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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11)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11)       두기고와 오네시모의 두 번째 공통점은 그들은 신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 골 4:7, 9).   흥미로운 점은 바울은 골로새 교 회 성도들에게 마지막 문안 인사를 하면서 신실한 사람들인 두기고와 오네시모를 언급하였는데 , 시작 인사를 보면 그는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 ” (1:2) 하고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에바브라는 그들을 위한 “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 ”(7 절 ) 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   여기 골로새서 1 장 2 절에서 “신실한 형제들”이란 말을 현대인의 성경은 “그리스도를 믿는 형제들”이라고 번역을 했 는 데 여기서 “신실한 형제들”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해 서 신실하게 믿는 형제들입니다 .   “신실한 형제들”이란 (1) 믿음이 충만한 자들이요 (full of faith), (2) 신뢰하는 사람들 (trustful) 이요 , 또한 신뢰할 만한 사람들 (trustworthy) 로서 (3) 그리스도에게 충성된 자들 (loyal to Christ) 입니다 (KJV 성경 주석 ).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은 그리스도에게 충성된 자들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들 입니다 ( 계 1:5). 그들은 흠 없이 정직하게 주님을 따르며 ( 시 101:6), 지극히 작은 것에도 충성하며 ( 눅 16:10), 죽도록 충성하여 ( 계 2:10) 주님 앞에서 설 때에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다는 주님의 칭찬 ( 눅 19:17) 과 더불어 주님께로부터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사람들입니다 ( 계 2:10).      

혐생·이생망 등 청년들의 자기 비하 언어

혐생·이생망 등 청년들의 자기 비하 언어 중앙일보 입력 2019.03.29 14:00 “입사하면 뭐해 나는 여전히 쓰레기인 걸” 경직된 사회 구조에 짓눌려 자신감 결여… ‘자기 개념(개인이 형성한 자아)’ 설정도 실패 자신이 처한 상황을 풍자함으로써 일시적이나마 고통에서 벗어나는 심리 ‘쓰레기’ ‘혐생’ 등 자신을 냉소하는 듯한 20대 언어습관은 이들이 마주한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취업하니까 좀 어때요?” “응, 여전히 ‘쓰레기’지 뭐.” 서울에 사는 50대 직장인 P씨는 퇴근길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젊은이들의 대화를 얼핏 듣고는 귀가 솔깃했다. 직장에 다니는 듯 말쑥한 정장 차림의 20대 중후반의 청년이 학교 후배들로 보이는 청년들에게 자신을 ‘쓰레기’에 비유했던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이 말을 들은 쪽의 반응이었다. “형, 그렇죠? 우리도 나중에 취업하면 쓰레기겠죠~.” 평소 그래왔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표현했다. P씨의 눈에 이들은 어디를 봐도 ‘쓰레기’ 삶을 사는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호기심이 동한 그는 그들의 대화에 귀를 더 쫑긋했다. 이들 청년들은 ‘쓰레기’, ‘노답’, ‘혐생’ 등 대화 내내 자신의 현재와 다가올 미래를 우울하게 그려내기에 바빴다. 역대급 취업난 속에서도 번듯한 기업에 들어갈 정도로 능력 있고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가 이런 식으로 스스럼없이 자신을 깎아내리는 모습에서 P씨는 요즘 20대가 가진 좌절과 분노의 정서를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됐다고 했다. “우리 때는 힘들어도 일부러 내색하지 않고 자존심을 세웠는데 요즘 청년들은 자신들이 밑바닥 인생임을 서로 인증하지 못해 애쓰는 듯해 보였다. ‘취업=쓰레기’가 되는 세상에서 젊은이들은 어떤 희망도 품기 어려울 듯했다.” 실제로 20대들의 언어생활에서 혐생(혐오스러운 생), 노답(답이 없는 사람) , 이생망(이번 생애는 망했다)에서 ‘쓰레기’까지 자신을 냉소하는 듯한 단어가 해마다 새로이 등장한다.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2017년도,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