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한 자를 고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장인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행인을 고용함과 같으니라” [(현대인의 성경) “미련한 자나 지나가는 사람을 고용하는
자는 닥치는 대로 활을 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궁술가와도 같다”] (잠언 26장 10절).
여러분들도 알고 계실테지만 한국 양궁이 전세계에서 알아줄 정도로 잘합니다. 특히 여자 양궁은 1984년 올림픽부터 2004년 올림픽까지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석권한바다 있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로 한국 양궁 선수가 잘하냐면 몇몇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 선수가 쏜 화살이 표적 정 중앙에 있는 설치된 카메라를 박살내었을
정도라고 합니다(인터넷). 만일 그정도의 실력있는
사람이 닥치내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활을 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늘 본문 잠언 26장 10절을 보면 잠언 기자는 미련한 자나 지나가는 사람을 고용하는 자는 마치 닥치는 대로 활을 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궁술가와도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미련한 자나 지나가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치명적이다
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어느 누가 궁술가가
지금 닥치는데로 활을 쏘고 있는데 그 화살을 맞으려고 하겠습니까. 당연히 화살을 맞지
않고자 피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이 치명적임을 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6절에서
배웠듯이 미련한 자 편에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은 자기 다리를 자르는 것과 스스로 독을 마시는 것처럼 치명적입니다. 이렇게 미련한 자 편에 소식을 저하는 것이나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스스로 해를 끼치는 치명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어느 단체에서나 사람을 고용하려고 할 때 원서를 써 내는 사람들에게 이력서를 써서 내라고 하지 않나요? 그러면 그 단체에서 사람 고용하는 담당자가 그 단체에 지원한 사람의 원서와 이력서 등을 보고 이 사람을 고용할 것인지 안할 것인지
판단해서 결정하지 않겠습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력서를 써서 내면 당회에서나 청빙위원회에서 그것을 본 후 관심이 있으면 인텨뷰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렇게 하는 이유는 한 사람 교회에 잘못 들어오게되면
교회에 큰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기억납니다. 몇년 전에 동부 어느 교회에서 장로님들 몇분이 저희 교회 찾아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아는 여기 남가주에 살고 있는 목사님이 그 동부에 있는 교회 담임 목사 이력서 등을 내었는데 그 목사님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저까지 만나러 동부에서 비행기 타고들 오신 것입니다. 그 정도로
어느 교회들은 꼼꼼하게 목사님을 청빙할 때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상상이
되십니까? 교회 청빙위원회가 담임 목사를 청빙하려고 하는데 그냥 아무나 길가게 지나가는
사람이 목사라면 자기들이 섬기는 교회에 담임 목사로 청빙하겠습니까? 만일 그렇게 하면
그 교회는 어찌 되겠습니까? 콩가루 교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2011년 3월에 사사기 17장 1-2절과 18장 19절 중심으로 “콩가루 집안, 콩가루 교회”란 제목 아래 말씀 묵상을 한 것이 생각나서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여기서 “콩가루 집안”은 바로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의 집안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콩가루 교회”란 콩가루 지파인 단 지파를 생각하고 그렇게 제목을 적어본 것입니다. 제가 미가 집안이 콩가루 집안이었다고 말한 이유는 미가의 어머니는 어머니의 소견대로 아들이 자기의 은 1100을 도덕절했다가 어머니에게 저주를 받을까봐 다시 그녀에게 돌려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어머니는 미가가 복받기를 원하였습니다(17:2). 아니, 어떻게 도덕질한 아들을 면책하지 않고 하나님께 복받기를 원한다고 축복을 빌어줍니까. 이해가 안되는 어머니입니다. 더 이해가 안되는 것은 미가의 어머니는 자기의
아들에게 돌려받은 은 일천 일백을 하나님께 거룩히 드린다고 하면서 아들을 위하여(3절) 은 이백을 은장색에게 주어서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만들게 하여(4절) 아들에게 줍니다(3-4절). 참 어이가
없는 어미의 행동입니다. 아들 미가는 어떻습니까? 그는 어머니로 부터 받은 그 신상을 자기의 집에 두었습니다(4절). 놀라운 것은 어머니로 부터 “내 아들아 여호와꼐 복받기를 원하노라”는 축복을 받은 미가에게는 신당(a shrine or house of gods)까지 있었습니다(5절). 이렇게 어머니나 미가나 다들 자기 멋대로 했습니다. 이게 콩가루 집안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단 지파를 콩가루 지파라고
생각한 이유가 있습니다. 미가는 대제사장이 입는 에봇을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드라빔이라는 우상도 만들어 가지고 있었습니다(5절). 그런데 그는 심지어 유다 베들레헴에 한 레위 소년(7절)이 거할 곳을 찾고자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미가의 집에 왔을 때(8절) 미가는 그에게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식물을 주”겠다고 약속하여 그 레위 소년을 자기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으로 삼습니다(10절). 그리고 나서 미가는 이제 레위인이 자기의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고말합니다(13절). 그러다가 단 지파가 라이스란 땅(18:7)을 기업으로 삼고자 자기 온 가족 중 용맹있는 다섯
사람들을 보냅니다. 그들은 그 땅을 살펴보고 돌아와 단 자손 육백 명을 데리고 다시 미가의 집에
이르러(13, 15절) 그 집에 들어갑니다(17절). 그리고 그들은 미가의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취한 후(17절) 레위 소년에게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 한 지파, 한 가족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어느 것이 낫겠느냐”(19절)고 말합니다. 그 때 그 레위
제사장은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취하고 그 백성(단지파) 중으로 들어”갔습니다(20절). 그
결과 단 지파는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콩가루 지파입니다.
저는 이것이 지금 현시대의 많은 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문제는 우리 목사들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자격 미달의 사람들이 목사가 되는게 큰 문제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생각해 볼 때 신학교에서 제대로 검증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라 생각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유령 신학교들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신학교들은 신학교 운영을 위하여 재정 압박 속에서 질적으로 자격이 너무나 미달되는 사람을 신학교에 입학하게 허락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북쪽 이스라엘 왕 여로보함이 그리했습니다. 그는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왕상13:33). 이와 같이럼, 지금 여러 신학교에서는 누구든지 지원하면 대충 시험 보아서 신학교에 입학 허가해서 신학 공부를 하도록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염려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6장 10절에서 성경은 “미련한 자나 지나가는 사람을 고용하는 자는 닥치는 대로 활을 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궁술가와도 같다”(현대인의 성경)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미련한
자나 지나가는 사람을 고용하는 자는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잠언 기자는 “닥치는 대로 활을 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궁술가와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만큼 미련한 자와 일꾼의 자격도 알아보지 않고 아무나 채용하는 것은 치명적이다는 말입니다(박윤선). 만일 회사에서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자들이 미련한 자나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고용한다면 그 회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한 그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일 교회에서 청빙위원회가 미련한 목사를 담임 목사로 청빙하면 그
교회와 성도님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박윤선 박사님은 오늘 본문 잠언 26장 6-10절에 근거하여 “미련한 교역자”에
대해서 한 4가지로 말하였습니다: (1) 쳣째로, 미련한 교역자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입니다(시14:1). 이렇게 하나님을 모르는 미련한 교역자는 영감은 받지 못하고 인간적인 기계적 지식에서만 생각합니다.
(2) 둘째로, 미련한 교역자는 죄를 심상히 여깁니다(잠14:9). 이렇게 죄를 가볍게 여기는 미련한 교역자는 피 흘리기까지
죄를 대적하지 않습니다(히12:4). (3) 셋째로, 미련한 교역자는 책망을 듣기 싫어합니다(잠1:20-33). 성경은 책망을 귀하게 여기는데 미련한 교역자는 그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참고: 잠27:5-6). (4) 마지막 넷째로, 미련한 교역자는 영혼(내세)을 위하여 준비하지 않습니다(눅12:16-21). 미련한 교역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생 뿐입니다(고전15:19). 잠언에서는 이러한
미련한 자는 징계의 대상이라고 거듭거듭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잠19:29);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재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26:3).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인터넷
페이스 북 CEO 마크 저커버그가 직원을 고용할 때의 단 한 가지 원칙을 공개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나는 나를 위해 직접 일해 줄 사람만을 고용할 것이”다(I will only hire someone to work directly for me)라고 합니다. 이어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팀을 가능한 한 작게 만드는 것”이라면서 “페이스북은 전세계 수십억의
인구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우리 팀은 1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은 현대 기술 덕분에 가능한 것”이라면서 “큰 회사는 거품이 낀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인터넷). 여러분, 만일 여러분이 한 회사에 고용주라면 사람을 고용함에 있어서 오늘 잠언 26장 10절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시겠습니까? 저는 한 두 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첫째로, 우리는 사람을 고용할 때 될 수 있는데로 철저하게 검증을 해야 합니다. 아는 사람을 통하여 소개를 받았다 할찌라도, 추천한 사람을 우리는 잘 아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 지원자를 꼼꼼히 잘 살펴보고 점검해 봐야 합니다. (2) 둘째로, 우리는 미련한 자를 고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지혜로운 자를
고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 성품인 진실되고 신실한 자, 등등 이러한 자를 고용해야 합니다.
미련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5년 6월 3일, 지혜로운 목사로 세움 받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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