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잘 것 없는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
“그러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어떻게 할까? 유다야, 내가 너를 어떻게 할까? 너희 사랑이 아침 안개와 같고 일찍 사라지는 이슬과 같구나.”(호세아 6장 4절, 현대인의 성경).
나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수 없이 고백했었는데 ….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나누면서 ‘주님,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나의 사랑을 주님께 고백했었는데 그 사랑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저는 어젯 밤에서야 조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젯 밤 오늘 새벽기도회 읽어야 할 호세아 6장에서 9장까지 읽기 시작하다가 호세아 6장 4절 하반절 말씀에 제 시선이 멈추게 되었습니다: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현대인의 성경) “너희 사랑이 아침 안개와 같고 일찍 사라지는 이슬과 같구나”].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랑이 “아침 안개”와 “쉬 없어지는 이슬”과 같다는 말씀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엔 자기들이 하나님께 수 많은 “제사”와 “번제”(6절)를 드리면서까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할찌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들의 사랑은 “아침 안개”와 “일찍 사라지는 이슬”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아침 안개나 이슬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것인데(약4:14)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랑은 보잘 것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주님을 향한 저의 사랑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첫째 아기 주영이의 짧은 55일의 삶과 그녀의 죽음을 통해서 저로 하여금 주님의 영원하신 사랑을 맛보게 하셨는데(시63:3) 주님을 향한 저의 사랑은 한낱 잠깐 있다가 금방 사라지는 아침 안개와 이슬과 같다고 생각하니 이 얼마나 보잘 것은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인가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주님께서는 주님을 향한 저의 사랑이 이렇게 보잘 것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오늘 본문 호세아 6장 4절 말씀의 문맥 구절들을 읽고 묵상하였습니다. 그 때 저는 금요일 새벽기도회 때 호세아 3장 1절 말씀 중심으로 묵상하고 설교한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다른 신”(1절)인 “바알”(2:8)을 섬기고 “우상에게 제물을 드리는 건포도 빵을 즐”겼던 이스라엘 백성들(3:1,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풀어 주신 축복들을 알지도 못하고 그 축복들인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은과 금”을 바알(우상) 숭배를 위하여 사용하였습니다(2:8,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바알을 사랑하여(13절) 부끄러운 (영적) 음행의 죄를 범하였던 것입니다(5절).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셨는데(3:1)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렸습니다(4:6).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장들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6절, 현대인의 성경). 그 모두가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10절). 오히려 그들은 “창녀짓”을 하여(10절, 현대인의 성경) 자신들을 더럽혔습니다(5:3, 현대인의 성경). 창녀짓을 하되 보통 창녀들은 돈을 받고 창녀짓을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은과 금”을 우상(바알)에게 갔다 받치면서(2:8) 창녀짓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하여금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음란한 마음이 그들 속에 있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5:4). 그래서 그들은 “음란한 정신에 미혹되어 창녀짓을 하고 그들의 하나님을 떠났”습니다(4:12,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우상 바알을 따라가서(2:5, 7)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13절).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끄러운 일을 좋아하였습니다(4:18).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랑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침 안개와 이슬과 같았던 것입니다(6:4).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현대인의 성경)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어떻게 할까? 유다야, 내가 너를 어떻게 할까?”]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4절 상반절, 현대인의 성경).
지금 주님께서는 저에게 ‘제임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저에게 ‘너의 사랑이 아침 안개와 같고 일찍 사라지는 이슬과 같구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는 이 주님의 음성을 통하여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이 참으로 보잘 것 없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깨닫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전처럼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찬양으로나 기도로나 말씀 선포로나 고백하는게 머뭇거리게 되었습니다. 특히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말했다가(마26:35)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사도 베드로를 생각할 때(70, 72, 74절) 제 자신의 혈기로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지 말아야 곘다는 생각입니다. 그 이유는 저는 또 다시 분명히 실패할 것이고 또 다시 주님의 말씀을 불순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인데(요14:21) 말로만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하고 행동으로는 주님의 게명을 지키지 않는(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한낱 아침 안개와 일찍 사라지는 이슬과 같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러한 저에게도 주님께서는 ‘제임스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신다는 것입니다(참고: 21:15-17). 그리고 저는 주님께서 제가 주님을 아침 안개와 일찍 사라지는 이슬과 같은 사랑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을 아시면서도(17절) 저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해 주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습니다(호3:1, 시63:3). 저를 포기하지 못하시고 버리지 못하시는 주님께서는 저를 향한 불쌍하다는 생각이 불불듯 일어나시기에(호11:8, 현대인의 성경) 주님께서는 저의 반역을 고쳐주시고 기쁘게 사랑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14:4). 그러므로 저는 다시는 음란한 마음으로(5:4) 부끄러운 일을 좋아하지 않으면(4:17) 제 마음의 우상과 상관하지 않을 것입니다(8절,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저는 수 많은 종교적인 예식보다 하나님을 힘써 알아가므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인애로 주님을 사랑할 것입니다(6:3, 6). 저는 더 이상 보잘 것 없는 사랑이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주님의 영원한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할 것입니다.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 경배해요 내 영혼 기뻐/ 오, 나의 왕 나의 목소리/ 주님 귀에 곱게 곱게 들리길” 찬양을 진심으로 주님께 찬양할 수 있는 날을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리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6년 9월 17일, 나의 보잘 것 없는 사랑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해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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