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 라며 영적 파산을 선언할 때 , 하나님은 낙타 같은 죄인을 바늘귀로 통과시키시는 구원의 기적을 행하십니다 . “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 누가복음 18:24-27).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8 장 24-27 절 말씀을 한국어 성경으로 읽은 후 헬라어 성경으로 읽을 때 제일 먼저 한국어 성경으로는 번역되지 않은 “ ὁ Ἰ ησο ῦ ς [περίλυπον γενόμενον]”( 호 이에수스 [ 페릴뤼폰 게노메논 ]) 라는 문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이 문자의 의미는 무엇이고 왜 한국어 성경책에는 번역되지 않은 것일까요 ? 1. 문장의 의미 분석 이 문장은 두 단어로 나뉘어 문자 그대로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집니다 . “ ὁ Ἰ ησο ῦ ς”( 호 이에수스 ): ' 예수께서 ' ( 주어 ) “περίλυπον γενόμενον”( 페릴뤼폰 게노메논 ): ' 매우 슬퍼하시며 ' 또는 ' 근심에 싸이신 채 ' ( 분사구문 ) “περίλυπος”( 페릴뤼포스 ) 는 ' 주위에 ' 를 뜻하는 ' 페리 (περί)' 와 ...
“너는 다시 가서 간음한 네 아내(남편)를 사랑하라.”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에게 “ 너는 다시 가서 간음한 네 아내를 사랑하라 ” 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에게 제물 ” 을 드리는 영적으로 간음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 여전히 ” “ 사랑하 ” 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에게 “ 나 여호와가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너도 네 아내를 사랑하라 ”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 호세아 3:1,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마태복음 5 장 31 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 “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 누구든지 음행한 일도 없는데 자기 아내와 이혼하는 사람은 아내로 간음하게 하는 자이며 이혼한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도 간음하는 자이다 ”( 현대인의 성경 ). 이 말씀이 생각난 이유는 아마도 이 말씀이 주로 우리가 생각하는 이혼의 합당한 사유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 즉 , “ 부부 중 한 사람이 혼외정사를 저질렀다면 그는 혼인서약을 파기한 것이므로 결혼관계도 이미 파기된 것 ”( 인터넷 ) 이기에 이혼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그런데 신랑되신 주님께서는 계속 반복적으로 영적으로 간음하는 , 그래서 주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 참고 : 마태복음 6:24; 누가복음 16:14) 신부된 교회인 우리를 “ 여전히 ” “ 사랑하 ” 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 호세아 3:1, 현대인의 성경 ). 우리는 신실하지 못하더라도 , 주님은 언제나 신실하십니다 . 주님은 자기를 부인할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 디모데후서 2:13,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