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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se Who Do Not Gather (or Stand) with Jesus

Those Who Do Not Gather (or Stand) with Jesus         “Whoever is not with me is against me, and whoever does not gather with me scatters” ( Luke 11:23 ).       (1)    This statement is also recorded in Matthew 12:30: “Whoever is not with me is against me, and whoever does not gather with me scatters.”   (a)     As I meditated on this verse, I was led to revisit Luke 9:50 , which I had already reflected on: “Do not stop him,” Jesus said, “for whoever is not against you is for you.”   Mark 9:40 similarly records: “Whoever is not against us is for us.”   (i)      This passage is a fundamental principle that defines the scope of co-workers in the kingdom of God , and it is a declaration that completely breaks the disciples’ narrow and exclusive mindset. Its specific meanings are as follows:   1.       There is no ‘neutrality’; the ‘direc...

예수님과 함께 하지(모으지) 아니하는 자

예수님과 함께 하지(모으지) 아니하는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누가복음 11:23).

 

 

(1)    말씀은 마태복음 12 30절에도 기록돼있습니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a)    저는 말씀을 묵상할 이미 묵상한 누가복음 9 50 말씀을 다시금 읽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9 40절은 이렇게 기록돼있습니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i)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 범위를 규정하는 대원칙’으로, 제자들의 폐쇄적인 사고방식을 완전히 깨뜨리는 선언입니다.  구체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중립’은 없으며, 사역의 ‘방향성’이 중요하다.

 

영적인 세계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 선을 행하는 일은 결코 우연히 일어날 없습니다.  바이블허브(BibleHub) 주석에 따르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이미 사탄의 세력에 반대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주님을 대적하지 않고 그분의 사역에 힘을 보태는 자라면, 그는 이미 잠재적 아군이자 같은 편이라는 의미입니다.

 

2.        ‘소속’보다 ‘목적’이 우선이다.

 

제자들은 "우리 팀인가?"라는 조직적 소속을 기준으로 삼았지만, 예수님은 "나를 위하는가?"라는 사역의 목적을 기준으로 삼으셨습니다.  대한성서공회(BSK) 흐름을 보면, 비록 우리와 같은 방식을 취하지 않더라도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확장하고 있다면 그를 용납하고 기뻐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3.       복음의 ‘개방성’과 ‘포용성’

 

예수님은 복음 사역이 제자 12명에 의해 독점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성경 강해(BibleRef) 말씀이 ‘최소한의 공통분모(예수 이름)’만 있다면 모두를 형제로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을 가질 것을 촉구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불필요한 적을 만들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넓게 연대하라는 전략적 가르침이기도 합니다”(인터넷).

 

(ii)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1 23(참고: 12:30) 누가복음 950(참고: 9:40)에서 다르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       누가복음11 23(12:30) 충성의 원칙 말씀하신 것으로서, 예수님을 귀신의 '바알세불' 힘을 빌렸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영적인 싸움에서 예수님 편에 서지 않고 구경꾼처럼 중립을 지키는 것은, 결국 사탄의 편에 서서 복음 전파를 방해하는 것과 같다는 엄중한 경고입니다(인터넷).

 

-            여기서 저는 영적인 싸움에서 예수님 편에 서지 않고 구경꾼처럼 중립을 지키는 것을 묵상할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 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도합 850) 대결하고 있었을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 머뭇”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났습니다(왕상18:21).  엘리야 선지자는 그들에게 이렇게 도전하였습니다: “…  너희가 어느 때까지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21).  그리하였을 이스라엘 백성은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21).

 

n  그러면 오늘 본문 누가복음 11 23절과 열왕기상 18 21절과의 연관성은 무엇일까요?  모두 신앙에 있어 '중립 지대는 없다' 단호한 영적 결단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깊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구절의 핵심적인 공통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영적 회색지대의 거부 (신앙의 선명성)

 

열왕기상 18 21: 엘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가 어느 때까지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라고 질책하며, 여호와와 바알 하나를 선택할 것을 요구합니다.


누가복음 11 23: 예수님께서는 "나와 함께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라고 말씀하시며, 그리스도께 완전히 속하지 않은 상태는 그분을 대적하는 상태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연관성: 구절 모두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 양다리를 걸치거나 중간에 있는 태도는 불가능하며, 분명한 선택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2.       결단이 필요한 위기의 상황

 

열왕기상 18: 갈멜산 대결이라는 극적인 순간에 참신이 누구인지 증명해야 하는 결전의 상황입니다.

 

누가복음 11: 예수님의 사역을 바알세불(귀신의 ) 힘이라 비방하는 영적 전쟁의 현장에서 누구 편에 것인지 묻는 상황입니다.

 

연관성: 영적 진리가 공격받거나 왜곡되는 상황일수록 신자는 모호한 태도를 버리고 진리 편에 서야 함을 보여줍니다.

 

3.       '함께함' '따름'

 

열왕기상에서의 "따르라(Follow)" 누가복음에서의 "함께하다(With)" 단순한 동조를 넘어 삶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전적인 헌신을 뜻합니다.

 

누가복음 11 23절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라는 표현은 엘리야가 백성들의 마음을 다시 여호와께로 돌이키려(모으려) 했던 사역과 맥을 같이 합니다.

 

결론적으로, 구절은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길 없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신앙 고백과 헌신만이 참된 신앙의 길임을 일깨워줍니다(인터넷).

 

·       누가복음 9 50(9:40) 관용의 원칙 말씀하신 것으로서, 제자들이 "우리 팀이 아니면 !"라는 폐쇄적인 마음을 가졌을 하신 말씀입니다.  비록 소속은 달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다면, 그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돕는 동역자로 보라는 뜻입니다(인터넷).

 

-            말씀은 오늘날 우리가 가져야 영적 포용력과 연합의 원리에 대해 매우 강력한 교훈을 줍니다.

 

1.       ‘나만 옳다’는 영적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속한 교회, 내가 배운 신학, 나의 봉사 방식만이 정답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 주석(BibleHub) 따르면,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않는다" 이유로 타인의 사역을 비난하는 것을 '영적 교만'으로 간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내가 만든 울타리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2.       ‘본질’이 같다면 ‘형식’의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귀신을 쫓아낸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 집단(형식)에는 없었지만, 예수님의 이름(본질) 의지했습니다.  대한성서공회의 가르침처럼,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선한 열매를 맺고 있다면, 예배 방식이나 교파가 다르더라도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로 존중해야 합니다.

 

3.       ‘비판’보다는 ‘격려’의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다른 이의 사역에서 '부족한 ' 찾아 금지하려 했지만, 예수님은 그가 행하는 '선한 ' 주목하셨습니다.  성경 강해(BibleRef) 우리가 타인의 사역을 비판하기보다, 그들이 주님을 위해 일하는 마음을 귀히 여기고 협력할 지점을 찾아야 한다고 교훈합니다.

 

4.       사역의 ‘독점권’이 아닌 ‘확장성’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경쟁하는 시장이 아닙니다.  누군가 주님의 이름으로 선한 일을 한다면 그것은 우리 편이 늘어난 것이며,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 것입니다.  본헤럴드(BonHD) 구절이 교회 간의 불필요한 경쟁을 멈추고, 세상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거룩한 연대' 요청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문장 요약: ‘나와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적으로 만들지 말고, 주님을 높이는 모든 이를 사랑의 마음으로 포용하십시오’”(인터넷).

 

(b)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1 23 하반절인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말씀을 묵상할 요한복음 10 12절인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헤치느니라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i)                      누가복음 11 23 하반절(‘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요한복음 10 12("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헤치느니라") '헤치는 (scattering)'라는 동일한 단어를 통해 영적 사역의 본질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주요 연관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모으는 사역' '헤치는 방해' 대조

 

누가복음 11 23: 예수님은 자신을 영혼을 모으는(gathering) 참된 목자로 제시하십니다.  반면, 그분과 함께하지 않는 자는 필연적으로 공동체를 헤치는(scattering) 결과를 낳는다고 경고하십니다.

 

요한복음 10 12: 목자이신 예수님과 대조되는 '이리' 떼를 헤치는 존재입니다.

 

연관성: 구절 모두 하나님 나라의 사역은 '모으는 '이며, 이를 방해하거나 방치하는 모든 세력(바리새인, 거짓 목자, 사단) 본질적으로 '헤치는 '임을 폭로합니다.

 

2.       영적 책임감의 유무 (적극성 vs 무책임)

 

누가복음 11 23: 중립은 없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적극적으로 예수님과 함께 모으지 않는 '방관자' 결과적으로는 공동체를 해체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0 12: 삯꾼 목자는 이리가 도망침으로써 떼가 헤쳐지는 것을 방치합니다.

 

연관성: 단순히 악의를 가지고 공격하는 것뿐만 아니라, 목자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않거나 예수님께 결단하지 않는 태도 자체가 공동체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3.       '이리' '바알세불' 영적 실체

 

누가복음 11장의 문맥에서 예수님은 귀신의 '바알세불' 세력과 싸우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0장의 '이리' 역시 (성도) 멸망시키려는 사단적 세력을 상징합니다.

 

연관성: 구절 모두 사단의 본질은 '분열과 해체(헤침)' 있고, 예수님의 본질은 '연합과 회복(모음)' 있음을 보여줍니다.

 

요약: 누가복음은 "예수님 편에 서지 않으면 파괴자가 된다" 원리를 선포하고, 요한복음은 " 목자가 아닌 세력은 반드시 공동체를 파괴한다" 실례를 보여줍니다. , 예수 그리스도만이 흩어진 양들을 하나로 모으시는 유일한 구심점임을 구절이 함께 증거하고 있습니다(인터넷).

 

(ii)                    제가 2013 6 10일에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제목 아래 마태복음 7 15 말씀을 묵상한 글의 부분입니다(참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150169654181):

 

여러분, 삯꾼은 목자도 아닙니다.  그는 양을 돌보지 않습니다.  그는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도망갑니다.  결과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또한 헤칩니다.  오히려 가짜 목자는 떼를 돌보지 않고 자기 자신만 돌봅니다(34:2).  그리고가짜 목자는 떼를 버리는 못된 목자(the worthless shepherd)라고 스가랴 11 17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0 29-30절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말씀은 사도 바울이 멜리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여(17) 그들에게 말들 부분으로서 그는 그가 에베소 교회를 떠난 사나운 이리’, 거짓 선지자, 거짓 지도자 또는 거짓목자가 그들에게 들어올 줄을 예상하였습니다.  거짓 목자의 특징은 양떼를 아끼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짓 목자는 떼를 잘못된 길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 10절에서 가짜 목자를 도둑으로 묘사하시면서 거짓(가짜) 목자는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기려는 것뿐이다 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떼를 아끼지 않는 거짓 목자가 도둑질하는 아십니까?  오늘 본문 마태복음 7 15절에서는 “노략질”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노략질”이란 헬라어 단어의 의미에는 ‘강도나 사기꾼과 같이 극심하게(난폭하게)탐욕스러운(욕심 많은)’이란 뜻이 내포되 있습니다[(1) vicious, ravenous, destructive, like a wild animal (MT 7.15); (2) violently greedy (LU 18.11); substantially robber, swindler (1C 6.10)(Friberg)]. ….”

 

(iii)                 제가 2018 7 18일에 거짓 목사 제목 아래 말씀 묵상 글의 부분입니다(참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1321177396):

 

“…  여러분, 거짓 목사는 삯꾼입니다.  결코 그는 양들을 돌아보지 않습니다(10:13).  그는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납니다(12).  결코 거짓 목사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지 않습니다(11).  오히려 거짓 목사는 자기 배만 채우는데 힘씁니다(34:2).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 교인들은 그러한 거짓 목사를 좇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거짓 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아멘”하면서 말을 확고히 믿습니다.  결과 거짓 목사나 거짓 교인들은 하나님께 범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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