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서 하신 일곱 말씀 (3)
[요한복음 19장 25-27절]
A.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첫 번째 말씀: “…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23:34).
B.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두 번째 말씀: “…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23:43).
C.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세 번째 말씀: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
보라 네 어머니라 …”(요19:26-27).
1. 1. (요19: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a.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4명의 여자들과 한명의 남자가 있었음:
(1) 4명의 여자들:
(a) “그 어머니”(요19:25):
(i)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b) “이모”(요19:25):
(i)
예수님의
어머님인 마리아의 동생으로서 예수님의 12제자들 중 야고보와 요한의 아버지인 세베대의 아내(마27:56) “살로메”임(막15:40).
·
(마27:56): 막달라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
·
(막15:40): 막달라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c)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요19:25):
(i)
이
여인은 누구인지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음. 여러 가지 설이 있음. 성경 마태복음 10장
2-4절과 마가복음 3장 1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에서 알패오의 아들들이 글로바의 아들들이라는
설이 있음. 즉, 이름 “글로바”와 “알패오”가 동일한 인물이라는 설임.
·
사복음서들을
대조하여보면 작은 야고보와 요세가 글로바의 아들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또 작은 야고보를 알패오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글로바의 다른 이름이 알패오라고 생각할 수 있음(인터넷).
(d) “막달라 마리아”(요19:25):
(i)
이
여인은 막달라 라는 지방에 사는 마리아로서 일곱 귀신이 들려서 고생을 많이
하다가 예수님께서 고쳐주셔서 예수님을 섬겼던 여인임.
·
(눅8: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e) 이 4명의 여인들은 처음부터 예수님 곁에 있었던
것은 아님(요19:25).
실제로 그녀들은 처음에는 멀리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음(막15:40).
(i)
이렇게
처음에는 멀리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던 이
4명의 여인들이 예수님께서 골고다에 가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 많은 군중을 다 헤치고 지나서 예수님의 십자가
곁까지 가기까지는 쉽지 않았을 것임.
(2) 한명의 남자:
(a) 이 한 명의 남자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말씀하고 있음(요19:26)[여기서 “제자”란 단어는 단수임]. 이 한 제자는 누구일까요?
(i)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들 중에 특별히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사랑하셔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고(막5:37),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셔서 변형되셨을 때에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가셨으며(마17:1-2), 또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을
때에도 8명의 제자들은 동산 입구에 두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데리시고 동산 안으로 들어가셨음(막14:33).
·
이 3명의 제자들 중 오늘 본문 요한복음 19장 2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는 “요한”임.
-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사도 야고보는 이미 헤롯에게
죽임을 당했으므로(행12: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말씀하셔서 야고보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부양할 수가 없었고, 사도 베드로도 아닌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예수님께서 유월절 전에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셔서(요13:1)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면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21절)고도 말씀하셨는데 그 때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워있었을 때 누구를 가리켜 하신 말씀인지 물어보라고 했기 때문임(23-24절).
(3) 그러면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어디에 있었을까요?
(a) 성경을 보면 베드로는 오늘 본문 요한복음 19장 25절에 나오는 4명의 여인들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있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들처럼 멀리서라도
예수님을 바라보았다(막15:40)는 말씀이 없음. 그 말은 사도 베드로는 아예 거기에 있지도 않았던 것 같음.
(i)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후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하였던 베드로는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예수님을 더욱더 가까이서 따라야 했지 않았을까요?
(4) 우리는 어떻습니까?
과연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서 있나요? 아니면 적어도 예수님을 멀리서라도 바라보고 있어야 하지 않나요?
(a) 우리도 오늘 본문 요한복음 19장 25-26절 나오는 4명의 여인들과 한 명의 남자인 요한처럼 예수님을 가까이 따라가서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있어야 함.
2. 2, (요19:26-27)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a. 박윤선 박사님은 여기서 3가지 뜻을 생각했음(박윤선):
(1) “예수님은 그 최후까지 하나님에게 순종하심에
이어서도 인륜을 잊지 않으셨다. 그는
어머니에게 대하여 하실 바 책임을 다하셨다. 그는, 모친 부양의 책임을 그의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에게 맡기셨다.
(2) 그(예수님)는 자기 어머니를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맡기신 것은, 그의 보다 큰 사명, 곧, 영적 사명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자연에 속한
것들이 모두 다 영에 속한 것을 위하여 수종들어야 할 것을 가르치시는 중대한 교훈이다.
(3) 예수님은 혈육보다 영적 가족을 더 귀히 여기셨다. 그래서 그가 자기 어머니를 동생들보다 사도 요한에게 맡기셨다.
영통은 영원한 것이며 하나님 중심한 것이니 만큼,
그것을 위주할수록 하나님이 가까와진다.”
3. 3. 결론:
a.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4명의 여인들과 사도 요한이 있었음.
(1)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0장 28절의
말씀처럼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고 오셔서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려고(많은 사람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 보혈을 흘려 죽으셨음.
(a) (롬8:35-37)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i)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해 우리도 4명의 여인들과 사도 요한처럼 끝까지 예수님의 곁에 있어야 함.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죽음)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함.
·
그러므로
우리 주님 영광의 옷 입고 문 열어 주실 때 우리 주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히 살아야 함(새찬송가 87장 “내 주님 입으신 그 옷은” 4절).
[2022년 3월 2일, 원로 목사님의 설교를 요약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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