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된 사람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누가복음 11:24-26).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1장 24-26절 말씀을 묵상할 때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그 사람의 나중 상태가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되었다”(현대인의 성경)]란 말씀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a)
아마도 그 이유는 저는 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욥기
8장 7절 말씀을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네가 처음엔 보잘것 없었지만 나중에는 크게 번성할 것이다”(현대인의 성경)].
(i)
즉,
우리가 기도하고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은 비록 우리의 시작은 미약하지만(보잘 것 없지만)
우리의 나중은 심히(크게) 창대(번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제가2010년 10월 13일에 “나를 더욱 창대하게 하소서”란 제목 아래 시편
71편 15-24절 말씀을 묵상하여 쓴 글을 다시금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더욱 창대하게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3가지 교훈을 받았었습니다(참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150095400974):
1.
우리가 더욱 창대하게 되기 위해서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시71:17)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사를 전하였나이다”].
2.
우리가 더욱 창대하게 되기 위해서 많고 심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 가운데 성장해야 합니다[(시71:15)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
3.
우리가 더욱 창대하게 되기 위해서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주님의 힘을 후대에 전해야 합니다[(시71:18)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
그런데 오늘 본문 누가복음
11장 26절에 나오는 사람은 나중 형편(상태)이 전보다(처음보다) 더 심하게(비참하게) 되었기에 왜 그리 되었는지 궁금해진 것입니다.
(2)
누가복음
11장 26절 말씀입니다: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여기서 “거하니”란 헬라어 단어 “κατοικεῖ”(카토이고)는 “정착하다”,
“영구히 거주하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호크마).
(a)
즉,
그 더러운 귀신(영)이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마음이 영적으로 공허한 상태로 남아 있는 그 사람의 비어있는 삶으로 다시 돌아와 정착하므로(영구히 거주하므로)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i)
그러므로 누가복음
11장 26절에서 주는 교훈은 마음이 영적으로 공허한 상태로 남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시거나 악이 다시 자리 잡는 것입니다(인터넷).
·
여기서 우리는 영적 공백(spiritual
vacuum)의 위험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귀신이 나간 뒤 마음을 청소하고 수리했지만,
그 자리를 채워야 할 새 주인(성령님, 예수 그리스도)을 모셔 들이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세계에는 중립이 없어서,
하나님으로 채워지지 않은 빈 공간은 다시 악한 세력의 타겟이 됩니다(인터넷).
-
“악의 결집:
처음에는 귀신 한 마리였으나,
돌아올 때는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왔습니다.
'7'은 완전수를 의미하기도 하므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완전한 악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 것입니다”(인터넷).
n
결국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이유는 악령이 나간 자리를 하나님의 선한 영으로 채우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악령이 축출된 자리는 빈 공간으로 두어서는 안되며 반드시 그 자리에 하나님의 나라가 들어서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호크마).
# “결국 비움보다 중요한 것은 채움이라는 교훈을 줍니다.
악을 몰아내는 것에만 집중하고 그 안에 생명을 채우지 않으면,
이전보다 더 견고한 악의 요새가 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인터넷).
(3)
그러면 이 말씀이 강조하는 ‘마음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성경적인 관점에서
4가지를 좀 생각해 봅니다(참고: 인터넷):
(a)
첫째로,
말씀(Logos)으로 채우기
(i)
귀신이 나간 빈자리를 가장 먼저 채워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방법: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 말씀을 묵상(되새김질)해야 합니다.
시편
1편의 복 있는 사람처럼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여 내 생각의 흐름을 말씀의 원리로 바꾸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
이유:
말씀은 성령인 검(the
sword of the Spirit)이기에,
악한 생각이 다시 틈타려 할 때 물리칠 힘이 됩니다.
·
시편
119편 56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는 듣고 배우는 말씀을 “내 소유”로 만들 수 있습니까? 그것은 간단합니다. 그 말씀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우리는 직접 성경책을 펴서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재 우리 삶 속에 순종하고 적용하므로 살아 운동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체험이야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내 소유”로 만들 수 있는 방법입니다(참고: “나의 소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150095401752).
-
하나님의 말씀을 “’내 소유’로 만드는 방법:
묵상
(Meditation): 말씀을 읽고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며,
마음속에 새기는 과정.
기쁨 (Delight): 말씀을 즐거워하고,
세상의 어떤 재물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
순종 (Obedience): 말씀대로 살아감으로써 그 말씀을 자신의 삶에 실제적인 소유로 만드는 것.
의지 (Reliance): 삶의 모든 순간,
특히 어려움 속에서 말씀을 의지하고 따르는 것.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내 소유'로 삼는다는 것은 말씀을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아 묵상하고,
순종하며,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인터넷).
(b)
둘째로,
성령(Holy
Spirit)의 임재 구하기
(i)
누가복음
11장 24~26절 바로 앞 구절(13절)을 보면,
예수님은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결론지으셨습니다.
·
방법:
매일 아침
"오늘 내 마음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성령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며 주권을 내어드리는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
이유:
내 의지만으로는 악한 습관을 이길 수 없지만,
성령님께서 내 마음이라는 집의 주인(Owner)이 되시면 귀신이 다시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
사도행전
2장 4절 말씀을 다시금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다락(1:13)에서 약
120문도가 모여서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던 것처럼 구약3대 축제 중 하나인 오순절에 이
120문도들이 동일한 장소에서 모여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2:1)(유상섭). 그 때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120문도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였습니다(2:2).
여기서 하늘로부터 홀연히 급하게 분 “강한 바람”(rushing
wind)은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구약에서 “루아흐”란 단어가 “바람”이란 말인데 이 바람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임재함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삼상22:16; 욥37:10; 겔13:13)(유상섭).
-
그러면 우리는 성령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방법은 기도하는 것입니다(행 2:4; 4:31;
6:3, 5; 9:17). 앤드류 머레이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충만을 받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인이나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살고 일하기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온 마음을 다하여 성령충만을 구해야 한다"(머레이). 기도하므로 성령 충만함을 받는 사도행전의 역사들을 보면서 우리는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 함께 모여서 합심으로 성령 충만함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또한 성령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시1:2). 성령 충만함이란 말씀 충만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 충만이란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여 내 전인격이 그 말씀에 지배를 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 충만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지배를 받고 이끌림을 받아야 합니다.
(c)
셋째로,
찬양과 감사로 분위기 바꾸기
(i)
악한 영은 원망,
불평, 어둠의 감정을 타고 들어옵니다.
반대로 찬양과 감사는 하나님의 임재를 불러옵니다.
·
방법: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의도적으로 감사의 제목
3가지를 입으로 내뱉거나 찬양을 듣고 따라 부르는 습관을 들여보세요.
-
이유:
감사는 마음의 문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파수꾼 역할을 합니다.
·
시편
138편 1절을 보면 시편 기자 다윗은 이렇게 말씀(결심)하고 있습니다: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양하리이다”. 왜 다윗은 이렇게 전심으로 주님께 감사하며 찬양하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 때문입니다(2절). 다윗이 체험하고 있었던 하나님의 인자하심(사랑)과 성실하심(신실하심)은 무엇이었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높게 하셨음이라“. 다윗이 경험하였던 주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은 주님께서 주님의 말씀을 크게 하신 것입니다(박윤선). 여기서 주님께서 그의 말씀을 크게 하셨다는 말은 주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성취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다윗은 주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경험하고 있었으므로 주님께 전심으로 감사하며 찬양을 드리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1절).
-
좀 더 구체적으로 다윗이 전심으로 주님께 감사하며 찬양하였던 이유,
즉 그가 경험하였던 주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4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1.
주님께서 그의 기도를 응답하사시 그에게 힘을 주시사 강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3절)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을 장려하여 강하게 하셨나이다”].
2.
열왕들이 주님께 감사하며 찬양하였기 때문입니다[(4-5절) “여호와여 땅의 열왕이 주께 감사할 것은 저희가 주의 입의 말씀을 들음이오며 저희가 여호와의 도를 노래할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크심이니이다”].
3.
주님께서는 겸비한 자신을 구원해주실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6-7절) “여호와께서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하감하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시나이다 내가 환난 중에 다닐찌라도 주께서 나를 소성케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4.
주님께서 다윗 자신에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실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8절)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실찌라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
(d)
넷째로,
믿음의 공동체(교제)와 연결되기
(i)
혼자 있는 집은 침입하기 쉽지만,
함께 있는 성은 무너뜨리기 어렵습니다.
·
방법:
건강한 신앙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상태를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영적 네트워크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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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영적 전쟁은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싸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저는 우리 승리장로교회 공동체가 믿음의 공동체로 더욱더 견고히 세움 받길 기원합니다. 여기서 믿음의 공동체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공동체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에서 납니다. 바라기는 우리 승리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므로 믿음이 자라나는 교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믿음이 자라나므로 우리 승리교회는 여러 환난 중에서도 요동치 않는 교회가 되야 합니다(살전3:3).
-
믿음의 공동체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되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6절 말씀입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하나님을 향하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은 소문이 각처에 퍼진 것처럼(8절) 우리 승리교회안에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므로 우리 모든 식구들의 믿음의 소문이 이 Los Angeles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 가든지 믿음의 소문이 퍼지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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