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짧은 말씀 묵상
다른 아들들보다 요셉을 특별히 사랑하여 화려하게 장식한 긴 겉옷을 만들어
입혔던 아버지 야곱(창세기 37:3, 현대인의 성경)은 염소의 피에 적신 그 화려하게 장식한 요셉의 긴 겉옷(23, 31절, 현대인의 성경)을 보고 요셉이 맹수에게 찢겨 죽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통곡하며 오랫동안 아들의 죽음을 슬퍼했었습니다(33-34절,
현대인의 성경). 그의
모든 자녀들이 그를 위로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내가 슬퍼하다가
저 세상에 있는 내 아들에게 가겠다" 하고 계속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었습니다(35절,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그가 약 22년 만에[이 떄가 요셉의 나이가 17살이었는데(2절) 그가 30살 때
애굽의 총리가 되었으며(41:46) + 7년 풍년(29절) + 2년 동안 흉년(45:6) = 39세이었으니가 39세 - 17세 = 22년] 특별히 사랑하였던 요셉을 이집트에 내려와서 직접 본 것입니다. 그 때 야곱은 요셉에게 이리 말했습니다:
"네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46:30,
현대인의 성경). 특별히
사랑하는 아들을 죽은 줄만 알고 약 22년을 지냈다가 살아있는 얼굴을 직접 보았으니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저는 2가지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1) 내가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2) 나는
죽어서라도 사랑하는 주님의 얼굴을 직접 보고 싶습니다.
기근이 더욱 심하여 온 땅에 양식이 없어서 이집트와 가나안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쇠약해 가고 있었을 때 요셉의 아버지
야곱과 요셉의 형제들은 이집트에서 제일 좋은 땅에 거주하면서 요셉이 공급하는 양식으로 인해 모든 가족들이 굶주림으로 쇠약해 가지 않았습니다(창세기 47:11-13, 현대인의 성경). 오히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의 고센
땅에 살면서 재산을 모으고 번성하여 많은 자녀를 낳았습니다(27절, 현대인의
성경). 다들 궁핍함으로 쇠약해
가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사 오히려 풍부케 하십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아들 요셉과 17년을 함께 가나안 땅에서 살다가 원치
않게 헤어져서(창세기 39:2ff) 약 22년을 떨어져 살다가 야곱의 나이 130세 때 요셉과 이집트에서
재회하여(47:9) 함께 17년을 살다가 야곱은 그의 나이 147세가 되어 죽었습니다(28절).
결국 야곱은 특별히 사랑하는 요셉과 34년 밖에 함께 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33년 밖에 사시지 못하고 죽으셨습니다. 그 33년 중에 제자들 하고는 3년
밖에 함께하지 않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가 살아났고 또한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울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죽은 후 요셉의 형제들은 "만일 요셉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앙심을 품고 우리가 그에게 행한 일에 대하여 복수를 한다면 어떻게 할까?"하고 요셉에게 이렇게
전갈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당신에게 이런 말을 전하라고 우리에게
지시하셨습니다. 네 형들이 너에게
악한 짓을 했을지라도 이제 너는 그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라. 그러니 이제 당신도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창세기 50:15-17,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오빠 나사로로 인해 마리아가
울고 또 그녀와 함께 온 유대인들까지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나사로)를 더이 두었느냐?하고
물으셨고 그들이 "주님, 와서 보십시오"하자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요한복음 11:33-35, 현대인의 성경). 성경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로마서 12:15).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에게 전갈만 보낸 것이 아니라 직접 와서 요셉 앞에 엎으려
"우리는 당신의 종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 간곡한 말로 그들을 위로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셔서 오늘날
내가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형님들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형님들과 형님들의 자녀들을 보살펴 주겠습니다"(창세기 50:18-21, 현대인의 성경). 아버지 야곱이 죽었으므로 동생 요셉이
앙심을 품고 자기들에게 복수할 까봐 두려워했던 요셉의 형제들에게 요셉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 형님들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한다. 놀라지 말아라. 나는 너희 하나님이다. 내가 너희를 강하게 하고 도와주며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겠다." 요셉은 자기를 해치려고 했던
자신의 형님들을 소극적으로 용서만 한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형님들과 형님들의 자녀들을 그가 110세에
죽기 전까지 보살펴 줬습니다(22, 26절). 이렇게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은 요셉을 해치려고
했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셔서 요셉으로 하여금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요셉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기에(시편 34:8) 그의 형제들을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죽기까지 보살펴줬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면 우리를 해하려고 했던 사람을 용서할 수 있고 사랑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여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이르게 하실 줄 믿었습니다(창세기 50:24,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확신 성경 말씀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지식을 의지하지 말아라. 너는 모든 일에 여호와를 인정하라. 그러면
그가 너에게 바른 길을 보이실 것이다"(잠언 3:5-6, 현대인의
성경).
기독교인들이 학대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 많이 번성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어떻게 이단들이 학대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 많이 번성하고 있는 듯한 것인지요? 어쩌면 지금 우리 기독교인들이 학대를
받기보다 대접을 더 많이 받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요? (참고: 출애굽기 1:12)
우리의 생활을 괴롭히면
괴롭힐 수록 우리는 더 많이 번성하며 더 막강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돼야 하지 않나요? (참고: 출애굽기 1:7, 11-13,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괴롭힘과
학대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 많이 번성케하시사 우리를 괴롭히며 학대하는 자들로 하여금 우리를 두려워하게 하십니다(참고: 출애굽기 1:12, 현대인의 성경).
이집트 사람들은 학대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 많이 번성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두려워한 반면에 히브리 산파인 십브라와 부아는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출애굽기 1:12, 15, 17,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의 명령을 듣고 그 명령대로 행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참고: 출애굽기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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