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إن «الكلمة» هو يسوع المسيح، الذي خلق الكون كله، وهو موجود منذ الأزل، ومع ذلك جاء إلى هذه الأرض متجسدًا في جسد بشري لكي يخلّصنا.

  إن « الكلمة » هو يسوع المسيح، الذي خلق الكون كله، وهو موجود منذ الأزل، ومع ذلك جاء إلى هذه الأرض متجسدًا في جسد بشري لكي يخلّصنا .       « فِي الْبَدْءِ كَانَ الْكَلِمَةُ، وَالْكَلِمَةُ كَانَ عِنْدَ اللهِ، وَكَانَ الْكَلِمَةُ اللهَ . هذَا كَانَ فِي الْبَدْءِ عِنْدَ اللهِ . كُلُّ شَيْءٍ بِهِ كَانَ، وَبِغَيْرِهِ لَمْ يَكُنْ شَيْءٌ مِمَّا كَانَ . فِيهِ كَانَتِ الْحَيَاةُ، وَالْحَيَاةُ كَانَتْ نُورَ النَّاسِ . وَالنُّورُ يُضِيءُ فِي الظُّلْمَةِ، وَالظُّلْمَةُ لَمْ تُدْرِكْهُ ( ولم تغلبه )» ( يوحنا 1: 1–5).     (1) عندما تأملت اليوم في يوحنا 1: 1–5 ، كان أول ما أردت أن أعرفه بصورة أكثر تحديدًا هو : مَن هو « الكلمة » [ ὁ λόγος (ho logos)] الذي يتحدث عنه الرسول يوحنا، كاتب إنجيل يوحنا؟   (a)   إن « الكلمة » [ ὁ λόγος (ho logos)] الذي يعلنه الرسول يوحنا هنا يشير تحديدًا إلى يسوع المسيح . يستخدم يوحنا كلمة Logos ، وهي كلمة كانت ...

십자가에서 하신 일곱 말씀 (3) (요한복음 19장 25-27절)

십자가에서 하신 일곱 말씀 (3)

 

 

 

[요한복음 19장 25-27절]

 

 

A.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첫 번째 말씀: “…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23:34).

 

B.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두 번째 말씀: “…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23:43).

 

C.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세 번째 말씀: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

   보라 네 어머니라 …”(요19:26-27).

1.              1. (요19: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a.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4명의 여자들과 한명의 남자가 있었음:

(1)  4명의 여자들:

(a)  “그 어머니”(요19:25):

(i)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b)  “이모”(요19:25):

(i)           예수님의 어머님인 마리아의 동생으로서 예수님의 12제자들 중 야고보와 요한의 아버지인 세베대의 아내(마27:56) “살로메”임(막15:40).

·         (마27:56): 막달라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

·         (막15:40): 막달라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c)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요19:25):

(i)           이 여인은 누구인지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음.  여러 가지 설이 있음.  성경 마태복음 10장 2-4절과 마가복음 3장 1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에서 알패오의 아들들이 글로바의 아들들이라는 설이 있음.  즉, 이름 “글로바”와 “알패오”가 동일한 인물이라는 설임.

·         사복음서들을 대조하여보면 작은 야고보와 요세가 글로바의 아들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또 작은 야고보를 알패오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글로바의 다른 이름이 알패오라고 생각할 수 있음(인터넷).

(d)  “막달라 마리아”(요19:25):

(i)           이 여인은 막달라 라는 지방에 사는  마리아로서 일곱 귀신이 들려서 고생을 많이 하다가 예수님께서 고쳐주셔서 예수님을 섬겼던 여인임.

·         (눅8: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e)  이 4명의 여인들은 처음부터 예수님 곁에 있었던 것은 아님(요19:25).  실제로 그녀들은 처음에는 멀리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음(막15:40).

(i)           이렇게 처음에는 멀리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던 이 4명의 여인들이 예수님께서 골고다에 가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 많은 군중을 다 헤치고 지나서 예수님의 십자가 곁까지 가기까지는 쉽지 않았을 것임. 

(2)  한명의 남자:

(a)  이 한 명의 남자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말씀하고 있음(요19:26)[여기서 “제자”란 단어는 단수임].  이 한 제자는 누구일까요?

(i)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들 중에 특별히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사랑하셔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고(막5:37),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셔서 변형되셨을 때에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가셨으며(마17:1-2), 또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을 때에도 8명의 제자들은 동산 입구에 두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데리시고 동산 안으로 들어가셨음(막14:33).

·         이 3명의 제자들 중 오늘 본문 요한복음 19장 2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는 “요한”임.

-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사도 야고보는 이미 헤롯에게 죽임을 당했으므로(행12: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말씀하셔서 야고보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부양할 수가 없었고, 사도 베드로도 아닌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예수님께서 유월절 전에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셔서(요13:1)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면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21절)고도 말씀하셨는데 그 때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워있었을 때 누구를 가리켜 하신 말씀인지 물어보라고 했기 때문임(23-24절).

(3)  그러면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어디에 있었을까요? 

(a)  성경을 보면 베드로는 오늘 본문 요한복음 19장 25절에 나오는 4명의 여인들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있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들처럼 멀리서라도 예수님을 바라보았다(막15:40)는 말씀이 없음.  그 말은 사도 베드로는 아예 거기에 있지도 않았던 것 같음.

(i)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후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하였던 베드로는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예수님을 더욱더 가까이서 따라야 했지 않았을까요?

(4)  우리는 어떻습니까?  과연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서 있나요?  아니면 적어도 예수님을 멀리서라도 바라보고 있어야 하지 않나요?

(a)  우리도 오늘 본문 요한복음 19장 25-26절 나오는 4명의 여인들과 한 명의 남자인 요한처럼 예수님을 가까이 따라가서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있어야 함.

 

2.             2, (요19:26-27)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a.    박윤선 박사님은 여기서 3가지 뜻을 생각했음(박윤선):

(1)  “예수님은 그 최후까지 하나님에게 순종하심에 이어서도 인륜을 잊지 않으셨다.  그는 어머니에게 대하여 하실 바 책임을 다하셨다.  그는, 모친 부양의 책임을 그의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에게 맡기셨다.

(2)  그(예수님)는 자기 어머니를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맡기신 것은, 그의 보다 큰 사명, 곧, 영적 사명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자연에 속한 것들이 모두 다 영에 속한 것을 위하여 수종들어야 할 것을 가르치시는 중대한 교훈이다.

(3)  예수님은 혈육보다 영적 가족을 더 귀히 여기셨다.  그래서 그가 자기 어머니를 동생들보다 사도 요한에게 맡기셨다.  영통은 영원한 것이며 하나님 중심한 것이니 만큼, 그것을 위주할수록 하나님이 가까와진다.”

 

3.               3. 결론:

a.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4명의 여인들과 사도 요한이 있었음.  

(1)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0장 28절의 말씀처럼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고 오셔서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려고(많은 사람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 보혈을 흘려 죽으셨음.

(a)  (롬8:35-37)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i)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해 우리도 4명의 여인들과 사도 요한처럼 끝까지 예수님의 곁에 있어야 함.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죽음)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함.

·         그러므로 우리 주님 영광의 옷 입고 문 열어 주실 때 우리 주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히 살아야 함(새찬송가 87장 “내 주님 입으신 그 옷은” 4절).

 

 

[2022년 3월 2일, 원로 목사님의 설교를 요약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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