서는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11:36)하고 말씀하십니다.

 

(a)    여기서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이란 말씀은 영적인 눈이 하나님께 고정되어 내면이 빛으로 채워지면, 삶의 특정 부분만이 아니라 성품, 관계, 가치관, 행실 삶의 모든 영역( ) 하나님의 통치 아래 밝아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이란 말씀은 위선이나 숨겨진 , 나누어진 마음이 없이 투명하고 순전한 상태를 의미합니다(인터넷).

 

(i)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말씀은 등불”(여기서 등불 예수 그리스도 혹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함) 전체를 환하게 비추듯, 하나님의 빛을 온전히 받아들인 사람은 자신도 세상을 향해 빛을 발하는 존재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어두운 방에 등불이 켜지면 구석구석이 밝아지듯, 성령님의 조명을 받는 영혼은 막힘없이 환하고 명료한 삶을 살게 된다는 약속입니다(인터넷).

 

·       구절은 하나님의 빛에 완전히 노출된 삶의 아름다움 보여줍니다.

 

일관성 있는 :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삶의 모든 부분이 하나님의 아래 정렬된 상태입니다.

 

영적 명료함: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지 않는 확신 있는 삶을 뜻합니다.

 

결국 예수님은 마음의 눈을 교정하여 (예수) 주는 빛을 온전히 받아들여라.  그러면 인생 전체가 등불 아래 있는 것처럼 환해질 것이다라고 초청하시는 것입니다”(인터넷).

 

-            예수님의 초청에 우리는 어떻게 응해야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초청은 우리 삶의 '시선' '중심' 재조정하라는 부르심입니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가지 단계로 응답할 있습니다.

 

1.       '나의 ' '어둠'임을 인정하기 (자기 부인)

 

가장 먼저 일은 안의 지식, 도덕성, 경험이 완벽한 빛이 아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처럼 나는 안다, 나는 옳다 확신이 오히려 하나님의 빛을 막는 가림막이 있습니다.   판단이 틀릴 있음을 인정하고 영적인 겸손함을 갖는 것이 시작입니다.

 

2.       시선을 '단순하게' 고정하기 (Focus)

 

본문에서 강조한 '성한 (하플루스)' '나누이지 않은 마음' 뜻합니다.  세상의 염려, 탐욕, 사람의 평판에 분산되어 있던 시선을 거두어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만 고정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실천: 복잡한 생각들을 내려놓고, 오늘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 구절에만 집중하며 말씀대로 반응해 보는 것입니다.

 

3.       내면의 '어두운 구석' 앞에 노출하기 (정직)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이라는 말씀처럼, 삶의 은밀한 영역(재정, 관계, 숨은 습관 ) 하나님의 앞에 정직하게 내어드려야 합니다.

 

실천: ‘주님, 삶의 부분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주님의 등불로 구석까지 비추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며, 감추고 싶었던 영역까지 하나님의 통치 아래 두는 것입니다.

 

결론: 매일의 '영적 안과 검진'

 

예수님의 초청에 응하는 것은 번의 결단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등불 앞에 나아가는 것처럼 매일 아침 말씀과 기도로 마음의 렌즈를 닦아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오늘 하루, 당신의 시선을 가장 많이 빼앗는 '나누어진 마음'이나 '복잡한 생각' 무엇인가요?  그것을 주님 앞에 단순하게 내려놓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인터넷).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