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하시고 나에게 인자를 더하사
나를 범사에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창세기 39장 21-23절).
오늘 토요일 아침 새벽기도회 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다가 하나님께서 저의 18년
목회 가운데 함께하셨고, 인자를 더하셨으며 저를 범사에 형통케 하셨다는 마음이 들어 그리 설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혼자 기도의 시간을 가질
때 지난 18년 동안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면서 먼저 주님의 품 안에 안기신 성도님들이 생각났습니다. 추억 속에서 눈물 가운데 보고 싶은 마음과
그리움이 앞섰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오늘 본문 창세기 39장 21-23절 말씀에 제 자신
목회뿐만 아니라 저의 약 55년 인생도 뒤돌아보는 기회로 삼고자 이 말씀 묵상의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항상 저와 함께 하셨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12년
사는 동안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것은 아마 그 때 제 나이가 한 10살이나 11살 됐었던 것 같은데 제가 꿈 속에서 너무나 무서운 꿈을 꿔서 자다 깨서 집 밖으로만 뒤쳐 나간 것이 아니라
교회 뜰 문 밖으로 뛰쳐나간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님이 저를 따라 뛰어나오셔서 저를 데리고 집 안으로 데리고 가서 주무시던 방에서 저를 안고 함께 잔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12살 때 부모님 따라 미국에 이민 와서
국민(초등)학교를 다시 들어갔을 때 첫 날 밤을 눈물을 흘리면서
방에서 혼자 보낸 기억도 어렴풋이 납니다.
그 때 왜 그리도 혼자 울었냐면 학교 선생님이 그 다음 날에 영어 단어 20를
시험 본다고 해서 외우느라 울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학교 1학년 말 때부터 인가는 주말바다 혼자서 교회에서 자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나 외로워서 복음성가 책 뒤에 나와있는
기타 코드를 보고 스스로 기타치는 법을 배워서 본당에서 혼자 앉아 기타를 치면서 하나님께 찬양을 수 없이 드렸던 생각도 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2003년
12월 21일부터 승리장로교회 담임 목사로 섬기기 시작하면서
새벽기도회 후에 항상 목양실에 혼자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원했던 사역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것은 혼자 있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게
하시고 묵상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혼자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 듣기 훈련을 시키신 것 같습니다. 지금 뒤돌아보면 주님께서는 저를 광야에서 주님과 교제하는 훈련을 시키셨다고
생각합니다. 오아시스와 같은 생명의
말씀을 성령님께서 묵상케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교훈을 주시면서 저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곤 했습니다. 요셉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는 늘 저와 함께하셨습니다. 이렇게 저와 항상 함께하시고 동행하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즐겨 부르던 이 찬송가 가사가 생각났습니다: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새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1절과 후렴).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제가 힘들었을 때 인자를 더하셨습니다.
지난 날을 뒤돌아볼 때 목회 가운데 많이 힘들었던 것은 교회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을 떠나보내는 것이었습니다. 노인 아파트에서 사시다가 더 이상 혼자
사시기가 힘드시므로 양로원으로 옮기셔서 사시다가 떠나신 분들도 계시고, 집이나 아파트에 계시다가 떠나신
분도 계시며 호스피스에서 편안히 잠드신 분도 계십니다.
주님께서 저로 하여금 부족하나마 주님의 사랑으로 그 분들 한 분 한 분을 섬기게 하시사 이 땅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주님
안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심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저에게 죽음의 관점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믿음으로 그 많은 슬픔과 눈물을 견뎌내게 하시고 마침내
극복케 하시사 그 와중에서도 그 성도님들 한 분 한 분과 주님 안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으로 제 마음에 그리움을 깊이 심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잠드심을
통해서도 저에게 주님의 인자를 더하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것은 물론 첫째 아기 주영이의 죽음과 딸 아이가 우울증으로 고생했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참 회안하고 놀랍고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은 그 때 그 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첫째 아기 주영이의 경우는 의사 선생님이 저에게 ‘아기를 빨리 죽게 하겠느냐 천천히 죽게 하겠느냐?’고 질문했을 때
천천히 죽게 해달라고 부탁을 드린 후 그 다음 날 아침 평소 하던 대로 성경을 읽다가 시편 63편 3절 말씀을 읽는데 ‘주님의 영원한 사랑이 주영이의 55일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라고 적용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내하고 그
말씀을 나누고 대화한 후 주영이를 빨리 죽게 하는 것으로 결정을 하고 병원에 통보한 후 부모님과 형 부부와 여동생과 다 함께 중환자실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후 제 품안에서 고이 잠들었습니다.
그 후에 아기를 화장하여 아내와 함께 뼛가루를 물에 뿌리고 육지로 돌아올 때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나의
구원자의 사랑을 찬양케 하셨습니다: “… How
marvelous, How wonderful And my song will ever be How marvelous, How wonderful
Is my Saviour's love for me”[아,
놀랍고 아, 크셔라! 내 노래 다 못 담아 아, 놀랍고
아, 크셔라! 날 위한 구주의 사랑”(영어
복음 성가 “I Stand Amazed” 1절과 후렴]. 제 인생의 큰 위기 가운데 하나님의 크신 인자하심을 많이, 깊게, 넓게, 높게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요셉에게
인자를 더하신 하나님께서는 저에게도 하나님의 인자를 더하시사 하나님을 찬양케 하셨습니다. 또 딸아이의 경우도 우울증으로 시달리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하나님을 찾게 하셨는데 그 때에도 성경을 읽다가 베드로전서 5장 10절
말씀으로 약속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얼마 동안 여러분이 고난을 겪고 나면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불러 영원한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하신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 여러분을 친히 완전하게 하시고 굳세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며 튼튼하게 세워 주실 것입니다”(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영어로 읽다가 “after you have suffered a
little while, will himself restore you and make you strong, firm and steadfast”라는
말씀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딸을 얼마 동안(짧은 기간 동안) 고난을 겪고 나면
분명히 친히 회복(restore)시켜 주셔서 그 딸 아이를 “strong,
firm and steadfast”(굳세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며 튼튼하게 하실 것이다)라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 때부터
성령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주님께 간구케 하시므로 먼저 저를 회복시켜 주셨고 또한 저를 굳세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며 튼튼하게
하시면서 사랑하는 딸도 그리하셨습니다. 그
때 뿐만 아니라 지금도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딸을 굳세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며 튼튼하게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그녀는 주님 안에서 견고히 서서 주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제 삶과 목회 가운데
힘든 속에서도 인자를 더하시사 견뎌내게 하셨고 마침내 승리케 하셨습니다.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저를 범사에 형통케 하셨습니다.
새 찬송가 384장 “나의 갈길 다 가도록” 2절 가사입니다: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한때도 족한 은혜주시네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나게 하시네.” 제가 이 찬양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저희 교회 고 안덕일 전도사님이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이 찬송가를 하나님께 찬양 드렸을 때였습니다. 비록 전도사님은 어려운 일을 당하고 계셨지만 하나님께서 족은 은혜를 내려주시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찬양케 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이 찬송가를 부를 때마다 우리가 어려운 일 당한 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족한 은혜를 내려주신다는 믿음과 기원하는 마음으로 찬양케 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39장 21-23절에서 요셉이 당하고 있었던 어려운 일은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힌 바 된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더하신 인자는
요셉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 주셔서 옥에서 건져 주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더하신 인자는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21절).
그래서 간수장은 감옥의 죄수들을 다 요셉에게 맡기고 감옥 안의 제반 업무를 그가 처리하게 하였으며 요셉이 책임 맡은 일에
대해서는 전혀 간섭하지 않았습니다(22-23절, 현대인의
성경). 이것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그가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23절,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과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기대하는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과 다를 때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만일 우리가 요셉의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와 기대는 그 힘든 상황에서
건짐을 받아 벗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공평하게 판단하시사 요셉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 주시고 그를 감옥에서 건져주시길 기도하며 기대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간구하고 기대하는 하나님의
기도 응답이요 이 기도 응답을 받을 때에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형통케 하신다고 믿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하며
기대한대로 기도 응답을 해주시기보다 계속해서 감옥에 있으면서 그저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신다면 우리는 충분히 실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을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오늘 본문에는 성경이 요셉의 반응에
대해 침묵을 하고 있지만 창세기 40장 14-15절을 보면
요셉은 바로 왕의 술 맡은 관원장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봅니다: “당신의 모든 일이 잘되거든 나를
기억하셔서,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내 사정을 왕에게 말씀드리고 나를 이 감옥에서 나가도록 해 주십시오. 나는 히브리 땅에서 강제로 끌려왔으며
여기서도 감옥에 갇힐 만한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현대인의 성경). 이 요셉의 말을 보면 우리는 요셉은 감옥에 갇힐 만한 일을 하지 않았기에
그곳에서 나아가길 원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에게 인자를 더하신 하나님은 요셉을 곧장 감옥에서 건져주시지 않으시고[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의 꿈 해석대로 그가 전직을 회복한 후(40:21) “만 2년이 지난 후에”야(41:1) 요셉이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므로 감옥에서 건짐을 받음]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39:21). 그리고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셔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습니다(23절).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범사에 형통하는 비결은 적어도 3가지로
생각합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창39:2, 3, 21, 23), (2)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수1:8; 왕상2:3), (3) 하나님을 찾는 것(대하26:5).
그리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형통에는 세상과 달리 고난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39장 23절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를(요셉을)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는
개역개정 말씀을 “그가(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이었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이 말씀을 제 개인적인
삶과 목회에 적용하다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셨기에 저는 오늘 여기까지 왔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저는 하나님의 계명을 충실히
순종하지 못했고 또한 하나님을 찾는 것을 게을리했습니다. 이렇게 불성실하고 불충한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진실하셔서 저 개인에게
주신 요한복음 6장 1-15절의 약속의 말씀과 교회에게 주신
마태복음 16장 18절의 약속의 말씀을 신실하게 성취해 주셨으며
지금도 성취해 주고 계시고 앞으로도 성취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기에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나님만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저는 여기까지 왔습니다. 18년의 목회를 뒤돌아볼 뿐만 아니라
제54년의 인생을 뒤돌아 보아도 하나님께서 저와 항상 함께 하셨고,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인자를 더하셨으며 저를 범사에 형통케 하셨습니다. 이렇게 불성실하고 불충한 자에게도 크신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맺고자 합니다.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시 115:1),
제임스 김 나눔
(2022년 9월
3일,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고,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인자를 더하시며, 범사에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댓글
댓글 쓰기