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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s love, which is stronger than death, is causing me to continue walking the path of the mission the Lord has given me (John 6:1–15).

God’s love, which is stronger than death, is causing me to continue walking the path of the mission the Lord has given me (John 6:1–15).             “At that very time some Pharisees came and said to Him, ‘Leave this place and go somewhere else. Herod wants to kill You.’   He replied, ‘Go tell that fox, “I will keep driving out demons and healing people today and tomorrow, and on the third day I will reach My goal.”   In any case, I must press on today and tomorrow and the next day—for surely no prophet can die outside Jerusalem!   Jerusalem, Jerusalem, you who kill the prophets and stone those sent to you, how often I have longed to gather your children together, as a hen gathers her chicks under her wings, and you were not willing.   Look, your house is left to you desolate.   I tell you, you will not see Me again until you say, “Blessed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Luke 13:31–35).     ...

반드시 진실하신 구원의 하나님께서는 ...

반드시 진실하신 구원의 하나님께서는 ...





모세의 입장에서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의 이름으로 이집트 왕 바로에게 가서 말을 했는데 그때부터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더욱 학대하였으므로 하나님께 나아가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1) "여호와여, 어째서 이 백성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셨습니까?" (2) "무엇 때문에 나를 보내셨습니까?" (3) "내가 바로에게 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그때부터 그가 더욱 이 백성을 학대하는데도 주께서는 주의 백성을 전혀 구해 주지 않으셨습니다"(출애굽기 5:22-23, 현대인의 성경).  (1) 왜 하나님께서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신 것일까요? (2) 왜 하나님은 나를 그 고통을 당하는 지체들에게 보내신 것일까요?  (3) 왜 하나님께서는 그 고통 당하는 형제, 자매들을 그 고통속에서 건져 주시지 않고 계시는 것일까요?  이러한 "?"라는 질문들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원망하게 하는 죄를 범하게 할 위험이 참 많습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구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우리는 하나님은 "누구?"이신가?라는 질문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선하시기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고통 당하는 것을 허락하신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신 뜻이 있을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 안에 우리가 포함이 되어서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은혜요 특권입니다.  반드시 진실하신 구원의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보다 하나님께서 친히 사랑하는 고통당하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건져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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