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은혜를 누리는 자가 가장 위험할 수 있습니다 . “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 누가복음 10:13-16).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0 장 13-16 절 말씀을 병행 구절인 마태복음 11 장 20-24 절 말씀과 함께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 (a) 첫째로 , 예수님께서는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셨습니다 ( 마 11:20). (i) 예수님은 70 인의 제자를 파송하시면서 이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어느 고을 ( 마을 ) 들보다도 가장 권능을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않으므로 그 고을 사람들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 · 여기서 예수님께서 가장 권능을 ...
육신의 거리를 두는 것이 마음의 거리를 두는 것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 다윗에게 진심을 용서를 받지 못했던 아들 압살롬 , 그는 아버지 다윗의 얼굴을 5 년 동안이나 보지 못했습니다 [ 도망하여 3 년은 그술에서 ( 삼하 13:38) + 돌아온 예루살렘에서 2 년 (14:23-24, 28)].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보고 싶어서 노력을 했습니다 (29-32 절 ). 그가 요압에게 한 말을 들어보십시오 : " 어찌하여 내가 그술에서 돌아오게 되었나이까 이 때까지 거기에 있는 것이 내게 나았으리이다 "(32 절 ). 압살롬의 심정은 자신을 진심으로 용서하지 않는 아버지 다윗의 얼굴도 2 년 동안이나 보지 못하면서 예루살렘에 사는 것보다 오히려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도망가 3 년 동안 그술에서 살았던 것이 더 좋았던 것입니다 . 한 지붕 아래 함께 살면서 가족이 서로 용서하시 않고 마음의 거리를 두고 사는 것보다 육신의 거리를 두고 살면서 마음으로 서로 간절히 그리워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13:3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