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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에 대한 나의 고민

  https://youtu.be/7gw7qr-zJsA?si=UYNXPlNlgtI1j3Cg

분쟁의 위기를 화합과 일치의 기회로

 분쟁의 위기를 화합과 일치의 기회로

 

 

우리가 목적이 있어서 주의하고 이같이 하였노라 곧 생각하기를 후일에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여호수아 22 24).

 

 

            가정이나 교회에서나 분쟁의 요소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요서들 중에 하나는 바로 오해입니다.  예를 들어가정에서 남편이 아내를 오해하면 다툴 위험이 많습니다.  그리고 부부가 다투다 보면 부부 싸움이 충분히 더 커질 수가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님이 장로님을 또는 장로님이 목사님을 오해하게 되면 서로 다툴 수가 있고 그 다툼으로 인하여 당회의 불일치로 인하여 교회의 분쟁으로까지 충분히 번질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분쟁을 원하는 부부나 당회원(목사님과 장로님)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왜 원치 않은 이러한 분쟁이 우리 가정에서 또는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무엇이 문제이고 그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해결해 나아가야 할까요?

 

            저는 오늘 본문 여호수아 22 24절이 속해 있는 22장 전체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분쟁의 위기를 오히려 일치의 기회로 삼아야 겠다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다시금 여호수아 22장 말씀을 이렇게 묵상하되 분쟁의 위기와 화합과 일치의 기회에 대하여 좀 나눠서 묵상하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어느 조직에서나 분쟁의 위기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화합과 일치의 기회를 만들어야 할지 좀 더 구체적으로 여호수아 22장 말씀을 생각해 보면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먼저 저는 이스라엘 12지파들의 분쟁의 위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합니다.

 

            이스라엘 12지파들의 분쟁의 위기란 요단강 동편을 기업으로 받은 2 ½ 지파 대 요단강 서편을 기업으로 받은 9 ½ 지파 사이의 분쟁의 위기를 말합니다.  여기서 모세에게 요단강 동편을 기업으로 받은 2 ½ 지파들은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였고여호수아에게 요단강 서편을 기업으로 받은 9 ½ 지파들은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와 잇사갈 지파와 스블론 지파와 단 지파와 납달리 지파와 아셀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와 베냐민 지파와 나머지 므낫세 반 지파였습니다.  이렇게 요단강을 분계선으로 하여 동쪽과 서쪽에 나눠서 거주하고 있었던 2 ½ 지파와 9 1/2 지파가 분쟁의 위기가 있었는데 그 위기는 2개였습니다

 

첫번째 분쟁의 위기는 모세가 지도자였을 때 왔었고 두번째 분쟁의 위기는 여호수아가 지도자였을 때 왔었습니다.  모세가 지도자였을 때 있었던 첫번째 분쟁의 위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가나안 족속들과 싸워 이겨서 그 땅을 정복해야 했는데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는 자기들의 많은 가축 때(32:1)를 목축할 만한 야셀 땅과 길르앗 땅(1, 4)을 보고 모세에게 그 땅을 자기들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 강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5)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그 때 그 말을 들은 모세는 그들에게 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너희는 여기 앉아 있고자 하느냐”(6)고 책망하면서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낙심하게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려 하느냐”(7)고 말했습니다.  이 때 요단강 동편에 머물고자 했던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는 충분히 나머지 9 ½ 지파들을 낙심시킬 수 있었고 그 일로 인하여 서로 분쟁할 수가 있었습니다

 

두번째 분쟁의 위기는 여호수아가 지도자였을 요단강 동편을 기업으로 받은 2 ½ 지파들이 오랫동안 9 ½ 지파들과 함께 하나니님께서 명령하신 일인 가나안 땅 정복의 일을 책임껏 수행한 후(22:3, 현대인의 성경여호수아의 축복을 받고 자기들 땅으로 돌아가는 중에(6)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아직 가나안 땅에 있을 때에 강가에 굉장히 큰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10현대인의 성경).  이것이 분쟁의 요소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제단 외에는 다른 제단을 쌓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요(18),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요(16, 19또한 하나님의 배역하는(18범죄였기 때문이었습니다(22).  그리고 그 범죄의 결과는 브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회중에 내린 재앙(17)이나 여리고 성 함락 때에 아간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온전히 바친 물건을 훔쳐 숨기므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온 회중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그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멸망한 자가 그 한 사람만이 아니었던 것(20)처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심각한 범죄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9 ½ 지파 사람들은 2 ½ 지파 사람들이 큰 제단을 쌓았다는 소식을 듣고 실로에 군대를 모으고 그들의 형제 지파인 2 ½ 지파들과 싸우려고 했었습니다(12).

 

            저는 이 분쟁의 위기에 관한 말씀을 묵상하면서 왜 우리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분쟁을 초래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했을 때 저는 한 3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 3가지란 첫째로 상대방에 대해 너무 섣불리 판단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가정에서 남편이 아내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므로 부부 사이에 갈등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당회에서 목사님과 장로님 사이에서도 서로를 섣불리 판단하므로 갈등이 있을 수 있지만 당회와 교인들 사이에서도 섣불리 판단하여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왜 우리를 섣불리 판단하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좀 신중하게 상대방의 말을 좀더 들어보고 왜 그 사람이 그리 말하고 행동했는데 알아보지도 않고 우리 마음대로 생각하고 속단하여 결국에는 갈등을 일으키는 것일까요?  둘째로분쟁을 초래하는 이유는 오해의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가정에서는 부부나 부모나 자녀 사이에서교회에서는 목사님과 장로님 사이에서 또는 당회와 교인들 사이에서 서로를 오해할 여지가 충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쩔 때 상대방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되면 우리는 그 상대방을 오해할 위험이 많고 오해가 커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다툼이 되어 충분히 분쟁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셋째로분쟁을 초래하는 이유는 함부러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대해 우리 마음대로 섣불리 판단하고 그 상대방에 대해 오해를 하다보면 우리는 그 상대방에게 함부러 말하던지 함부러 행동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말과 행동에는 차를 멈추게 하는 브레이크(break) 같은 것이 없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급한 마음 속에서 급하게 말을 하고 급한 행동을 취하게 되면 우리는 상대방과 충분히 분쟁할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스라엘 12 지파들이 분쟁의 위기를 어떻게 화합과 일치의 기회로 만들었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번째 분쟁의 위기 때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의 책망을 듣고(32:6-15) 모세에게 우리가 이 곳에 우리 가축을 위하여 우리를 짓고 우리 어린 아이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이 땅의 원주민이 있으므로 우리 어린 아이들을 그 견고한 성읍에 거주하게 한 후에 우리는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 곳으로 인도하기까지 그들의 앞에서 가고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기업을 받기까지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아니하겠다고 말했습니다(16-18). 그 말을 들은 모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좋소 여러분의 말대로 여러분은 무장을 하고 요단강을 건너 여호와께서 원수들을 다 쫓아내실 때까지 싸우시오그 땅이 여호와 앞에서 완전히 정복되면 여러분은 여호와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의무를 다한 셈이 되므로 다시 이 곳으로 돌아와도 됩니다그리고 이 땅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여러분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여호와께 죄를 범한 것이 되어 그 죄의 댓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가서 여러분의 아이들을 위해 성을 건축하고 가축을 기를 우리를 만드시오.  그러나 여러분은 약속한 것을 반드시 이행해야 합니다”(20, 23-24현대인의 성경).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 사람들은 자신들이 약속한 대로 그들의 형제들인 9 ½ 지파들 사람들과 함께 무장하고 하나님 앞에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 싸우되 하나님께서 그들의 원수들을 자기 앞에서 쫓아내시고(21가나안 땅에 하나님 앞에 복종하게 하시기까지 싸웠습니다(22).  다시 말하면요단강 동편을 기업으로 받은 2 ½ 지파 사람들은 하나님의 종 모세가 명령한 것을 지키고 또한 여호수아의 모든 명령에도 순종하여(22:2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오랫동안 여러분의 형제들(9 ½ 지파 사람들)을 떠나지 않고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을 책임껏 수행하였습니다”(3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요단강 동편을 기업으로 요구하여 받은 2 ½ 지파 자손들은 요단강 서편을 기업으로 받은 9 ½ 지파 자손들은 불행의 위기를 오히려 화합과 일치의 기회로 만들어 하나님의 뜻인 가나안 땅 정복을 이루었습니다.

 

            두번째 분쟁의 위기 때 요단강 서쪽에 남은 9 ½ 지파 사람들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 사람들이 자기들 땅으로 돌아가면서 아직 가나안 땅에 있을 때에 요단강가에 큰 제단을 쌓았다(10)는 소식을 듣고(11실로에 군대를 모으고 그들의 9 ½ 형제 지파들과 싸울 준비를 했지만(12그들은 곧장 가서 싸우지 않고 먼저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와 각 지파에서 뽑힌 10명의 지도들로 구성된 대표단을 를 길르앗 땅으로 보내어 2 ½ 지파를 보게 하였습니다(13, 14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비느하스와 10명의 대표들은 2 ½ 지파에게 나아가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하나님께 범죄하여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서 돌아서서 너희를 위하여 제단을 쌓아 너희가 오늘 여호와께 거역하고자 하느냐  브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회중에 재앙이 내렸으나 오늘까지 우리가 그 죄에서 정결함을 받지 못하였거늘 그 죄악이 우리에게 부족하여서 오늘 너희가 돌이켜 여호와를 따르지 아니하려고 하느냐 너희가 오늘 여호와를 배역하면 내일은 그가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리라 그런데 너희의 소유지가 만일 깨끗하지 아니하거든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여호와의 소유지로 건너와 우리 중에서 소유지를 나누어 가질 것이니라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외에 다른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며 우리에게도 거역하지 말라 세라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에 대하여 범죄하므로 이스라엘 온 회중에 진노가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의 죄악으로 멸망한 자가 그 한 사람만이 아니었느니라”(16-20).  그 말을 들은 2 ½ 지파는 비느하스와 10명의 대표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 이 일이 만일 여호와를 거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주께서는 오늘 우리를 구원하지 마시옵소서 우리가 제단을 쌓은 것이 돌이켜 여호와를 따르지 아니하려 함이거나 또는 그 위에 번제나 소제를 드리려 함이거나 또는 화목제물을 드리려 함이거든 여호와는 친히 벌하시옵소서 우리가 목적이 있어서 주의하고 이같이 하였노라 곧 생각하기를 후일에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 르우벤 자손 갓 자손아 여호와께서 우리와 너희 사이에 요단으로 경계를 삼으셨나니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느니라 하여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여호와 경외하기를 그치게 할까 하여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제 한 제단 쌓기를 준비하자 하였노니 이는 번제를 위함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함도 아니라 우리가 여호와 앞에서 우리의 번제와 우리의 다른 제사와 우리의 화목제로 섬기는 것을 우리와 너희 사이와 우리의 후대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할 뿐으로서 너희 자손들이 후일에 우리 자손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다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말하였거니와 만일 그들이 후일에 우리에게나 우리 후대에게 이같이 말하면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 조상이 지은 여호와의 제단 모형을 보라 이는 번제를 위한 것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한 것도 아니라 오직 우리와 너희 사이에 증거만 되게 할 뿐이라 우리가 번제나 소제나 다른 제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성막 앞에 있는 제단 외에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를 거역하고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려는 것은 결단코 아니라”(22-29).  이 말을 들은 비느하스와 9 ½ 지파의 10명 대표들은 좋게 생각했습니다(30현대인의 성경).  그들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실대로 보고했을 때 9 ½ 지파 백성들은 비느하스와 10명의 대표들의 보고를 듣고 만족하에 여기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2 ½ 지파를 치러 가자는 말을 두 번 다시 입밖에 내지 않았습니다(33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화합과 일치에 관한 말씀을 묵상하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분쟁의 위기를 화합과 일치의 기회로 만들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했을 때 저는 섣불리 행동하지 말고 우선 서로 대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우리가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분쟁의 위기를 화합과 일치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선 우리는 대화의 필요성과 대화의 중요성을 깨닫아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대화를 평화회담이라고도 부르고 싶습니다.  이 평화회담을 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우리는 서로에게 정직하게 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말하되 우리는 상대방의 오해살만한 말이나 행동에 대해 확인 질문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상대방을 충분히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을 향한 오해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왜 그리 말하고 그리 행동했는지를 물어보아야 합니다.  물어보되 우리는 상대방에게 명백한 답변을 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이 왜 그리 말하고 행동을 했는지 상대방의 분명한 목적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 수가 있으며 분쟁의 위기를 화합과 일치의 기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목적과 한 뜻과 한 마음으로(2:2) 성령님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켜 나아갈 수 있습니다(4:3).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인간 관계에서는 항상 분쟁의 요소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서로를 낙심시키는 언행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오해를 살만한 언행이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우리는 상대방의 언행을 섣불리 판단하고 함부러 행동해서는 아니됩니다.  우리는 신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상대방과 만나 대화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직하게 대화해야 합니다.  우리는 올바른 질문을 던져야 하며 또한 질문을 받았을 때 명백하게 답변을 해야 합니다.  답변을 명백하게 하되 우리는 왜 우리가 그리 말하고 행동했는지 분명한 목적을 상대방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 우리는 혹시나 우리가 오해한 부분이 있지 않았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오해한 부분이 있었다면 우리는 대화를 통해 그 오해를 풀고 상대방의 언행의 목적을 분명히 알므로 분쟁의 위기를 화합과 일치의 기회로 만들어 나아가야 합니다.

 

 

 

화합과 일치의 역사를 이루시는 주님께 지혜와 사랑을 구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8 3 19상대방의 언행을 섣불리 판단하고 함부러 말하며 행동하여 분쟁의 위기를 초래하지 않길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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